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채희(4)

장대비 속에서 며느리가 되다 -아빠'성일' 결혼을 결심한 날

by 김수달

아빠는 이제 칠십대가 되셨다.
세월은 참 이상하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고인이셨던
할아버지의 영정사진과
아빠 얼굴이 요즘 점점 닮아간다.
누군가의 아들이던 사람이
어느새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고,
또 할아버지가 되어 가는 것.
세월의 농담 같다.
오늘은 아빠가
엄마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그날의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아빠의 고향은
서해 바닷가 갯마을,
서울에서 버스를 네 번 갈아타고,
열 시간 넘게 걸려 도착하는 곳이다.
마지막 3km는 길도 없어
걸어 들어가야 했다.
아빠는
엄마를 고향집에 데려가는 게 싫었다고 했다.
남루했다.
부끄러웠다.
집은 쓰러져가는 초가집,
장판 아래 바람이 드나들었고,
문짝은 한 번 열면 다시 닫히지 않을 만큼 삐뚤어져 있었다.
아빠가 어릴 적,

할아버지는
동네 아이들 모아
공부 가르쳐 주던 훈장선생님 이셨다고 한다.
그 아래서
아빠는 글자 배우고,
바람 부는 겨울에
손등을 불에 그슬리며 글을 외웠다.
할아버지는
1.4 후퇴 때 월남하셨다.
그 흔적은
가난과 고집으로 남아 있었다.
엄마가 인사를 오던 날,
하늘이 미워하는 것처럼
장대비가 쏟아졌다.
마당 흙탕물이 부엌까지 밀려 들어오고,
아궁이가 잠겼다.
빗물은 지붕을 뚫고 방 안에 떨어졌다.
그 시절,
그 정도 가난을 본 여자는
그 자리에서 도망갔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도망가지 않았다.
아빠가 일어나 보니,
엄마는 부엌에 있었다.
바가지로 물을 퍼내고 있었다.
젖은 장작으로
아궁이 불을 살리고 있었고,
없는 곡식 속 돌을 골라내
밥을 짓고 있었다.
반찬이라고 해봐야 없는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엄마는
그 없는 걸 내어놓으며
정성스레 상을 차렸다.
그리고 엄마는 말했다.
“아버님, 진지 드세요.”
사람은 그런 장면 앞에서
말을 잃는다.
아빠는 그날 결혼을 결심했다고 했다.
가난이 부끄러운 남자와,
그 가난 앞에서 주저앉지 않은 여자.
엄마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리고 그날,
며느리가 되었다.
엄마가 그때 자리를 박차고 나갔더라면
나는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사람의 인생은
거창한 순간에 바뀌는 게 아니라—
바가지로 물을 퍼 올리던
그 작은 순간에 바뀌는 거다.


우리 형제는
코가 큰 편이다.
높고 오뚝한데, 끝부분은 둥글고 뭉툭하다.
아빠는 가끔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거 니네 할아버지 때문이다.”
그리고 늘 이어지던 농담이 있었다.
옛날엔 걸레를 지금처럼
바닥 닦는 용도가 아니라,
수건처럼 얼굴을 닦는 데 썼단다.
할아버지는
언니들이 아기였을 때
흐르는 콧물을
그 걸레로 하도 닦아 주셨단다.
아빠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매일 걸레로 눌러서
콧대가 그렇게 된 거야.”
농담 같지만,
듣기만 해도 정이 묻어났다.
딸만 셋 낳았다고
엄마를 타박하지 않으시고,
손녀들을 귀하게 품어 주시며,
인자하고 다정하셨다는 할아버지.
세월이 지나도
아빠가 그 얼굴을 닮아 가는 걸 보면,
참 이상한 기분이 든다.
피라는 게,
사랑이라는 게,
이렇게 모양을 남기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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