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스컹크 깡이는 도도도 동물 마을 끝으로 꼭꼭 숨어 들어갔어요. 소삭 소삭 바람 소리만 들릴 때 비로소 걸음을 멈추었어요.
‘아무도 없겠지?’
깡이는 그제야 푸푸풍 방귀를 뀌었답니다. 방귀 소리가 숲 전체에 울려 퍼졌어요. 냄새는 더 멀리까지 퍼졌어요. 푸드덕. 어디선가 새들이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깡이가 시원한 표정으로 배를 문질렀어요.
“없어졌어, 없어졌어!”
마을이 소란스러웠어요. 배를 비우고 온 깡이는 웅성대는 동물들 사이를 기웃거렸어요.
이럴 수가. 황금 도토리가 사라졌어요!
황금 도토리는 도도도 마을에서 신과 같은 것이었어요. 반짝거리기만 하고 먹을 수도 없었지만 황금 도토리에 소원을 빌면 꼭 그 소원이 이루어졌대요. 그래서 큰일이 있을 때면 황금 도토리가 있는 신당으로 가서 모두들 소원을 빌곤 했어요. 지금 그 소중한 것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동물들은 비어있는 신당을 심각하게 바라보았어요. 황금 도토리 관리원 다람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었지요. 모두 자신의 탓이라며 스스로를 꾸짖었어요. 다른 동물들은 다람쥐가 안타까웠지만 섣불리 위로를 해주지 못했어요. 어쨌든 다람쥐가 졸았기 때문에 없어진 것이니까요.
그때 신당을 조사하고 나온 너구리 보안관 포요가 말했어요.
“두두의 짓이 분명해.”
두두는 한 달 전에 감옥에서 나온 도도도 마을의 가장 유명한 도적이었어요. 이렇게 감쪽같이 훔칠 수 있는 건 두두뿐이라는 것이었죠. 너구리는 그동안 잠잠한 게 이상했다며 고개를 저었어요.
그동안 두두는 시계, 가방, 솔방울이 가득 든 상자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훔쳤어요. 이틀에 한 번꼴로 도도도 마을에는 물건들이 하나씩 사라졌을 정도였지요.
작년, 두두는 잡혀가면서 이렇게 소리쳤어요.
“선글라스 좀 빌린 걸로 도둑 취급하기에 진짜로 훔쳤다!”
처음 두두의 도둑질이 부엉이의 선글라스였거든요. 두두는 자신을 의심한 게 억울해서 그 후로 진짜 도둑이 되었다고 말했어요. 다른 동물들은 두두가 전혀 반성을 하지 않는다고 혀를 내둘렀죠.
아마 이번에도 감옥살이를 한 게 억울해서 또 훔친 거라는 의견이 모였어요. 동물들의 반응을 살피던 깡이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포요는 여우를 찾아갔어요. 저번에 두두를 잡을 때 여우의 활약이 대단했거든요. 두두만큼이나 굴을 깊이 파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여우뿐이었어요.
그런데 하필 여우는 이틀 전부터 독감을 심하게 앓고 있었어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었지요.
여우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물들은 그 소식을 듣고 큰 시름에 빠졌어요. 두두를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때였어요. 깡이가 슬며시 손을 들었어요.
“저, 저기요.”
깡이의 목소리보다 동물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더 컸나 봐요. 아무도 깡이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어요.
깡이는 눈을 질끈 감고 다시 한번 크게 소리쳤어요. 그제야 동물들이 쳐다보았죠.
“제가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방법은 바로 방귀였어요. 깡이가 ‘방귀’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동물들의 표정이 찌그러졌어요. 스컹크의 방귀 냄새가 지독한 것을 모르는 동물은 없었으니까요. 대체 방귀로 어떻게 잡겠다는 건지 상상도 되지 않았고요.
“제가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방귀를 뀔게요. 아마 두두네 집까지 제 방귀 냄새가 들어갈 거예요. 두두가 냄새를 피해 밖으로 나오면 그때 잡는 거예요.”
동물들은 미심쩍었지만 깡이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어요. 깡이의 말이 그럴싸하기도 했고, 게다가 평소와는 다르게 깡이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어요. 계획도 완벽해 보였고요. 사실 다른 방법도 없었거든요.
포요가 구덩이를 팔 장소를 알려주었어요. 작년에 두두가 살던 곳에서 가까운 곳이었죠.
깡이는 신중하게 위치를 골랐어요. 구덩이를 얼마나 파야 할지도 골똘히 생각했어요. 얼마나 신중했냐면, 잎사귀에 올라가 있던 달팽이가 땅으로 내려왔을 때 겨우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을 정도였어요.
느티나무에서 깡이의 발걸음으로 딱 열 걸음. 그곳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어요.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동물들은 하나둘 뿔뿔이 흩어졌지만 깡이는 자기가 쏙 들어갈 정도만큼 구덩이를 다 파고서야 집으로 돌아갔어요. 몸에는 흙이 잔뜩 묻어있었지만 깡이는 왠지 개운했답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날은 바로 그다음 날이었지요. 깡이는 평소보다 아침밥을 더 많이 먹었어요. 방귀가 잘 나오려면 든든히 먹어야 했으니까요. 자신의 방귀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한껏 들떴어요.
느티나무 아래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동물들이 모여 있었어요. 모두 두두가 꼭 잡히기를 바랐어요.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어요. 이 동물들 중에는 깡이의 방귀 냄새를 버틸 수 있는 동물이 없다는 것이었죠. 그래서인지 막상 깡이가 구덩이 앞에 서자 동물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뜨기 시작했어요. 방귀 쇼를 보고 싶지만 냄새를 맡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깡이가 구덩이 위에 엉덩이를 대고 앉자 보안관인 포요마저도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어요. 깡이 주변이 휑했어요. 모두 멀리멀리 떨어졌거든요. 깡이는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어요. 깡이는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조금씩 뒷걸음치던 포요는 이제 거의 콩알만 하게 보였어요.
그렇지만 깡이는 방귀를 뀌어야 했어요. 어쨌든 그게 깡이의 할 일이었으니까요.
깡이는 항문에 힘을 꽉 주었어요. 구덩이를 뚫고 저 밑에 있는 두두의 집까지 보낼 강력한 방귀를 뀌기 위해서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깡이는 아주 작은 방귀도 뀌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방귀가 부족한가 봐요. 사실 깡이는 한 번 방귀를 뀌면 이후로 일주일 동안 방귀를 안 뀌어도 되었어요. 사흘 전, 방귀를 미리 뀐 것이 문제였지요.
시간이 흘러도 깡이의 방귀소리가 들리지 않자 동물들이 하나둘 다시 모이기 시작했어요. 얼굴이 빨개진 깡이는 더듬더듬 마을 동물들에게 말했어요.
“바, 방귀를 모을 시간이 필요해요. 하, 하루만 더 시간을 주세요.”
포요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른 동물들을 둘러보았어요. 모두 깡이를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죠. 결국 다음 날까지 여우가 낫지 않으면 깡이의 도움을 받기로 했어요.
하루 동안 깡이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음식을 먹었어요. 깡이가 평소보다 많이 먹기도 했지만 마을 동물들이 깡이를 위해 방귀에 좋은 음식들을 가져오기도 했거든요. 깡이는 대회에 출전을 앞둔 선수처럼 온종일 먹기만 했어요. 꼭 영웅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요.
그 시간에 다른 동물들은 텅 비어있는 신당을 보면서 한숨을 쉬고 있었어요. 날씨가 흐린 것도, 일이 잘 안 풀리는 것도, 잠이 잘 안 오는 것도 다 괜히 황금 도토리가 없어졌기 때문인 것 같았어요.
드디어 다음 날이 되었어요. 여전히 여우는 누워있었어요. 이제 깡이가 활약을 할 차례가 된 거예요. 다행히도 깡이의 배는 아주 빵빵했어요.
깡이는 구덩이에 쪼그려 앉았고, 동물들은 방독면을 쓰고 그 주위에 둘러섰어요. 그동안 다른 동물들도 방귀 쇼를 위해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느티나무 아래에는 긴장감이 흘렀어요. 모두들 숨죽이고 깡이를 지켜보았지요. 깡이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어요.
깡이는 눈을 질끈 감고 방귀를 발사… 해야 하는데……. 이럴 수가. 방귀가 안 나오지 뭐예요. 깡이는 당황해서 배를 꾹 누르며 다시 한번 엉덩이에 힘을 꽉 주었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방귀는 나오지 않았어요.
당황하는 깡이의 모습을 보고 동물들이 상황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어요. 방귀쟁이 스컹크가 이렇게 방귀 뀌는 게 어렵다니. 믿을 수가 없었죠. 주인공의 기분을 누리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끄는 건가 의심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깡이의 표정은 정말 괴로워 보였어요.
결국 이번에도 깡이는 방귀 뀌는 것에 실패했어요. 배가 더부룩해서 힘든 것보다 동물들을 실망시킨 것 같아 속상했어요. 이러다 영웅이 되지 못할까 봐 걱정도 됐어요.
그날 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깡이는 여우네 집으로 찾아갔어요. 여우가 아니라 오소리 의사를 보기 위해서였죠. 오소리 의사는 여우의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어요.
깡이가 오소리의 어깨를 툭툭 치자 오소리가 화들짝 놀라 일어섰어요.
“방, 방귀가 나오지 않아요.”
깡이는 울먹거리며 말했어요. 오소리는 눈을 부비며 이게 무슨 일인지 생각했어요. 오소리는 여우를 돌보느라 깡이가 방귀를 뀌지 못했다는 것을 몰랐거든요.
깡이의 사정을 들은 오소리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어요.
“변비인 것 같네요.”
오소리는 부담감 때문이라고 했어요. 당장 방귀를 뀌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위로도 해주었지요. 방법은 간단했어요. 알약 한 알만 먹으면 되는 거였죠.
깡이는 오소리에게 알약을 받아 들고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어요.
새가 지저귀고 나뭇잎이 햇빛 덕분에 반짝거렸어요. 날씨가 아주 좋았고,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오전이었죠.
깡이는 구덩이 위에 앉았어요. 느티나무 아래는 조용했어요. 아무도 깡이의 방귀 쇼를 보러 나오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깡이는 차라리 다행이었어요. 이번에도 실패하면 정말 고개를 들 수 없을 테니까요. 두두를 잡아서 당당히 동물들 앞에 서게 되는 순간을 상상하자 기분이 좋아졌어요.
이제 깡이는 심호흡을 하고 혼자만의 방귀 쇼를 준비했어요. 그리고는 눈을 꼭 감고 약을 입에 넣었어요. 꿀꺽. 알약이 깡이의 목을 타고 뱃속으로 들어갔어요. 깡이는 천천히 숫자를 세기 시작했어요.
“하나, 둘, 셋…….”
딱 마흔일곱까지 숫자를 셌을 때였어요. 깡이의 배에서 우르릉 소리가 났어요. 곧 엄청난 방귀가 나올 것이라는 신호였죠.
아니나 다를까, 곧 방귀가 쿠구궁 소리를 내며 나왔어요. 깡이의 엉덩이가 들썩였어요. 그 소리는 마치 천둥소리와 같았어요. 정말이지 마른하늘의 날벼락이 내린 줄 알았다니까요. 깡이 스스로도 얼떨떨해서 바닥에 부딪친 엉덩이를 쓰다듬었어요. 깡이가 뀐 방귀 중에서 제일 크고 가장 지독한 방귀였거든요.
방귀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동물들이 집 밖으로 나왔어요. 당연히 모두 방독면을 쓰고 말이에요. 그런데도 방독면 안으로 방귀 냄새가 스며드는 것 같았죠. 그 와중에 방독면을 쓰지 않고 나온 토끼는 문을 열자마자 기절하고 말았답니다.
동물들이 깡이 주위로 몰려들어 방귀 뀐 것을 축하했어요. 이건 놀라운 일이었어요. 그동안 모두 깡이를 방귀 때문에 피해왔기 때문이죠.
이제 두두만 땅 위로 올라오면 모든 것이 끝날 거예요. 도도도 마을에 새로운 영웅도 탄생하고요.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록 두두는 나오지 않았어요. 방귀가 두두의 집까지 닿지 못했을까요? 어쩌면 두두는 이미 이사를 갔을지도 몰라요. 점점 해가 기울었어요. 마을에 퍼진 깡이의 방귀 냄새도 점점 흐려지고 있었죠.
하늘이 빨갛게 물들어갈 때, 느티나무 아래에는 울적한 깡이와 보안관 포요 그리고 기절했다가 뒤늦게 도착한 토끼만이 남아 있었어요. 모든 게 확실해졌어요. 깡이는 실패했고, 영웅은 생기지 않았어요. 그렇게 모두가 포기하고 돌아설 때, 땅에서 무언가 툭 튀어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바로 두두였어요. 두두는 해롱해롱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어요.
“나는 너를 믿었네.”
포요는 바로 두두를 체포하며 깡이에게 말했어요. 깡이는 왠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어요. 하지만 흘러나오는 미소는 숨길 수 없었어요.
두두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마을 동물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니었어요.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았으니까요. 바로 황금 도토리를 찾아내는 일이었죠. 그러려면 두두가 파고 나온 구멍을 통해 들어가야 했어요.
“아, 아직 냄새가 지독할 거예요. 제, 제가 들어갈게요.”
이 떨리는 목소리의 주인은 깡이었어요. 구멍 안에는 여전히 방귀 냄새가 고여 있을 테니 직접 다녀오겠다는 것이었죠. 이번에는 누구도 머뭇거리거나 반대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번 일의 영웅은 깡이었으니 끝까지 깡이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더 어두워지기 전에 깡이는 구멍으로 머리를 집어넣었어요. 서쪽으로 지는 해가 붉은빛을 내며 깡이의 몸을 훑고 지나갔어요.
그때였어요. 깡이의 꼬리에서 무언가 번쩍 빛이 났어요. 두두를 잡고 있던 포요는 그 빛에 눈이 부셨어요. 이상함을 느낀 포요는 깡이가 구멍으로 완전히 들어가 버리기 전에 붙잡았어요. 그리고 깡이의 꼬리를 확인했어요.
반짝이는 물체는 바로 황금 도토리였어요! 깡이가 둘둘 말아 넣은 꼬리 사이에 황금 도토리를 숨기고 있었던 거예요.
지켜보던 동물들 모두 깜짝 놀랐어요.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한 표정으로 깡이를 쳐다보기만 했어요. 그러자 깡이는 울음을 터뜨렸어요.
사실 이 모든 것은 깡이가 계획한 일이었어요. 방귀 냄새 때문에 그동안 깡이는 친구가 없었거든요. 깡이가 먼저 다가가도 다들 냄새가 난다며 피했어요.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방귀를 몰래 뀌었지만 아무도 깡이에게 먼저 다가와주지 않았어요. 그러다 작년에 두두를 잡아 한 번에 영웅이 된 여우를 보게 된 거예요.
‘바로 저거야!’
깡이는 방귀로 영웅이 되는 날을 꿈 꿨어요. 모두가 자신을 쳐다볼 날만을 기다렸죠. 마침 여우가 아프다는 소식이 들렸고, 깡이는 곧장 신당으로 향했어요.
이제는 도도도 마을 동물들 모두가 깡이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물론 영웅 깡이가 아니었지만요.
깡이는 펑펑 울었어요. 방귀 소리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큰 소리로 펑펑 울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