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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혜 Feb 28. 2022

언니를 빌리시겠습니까?

동화

  집 전화가 울렸다. 나는 서둘러 거실 텔레비전 옆에 놓인 전화를 받으러 뛰어갔다. 두 살인 막내가 이제 막 잠든 탓이다. 나는 벨이 두 번째 울릴 때 잽싸게 수화기를 들었다.

  “은영이 자니?”

  “응. 아빠. 방금 잠들었어.”

  “엄마 병원에서 방금 나왔어. 조금 늦게 도착할 것 같으니까 밥 챙겨 먹고 있어.”

  시계의 짧은바늘은 6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돌봄 교실에서 먹었던 점심과 간식으로 나온 방울토마토는 이미 소화되어 슬슬 배가 고파왔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냉장고 안의 반찬들을 생각했다. 그때 넷째가 방에서 뛰어나왔다. 

  “엄마야? 나도 나도!”

  이제 막 말문이 트인 넷째는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쉿!”

  나는 이미 끊긴 전화의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 넷째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나도 엄마랑 전화할래!”

  나는 막내가 깰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넷째는 계속 찡얼거렸다. 

  “엄마 아니야.”

  다급하게 넷째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지만 결국 막내가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급하게 방으로 들어가 막내를 안았다. 다행히 막내는 울음이 짧았다. 안아서 방을 한 바퀴 돌자 금방 배시시 웃었다. 넷째와 셋째는 둘째에게 맡기고 막내는 다시 침대에 눕혔다.

  저린 팔을 주무르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어제 해 놓은 콩나물무침, 양파볶음 그리고 계란 세 개를 꺼냈다. 오늘 저녁은 계란국이다. 먼저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냄비에 물을 올렸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그 위에 풀어놓은 계란물을 천천히 부었다. 노란 계란물이 뜨거운 물속에서 뭉근하게 익어갔다.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기밥솥이 밥을 저어달라고 보챘다. 밥과 국을 그릇에 담고, 막내를 깨우고, 반찬 투정하는 셋째를 달래고, 방에서 나오지 않겠다는 고집불통 넷째까지 밥을 먹이고서야 드디어 저녁 시간이 끝이 났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엄마, 아빠가 들어왔다. 아빠는 아픈 엄마를 안방에 데려다주고 나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미안해, 은수야.”

  아빠는 힘이 없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엄마 약을 챙겨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설거지를 마치고, 셋째의 어린이집 가방을 챙긴 후에야 누울 수 있었다. 나는 형광 별이 붙여진 천장을 바라보다 잠에 들었다.     

  잠결에 나를 깨우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눈도 잘 안 떠지고 몸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아빠가 가까이 다가와 커다란 손으로 내 이마를 짚었다.

  “열은 안 나는데.”

  나는 여전히 꿈속을 헤매는 것처럼 몽롱했다. 아빠가 돌봄 교실에 둘째만 보내겠다고 전화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렸다.

  다시 눈을 뜬 건 얼굴이 갑자기 간지러워서였다. 나는 여전히 찌뿌둥했지만 아침보다는 훨씬 가벼워진 몸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내 얼굴을 간질인 정체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방구석으로 도망가는 크고 검은 물체가 보였다. 나는 눈을 비벼 눈곱을 떼어냈다. 그 검은 물체는 바퀴벌레였다. 바퀴벌레는 내 손만 했다. 나는 소리도 못 지르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때 바퀴벌레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벌떡 일어나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엄마, 아빠도 다 나가고, 동생들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서 집 안은 조용했다. 방문을 닫았는데도 사사삭 기어 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빠르게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었다. 

  집 안에서 종종 바퀴벌레를 본 적은 있지만 저렇게 큰 바퀴벌레는 처음이었다. 아빠가 집에 없는 게 원망스러웠다.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전에 제일 친한 친구 소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소미는 언니가 있어서 벌레 같은 건 언니가 다 잡아준다고 했다. 나는 첫째라 그런 건 꿈도 못 꿨다. 

  “나도 언니가 있었으면.” 

  바퀴벌레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하지만 집 안으로 들어가기가 싫었다. 바퀴벌레가 방에서 나와 내 몸을 타고 올라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눈치 없이 전화 벨소리는 평소보다 더 시끄럽게 울렸다. 심지어 더 오랫동안 울리는 것 같았다.

  ‘왜 아빠는 지금 집에 없는 거지. 이게 다 엄마가 아파서야. 아니야. 왜 하필 오늘 돌봄 교실을 안 가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신발을 신은 채 거실로 들어갔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수화기 너머로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이은수 씨 맞나요?”

  “네. 누구세요?”

  “언니 필요하다고 하셨죠?”

  “네?”

  “언니 필요하다고 하셨잖아요.”

  “저 전화 잘못…….”

  “확실해요? 분명 그랬는데. 언니 필요하시다고. 배림 아파트 삼백이 호 사는 이은수 씨 맞죠?”

  “네 맞는데…….”

  “언니가 필요한 것도 맞고요.”

  나는 어리둥절했다. 방금 언니가 필요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어떻게 안 걸까?

  “네 맞는 것 같아요.”

  “오늘 마침 세 시간 삼십 분 동안 언니 대출이 가능하시거든요. 사용료는 언니 다시 돌려주실 때 언니에게 필요한 걸로 주시면 돼요.”

  사용료? 돈은 없는데……. 그때 바퀴벌레가 방문 틈 사이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네네! 조, 좋아요. 언니 대, 대출해 주세요!”

  “네, 지금 일, 이 등급 언니들은 다 나갔고, 삼 등급 언니만 남아있는데 괜찮으신가요? 대신 사용료도 부담스럽지 않을 거예요.” 

  바퀴벌레가 숨어서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내 앞에 뚝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됐다.

  “네? 네!”

  “그럼 웃음, 도전 기능이 있는 최민희 언니 분으로 대출해드리겠습니다. 바로 보내드릴게요. 그럼 좋은 자매 되세요.”

  전화가 끊겼다. 얼떨떨했다. 바로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재빨리 문을 열었다. 

  그 앞에는 단발머리에 흰 셔츠, 검은 바지를 입은 언니가 웃으며 서 있었다. 언니의 왼쪽 가슴에 달린 명찰에는 최민희라고 쓰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언니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안녕, 근데 너는 언니한테 존댓말 하니? 나 너랑 일곱 살 차이밖에 안 나.”

  나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언니는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여전히 현관에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래서 날 왜 부른 거야? 근데 왜 거기서 그러고 있니?”

  나는 우물쭈물 서서 주방 쪽을 검지로 가리켰다. 언니는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잠시 후 주방을 헤매는 바퀴벌레가 나타났다. 

  “으아악!” 

  언니의 괴성에 귀가 따가웠다. 

  언니는 뒤로 물러서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눈동자는 바퀴벌레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에, 에, 에프킬라!”

  나는 급히 식탁 옆 선반을 가리켰다. 언니는 심호흡을 크게 쉬고 빠르게 선반으로 가서 에프킬라를 손에 쥐어 들었다. 그리고 손을 쭉 뻗고 엉덩이는 최대한 뒤로 뺀 뒤 벌레를 향해 약을 뿌리기 시작했다. 벌레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나는 그 모습이 징그러워 문에 몸을 딱 붙이고 서서 얼굴을 찌푸렸다. 

  언니는 한 손으로는 코를 막고 한 손으로는 약을 뿌리며 발을 동동거렸다. 한참 후에야 바퀴벌레가 배를 내놓으며 항복했다. 언니는 두루마리 휴지를 손에 열 번도 더 넘게 감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벌레의 시체에 다가가 휴지를 그 위에 던졌다. 언니는 곧 울 듯한 표정을 지으며 휴지를 집어 들었다. 화장실 변기에 흘려보내고 나서야 브이를 하며 웃었다. 

  나는 박수를 치고선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방바닥은 약 때문에 미끌미끌했다. 나는 언니를 도와 휴지로 열심히 바닥을 닦아냈다. 

  “이게 뭐야?”

  바닥을 닦다가 언니가 미간을 확 찌푸리고 개수대와 냉장고 사이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빵이 하나 끼어 있었다. 나는 서랍에서 비닐장갑을 꺼내 손에 끼고 빵을 꺼냈다. 빵은 처참하게 뭉개져 있었다. 상한 크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벌레가 딱 좋아할 만한 먹잇감이었다.

  “셋째가 자주 이렇게 숨겨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언니가 이상하게 볼 것 같아 괜히 변명했다. 냄새가 이렇게 심한데 어제는 왜 몰랐을까. 음식물 쓰레기통에 빵을 버리며 생각했다. 

  바닥을 다 닦자 우리는 긴장이 풀려서 바닥에 대자로 뻗어 버렸다. 잠시 집에는 시계 초침 소리만 들렸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제 가도 된다고 할까. 근데 뭘 줘야 한다고 했는데.

  그때 언니가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이제 뭐할까? 언니 생기면 뭐 하고 싶었어?”

  벌레 잡아달라고 부른 거였다고 말을 해야 하나. 언니가 화내면 어떡하지.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언니는 내 대답을 기다린다는 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손바닥을 짜악 마주쳤다. 

  “머리 땋아줄까?”

  나는 부스스한 내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언니 얼굴을 보았다. 잔뜩 들떠 보였다. 나는 혼자서도 머리를 잘 땋지만 거절하면 언니가 실망할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는 해맑게 웃으며 주머니에서 여러 색의 얇은 고무줄을 꺼냈다.

  “나 동생 생기면 이런 거 해보고 싶었거든.”

  나는 조그만 손거울을 들고 앉았다. 뒤에서 언니가 신중히 내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나누었다. 고무줄을 쥔 언니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뚝. 첫 번째 머리끈이 끊어졌다. 뒤돌아보니 언니는 걱정 말라며 보라색 고무줄을 손가락에 끼웠다. 하지만 그 고무줄도 힘없이 끊어져 버렸다. 그리고 세 번째, 드디어 한쪽 머리 묶기를 성공했다. 손거울이 너무 작아 머리 모양이 어떤지 제대로 알 수 없었지만 헐렁한 게 영 불안했다. 

  언니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집중해서 머리를 땋았다. 나도 덩달아 움직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차마 언니에게 말을 하지는 못하고 속으로 동요를 불렀다. 

  여섯 번째 동요를 부르고 있을 때 드디어 머리 땋기가 완성되었다. 나는 곧장 안방으로 달려가 큰 거울을 보았다. 머리카락은 군데군데 삐쭉 튀어나와 있었고, 양쪽 머리 길이조차 달랐다.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뭐야. 엉터리잖아.”

  나는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의 볼이 빨개졌다. 그러다 나중에는 나와 같이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다.

  그렇게 웃다 보니 우리는 배가 고파졌다. 언니는 짜장면을 시켜먹자고 했다. 군침이 돌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짜장면을 사 먹을 만한 돈이 없었다. 

  “괜찮아. 나 출장비 나오거든.” 

  언니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왼쪽, 오른쪽, 뒷주머니까지 보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언니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난 짜장면 별로 안 좋아해.”

  나는 태연하게 냉장고를 열면서 말했다. 냉장고에는 밑반찬과 된장국을 끓일 재료가 충분했다. 냉동실에는 고등어도 하나 있었다. 언니는 자신이 요리를 해주겠다며 된장과 애호박, 고등어를 꺼내고 양파와 감자를 준비했다. 나도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언니는 텔레비전을 틀어주며 말했다. 

  “나는 프로라고. 절대 동생을 시켜먹지 않아.”

  하지만 자신감에 찬 목소리에 비해 주방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모습은 영 불안해 보였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는 척하며 언니를 흘끔거렸다. 언니는 냄비에 물을 올리고, 양파와 감자 껍질을 깠다. 칼을 만지는 언니의 손이 엉성해 보였다. 나는 아예 텔레비전을 등지고 언니를 지켜보았다.

  언니가 요리하는 것을 보는 내내 가슴 졸였다. 양파를 써는 동안 냄비에 올려놓았던 물이 넘치는가 하면, 급하게 불을 끄다가 옆에 있던 간장을 엎질렀다. 고등어는 물기가 있는 채로 프라이팬에 올려 기름이 다 튀었다. 언니는 기름이 튄 팔을 매만지며 소리를 지르고 방방 뛰었다. 하지만 내가 “좀 도와줄까?”라고 말할 때마다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만 했다.

  소란스러운 요리가 끝나고 나니 주방은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언니는 식탁 위에 된장국과 고등어구이를 올려놓으며 만족해했다. 우리는 식탁 앞에 마주 보고 앉았다.

  “어때?”

  된장국을 한 입 먹자마자 언니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짜.”

  “진짜? 별로야?”

  “아니 뻥이야. 맛있어.” 

  그제야 언니가 안심하고 웃었다. 그러나 한 입 먹자마자 인상을 쓰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사실 요리를 잘 못해서 이달의 언니 뽑을 때마다 평점이 제일 낮았거든. 제일 높게 받은 별점이 이 점이야. 최악이지.”

  “맞아. 사실 짜. 근데 최악은 아니야.”

  나는 밥을 크게 퍼서 입 안에 넣고 웅얼거렸다. 그리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자 언니도 웃으며 다시 수저를 들었다.

  밥을 다 먹어갈 때쯤 언니가 시계를 보고 놀라며 말했다.

  “나 지금 가야 돼.”

  언니는 해적룰렛 보드게임에서 해적이 튀어나오듯 퉁하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다급하게 신발장으로 뛰어갔다. 나는 언니가 바로 나갈까 봐 재빨리 물어보았다.

  “언니, 뭐 줘야 돼?”

  “아. 뭐 받아야 하지?”

  언니는 오히려 나한테 물었다. 나는 언니에게 필요한 것을 생각했다. 

  “잠깐만!”

  나는 후다닥 방에 들어가 형광 스티커를 꺼내왔다. 그중 가장 큰 별 두 개와 그다음으로 큰 별 세 개를 떼어 언니 손등에 붙어주었다. 언니는 잠시 그 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사이 나는 별들 옆에 하트 모양 스티커를 추가했다.

  “언니는 백 점! 아니, 만 점 언니야!”

  밤에 보면 더 빛날 별이 언니 손에서 반짝였다. 언니는 별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고마워.”

  나는 문 밖으로 나가 언니를 배웅했다. 언니는 늦었다는 말을 반복하며 계단으로 후다닥 뛰어 내려갔다. 그때 띵,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엄마, 아빠가 동생들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우리 딸, 마중 나온 거야?”

  아빠가 집 밖에 나와 있는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들어가면서 계단을 슬쩍 쳐다보았다. 멀리서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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