서울, 채희(2)

밀가루 죽, 생선, 화가아버지

by 김수달


엄마 채희는 초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했다.
학교 종이 울리면 집으로 달려가 책가방 내려놓고,
곧장 시장으로 향해 생선을 팔았다.
엄마에게 방과 후는
숙제가 아니라 생존의 시간이었으니까.
집에는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이 있었다.
막내는 태어나자마자
어딘지 모를 먼 친척집으로 보내졌다.
돌아오지 못한 엄마 대신,
어쩌면 살기 위한 선택이었겠지.
저녁이 되면
엄마는 동생들을 챙기고,
아버지 밥을 차리고,
집안일을 해냈다.
그 시절, 돈이 없었다. 정말 없었다.
그래서 배급받은 미국 밀가루로
죽을 끓여 먹었다. 친척집에서
김치 찌꺼기를 주면 (김치도 매우 귀하던 시절)
밀가루 반죽을 조금 떼어 넣어
김치 밀가루죽을 만들어 먹었다.
엄마는 종종 말한다.
“그게 맛있어서 먹은 게 아니야.
먹을 게 그거뿐이었어.”
그러다 엄마가 스무 살이 되기 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할아버지는 난 따위를 치던

동양화를 그리던 선비 같은 분이었다.
엄마 방 한구석에는
할아버지가 쓰던 먹냄새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한다.
하지만 예술은 가난을 구해주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떠난 뒤
엄마의 집은 더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10대 후반,
엄마는 중학교 대신 방직공장에 들어갔다.
공장에서 엄마는
설움이 무엇인지 뼈에 새기며 견뎠다.
못한다고 나무 막대기로 손등을 맞고,
바늘로 찌르듯이 일을 배우고,
기계가 멈추면 발길질도 당했다.
몸보다 마음이 더 부서지는 시절이었다.

스무 살도 안 된 채희는

남몰래 구석에서 얼마나 울었을까.


하지만 엄마는 악착같이 공장에서 번 돈으로
동생들을 먹이고
동생 둘을 중학교에 입학시켰다.
엄마는 기꺼이 자신의 학업을 멈추고
동생들의 미래를 이어갔다.
나는 그걸 생각한다.


엄마는 열여덟에
가난을 끊기 위해
가장 먼저 자신의 배를 비웠고
희망을 채우기 위해
동생들의 배를 채웠다.
엄마의 열 살,
엄마의 스무 살,
그 사이에는
눈물과 바람 냄새와 밀가루 죽이 있었다.
그 시절을 지나
엄마는 지금 나의 엄마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삶을 생각할 때마다
자꾸 목이 멘다.
엄마는 누군가의 장녀였고,
누군가의 엄마였고,
지금은 내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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