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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혜 Mar 07. 2022

완벽한 맛

동화

  “은하야, 치킨 먹자!”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승주가 뛰어오며 말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단박에 알아챘다. 이번 승주 생일파티는 치킨집에서 하는 거다! 

  나는 9년, 아니 돌잔치 빼면 8년 동안 생일파티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승주는 유치원 때부터 빠짐없이 매년 생일 파티를 열었다. 나는 여섯 살 때부터 매번 승주 생일파티에 함께 했다.

  “당연하지! 꼬꼬가든?”

  꼬꼬가든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치킨집이다. 치킨집에서 생일파티를 하면 열에 아홉은 여기에서 했다. 당연히 승주의 생일파티도 꼬꼬가든에서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승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통닭 가라사대!”

  승주의 목소리는 들떠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게 ‘통닭 가라사대’는 토요일 저녁 일곱 시에 하는 먹방 프로그램에 나올 만큼 맛집이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요즘 제일 핫한 아이돌 ‘공공칠빵’이 여기서 회식했다고 한다. 

  그곳은 강림대학교 근처에 있었다. 거기는 우리 동네 파리 빵집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10분이나 가야 했다. 그러니까 나는 맛있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가본 적은 없었다. 

  친구들은 가라사대 치킨을 먹은 다음 날이면 항상 자랑하기 바빴다. 공공칠빵의 싸인지 옆에서 먹었다며 자랑하는 애들도 있었다. 실제로 본 것도 아니면서 자랑하는 게 한심해 보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조금은 부러웠다. 

  하지만 엄마한테 먹고 싶다는 말을 꺼내보지도 못했다. 분명 엄마는 우리 동네 9800원짜리 치킨이랑 다를 바 없다고 핀잔을 줄 것이 뻔하다.

  그런 유명한 치킨을 드디어 먹어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나는 승주만큼이나 토요일이 기다려졌다.

  밤늦게 축 처진 모습으로 엄마가 들어왔다.

  “토요일에 승주 생일파티 갈 거야.”

  “얼마 필요한데?”

  엄마가 안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어…… 이천 원? 근데 거기 가려면 버스도 타야 하는데…….”

  “어디에서 하는데 버스까지 타.”

  엄마는 구겨진 지폐 세 장을 내밀었다. 

  “통닭 가라사대에서 한대.”

  나는 얼른 돈을 받고 방으로 들어갔다. 

  생일선물은 미리 생각해 놓은 것이 있었다. 바로 전자레인지 컵케이크이다. 

  얼마 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유튜버 루루언니가 ‘초등학생도 만들 수 있는 초간단 전자레인지 컵케이크’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을 올렸다. 계란, 우유, 코코아 파우더, 밀가루, 설탕,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휘휘 섞어준 후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금요일, 학교를 마치고 나는 생일선물을 준비했다. 

  냉장고에 계란이 없어서 마트에 갔다가 오는 길에 다섯 개나 깨뜨리고, 전자레인지를 초코 범벅으로 만들고, 종이컵을 세 개나 찢어버리고, 결국 하나 부족해서 머그컵으로 만든 후에야 선물을 포장할 수 있었다. 주방은 엉망진창이었지만 상자 안에 예쁘게 담긴 컵케이크를 보니 미소가 절로 나왔다. 

  ‘승주가 좋아해야 할 텐데.’

  잠자기 전, 책상 위에 아홉 개의 컵케이크를 넣은 선물상자를 반듯이 올려놓았다. 미리 인터넷에 검색해서 통닭 가라사대까지 가는 방법을 확실히 익혀두었으니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파리 빵집 앞 정류장에서 2114번 버스를 타고, 다섯 정거장 뒤에 내리기. 강림대학교 정류장에서 내려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 중 왼쪽 건물 2층.’ 

  나는 계속 가는 방법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이불을 덮었다.

  눈을 떴을 때 역시나 집 안은 조용했다. 엄마는 벌써 일을 나가고 없었다. 평소라면 찬밥에 김치나 멸치볶음 같은 기본 반찬으로 대충 아침을 먹었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점심에 가라사대 치킨을 많이 먹으려면 배를 좀 비워둘 필요가 있었다.

  인터넷 길 찾기에서는 13분밖에 안 걸린다고 했지만 나는 넉넉히 30분 전에 출발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선물을 조심히 들고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컵케이크가 아홉 개나 들어있기 때문인지, 머그컵 때문인지 상자는 꽤 무거웠다. 나는 상자를 꽉 붙잡고 정류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초록 버스 이일일사, 초록 버스 이일일사.’

  정류장의 사람들은 모두 왼쪽을 보고 있었다. 나도 버스가 오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초록색! 멀리서 초록색 버스가 보였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도로 쪽으로 움직였다. 나도 앞으로 갔다. 

  하지만 곧 버스가 가까워지자 실망했다.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몇몇 사람들도 다시 뒤로 물러섰다. 

  그 뒤로도 초록색 두 대, 파란색 한 대가 지나갔다.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다가 다시 늘어나기를 반복했다. 어째서 내가 탈 버스만 오지 않는 걸까. 주변에 시계가 없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신발 코로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여기 정류장은 아직 신식으로 바꾸지 않아 가리개가 없었다. 뜨거운 햇볕이 내 머리 위에 그대로 떨어졌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곧 뺨을 타고 흘러내릴 것 같았다. 그때였다. 2114!

  버스에 오르자 에어컨에서 나오는 찬바람이 확 느껴졌다. 나는 버스비를 내기 위해 상자를 잠깐 바닥에 내려놓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 사이 사람들이 모두 올라타고 문이 닫혔다. 

  그런데, 어라? 돈이 없다! 주머니 안에는 작은 실뭉치를 빼면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에어컨 바람에 말라가던 땀이 다시 맺히기 시작했다.

  버스가 출발했다. 순간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다. 나는 손잡이를 꾹 잡고 기사 아저씨한테 다가갔다.

  “저…… 돈이 없어요.”

  “뭐라고요?”

  버스기사 아저씨가 소리쳤다. 버스가 심하게 덜컹였다. 넘어지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돈을 깜빡했어요.”

  “뭐라고? 크게 좀 말해!”

  미간을 잔뜩 찌푸린 기사 아저씨의 표정이 험상궂어 보였다. 내가 돈을 안 내서 화가 난 것 같았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버스는 벌써 첫 번째 정류장을 지나고 있었다. 겨드랑이와 등이 축축해졌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용기 내어 기사 아저씨에게 좀 더 다가갔다.

  “저, 제가 돈을 깜빡하고 놓고 왔어요!”

  나는 최대한 큰 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기사 아저씨가 나를 슬쩍 보았다.

  “이번에는 그냥 타. 다음부터는 꼭 가지고 다니고!”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나는 앉을자리가 있었지만 앉지 않았다.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때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나는 상자를 들고 후다닥 버스에서 내렸다.

  아직 세 정거장이나 남았는데 내려버렸다. 버스는 다른 사람들을 태우고 저 멀리 가버렸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버스가 간 방향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선물을 가슴께로 바싹 당겨 안았다. 오른쪽에는 처음 보는 가게들이 죽 늘어서 있었고, 왼쪽에는 차들이 무섭게 달리고 있었다. 나는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며 계속 걸어갔다. 사람들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빠른 걸음으로 나를 지나쳤다.

  낯선 곳에서 나쁜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허리를 꼿꼿이 폈다. 

  ‘길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면 안 돼!’

  등에서 땀이 흘렀다. 나는 더 이상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몰랐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갈림길이 나오지 않았다.

  햇볕에 닿은 팔과 얼굴이 따가웠다. 지금은 몇 시나 됐을까. 후덥지근한 바람이 얼굴로 훅 불어왔다. 땀으로 젖은 얼굴에 머리카락이 척척 달라붙었다. 상자도 손에 맺힌 땀 때문에 자꾸만 미끄러졌다.

  얼마나 더 가야 하지. 아무리 걸어도 좀처럼 통닭 가라사대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간 방향으로 걸었는데 이제는 맞는 건지 의심이 들었다. 그때 마침 버스정류장이 나왔다. 하지만 2114번 버스정류장이 아니었다. 이 길이 아닌가? 이대로 집에도 못 가면 어떡하지. 엄마, 아빠가 울면서 나를 찾아다니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렇지만 길은 하나뿐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계속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버스정류장이 나왔다. 정류장 이름은 ‘가나 유치원 앞’. 2114번 버스의 세 번째 정류장이었다. 맞게 걸어왔구나! 잠시 기뻤지만 앞으로 두 정거장이나 더 가야 한다는 사실에 막막했다.

  얼마간 걷다 보니 저 앞에 신호등이 보였다. 횡단보도는 한 군데에 네 개나 있었다. 나는 사거리 앞에 섰다. 초록색으로 신호가 바뀌었지만 발을 뗄 수 없었다. 초록불이 깜빡이자 몇몇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초록불은 몇 번 더 깜빡이더니 꺼지고, 멈춰있던 차들이 움직였다. 

  그때, 초록색 버스가 왼쪽으로 꺾어 갔다. 버스 뒤에는 2114라는 숫자가 크게 박혀있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버스가 가는 방향을 유심히 보았다. 버스가 모퉁이를 지나자 내 눈에서 사라져 버렸다.

왼쪽 신호등이 켜지자마자 나는 곧장 횡단보도를 건넜다. 버스가 간 길을 그대로 따라 뛰어갔다. 

  ‘저기에서 오른쪽으로, 저 편의점에서 오른쪽으로.’ 

  저 멀리 모퉁이에는 파란 간판의 편의점이 있었다. 걸을수록 편의점의 간판 글씨가 점점 커졌다. 그 앞에 다다랐을 때 버스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오른쪽으로 꺾었다.

  툭. 급하게 뛰는 바람에 앞에 턱이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그대로 꼬꾸라졌다. 선물상자가 내 손에서 벗어나면서 공중에 붕 떴다가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상자 뚜껑이 열리면서 안에 있던 컵케이크가 쏟아져 나왔다. 쨍하는 소리와 함께 머그컵이 깨졌다.

  무릎이 뜨거웠다. 하지만 상처는 중요하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것 빼고 상자에 남은 컵케이크는 네 개뿐이었다. 내가 가장 아끼던 머그컵은 깨져버렸고, 케이크에는 흙과 먼지가 묻어버렸다. 상자는 훨씬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푸드덕’

  설상가상 비둘기가 하나둘 컵케이크를 향해 점점 몰려들었다. 회색 몸에 빨간 눈, 빨간 다리. 

  나는 뒷걸음질 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로에 차 몇 대가 지나갈 뿐 사람은 없었다.

  오른쪽 다리만 최대한 앞으로 뻗어 땅을 쳤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비둘기가 살짝 날갯짓을 했지만 곧 다시 내려앉아 내 소중한 케이크를 쪼아댔다.

  “제일 잘 만든 케이크였는데…….” 

  ‘딸랑’

  누군가 비둘기 떼 뒤쪽에 있는 편의점 문을 열고 나왔다. 

  ‘저 사람이 비둘기를 물리쳐 줄까?’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그 사람은 비둘기들이 있는 곳에서 반대방향으로 걸어가 버렸다. 비둘기를 물리칠 사람은 나뿐이었다. 

  ‘딸랑’

  또 편의점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비둘기 뒤편의 편의점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뒤돌아가 돌아온 길을 보았다. 편의점 문은 두 개였다. 내가 걸어온 길목에 한 개, 비둘기 뒤편에 한 개. 이 길을 지나갈 방법이 번뜩 떠올랐다. 편의점 앞문으로 들어가 뒷문으로 나오면 되는 것이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자 문 위에 달려있는 종소리가 맑게 울렸다. 

  “어서 오세요.” 

  알바생 언니가 일어나 인사했다. 웃는 언니 얼굴을 보니 아무것도 사지 않고 가버리는 게 미안했다. 하지만 내 주머니에는 동전 한 푼 없었다. 나는 괜히 둘러보는 척하다가 중얼거렸다.

  “여기에도 없네.” 

  그리고 재빨리 뒷문으로 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비둘기들은 아직도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그 자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빨리 그곳에서 벗어났다. 

  가는 길에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네 번째 정류장이었다. 이제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된다. 하지만 버스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이제 믿을 것은 내 감뿐이었다. 부지런히 발과 눈동자를 움직였다.

  조금 더 걸어가자 큰 가게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식당, 옷 가게, 카페, 노래방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그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나왔다.

  곧 또 다른 갈림길이 나왔다. 나는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피가 맺힌 무릎이 점점 아파왔다. 발바닥은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아침을 안 먹어서 배도 고프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어지럽기까지 했다. 

  그러다 문득 앞을 보았다. 건너편 골목 끝에 황금색 간판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익숙한 간판이었다. 신호등이 켜지자마자 뛰어갔다. 골목을 빠져나와 위를 올려다보았다. 

  ‘통닭 가라사대!’ 

  황금색 간판에 쓰인 커다란 글씨가 반짝였다. 드디어 도착이다!

  나는 후우, 숨을 크게 내뱉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에어컨 바람이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었다. 땀에 젖은 옷이 금세 차가워졌다. 기름진 치킨 냄새가 풍겼다. 아침도 안 먹고 여기까지 걸어오니 무척 배가 고팠다.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은하다!”

  구석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가장 큰 테이블에 승주와 반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쪽으로 뛰어갔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안 오는 줄 알았잖아.”

  승주가 입을 빼쭉 내밀며 툴툴댔다. 생일파티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몇몇 친구는 이미 집에 간 후였고, 그릇에 치킨은 몇 조각 남아있지 않았다.

  “걸어온 거야? 왜 이렇게 땀이 흥건해. 다리는 또 왜 그러구?”

  “넘어졌어요.”

  승주 엄마가 걱정하며 물티슈로 다리를 닦아주었다. 그때 옆에서 승주가 포크로 찍은 치킨 조각을 내밀었다. 

  “네 거 남겨놨어. 좀 식었지만.”

  나는 승주에게 선물을 내밀고 치킨을 받아 들었다. 

  “넘어져서 몇 개 떨어뜨렸어.”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승주는 괜찮다며 상자를 바로 열어보았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컵케이크 하나를 바로 입에 가져갔다. 

  “진짜 맛있어!” 

  그제야 나도 드디어 가라사대 치킨을 한 입 물었다. 식었지만 여전히 바삭했다. 완벽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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