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Love Affair (1939)

by 최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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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에서 출발하여 대서양을 횡단하여 뉴욕으로 향하는 호화 여객선에는 프랑스의 유명한 바람둥이 미셸 마네(Michel Marnay)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럽의 최상층 여성들과의 다양한 염문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은 셀럽이었죠. 미국의 유명한 재벌가의 상속녀와 결혼을 앞두고 미국행에 오른 그는 세간의 화제가 되었고, 각 신문사의 연예부 기자들은 이를 경쟁적으로 취재하여 보도하는 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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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미셸 마네는 배 안에서 운명적으로 한 여자와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미국의 캔사스의 시골 출신으로 나이트 클럽의 가수였지만 부유한 사업가와 약혼하여 결혼을 앞 둔 테리 맥케이(Terry McKay)였습니다. 그녀의 약혼자는 그녀를 자기 곁에 두고 상류층의 생활을 익히도록 일종의 신부 수업을 시키고 있었죠. 그녀의 이탈리아 방문도 약혼자의 패션 사업을 돕는 것의 일종이었으나 유럽 상류층 문화를 둘러보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유명인이었던 미셸을 만난 테리 맥케이는 한 눈에 그를 알아봅니다. 테리의 미모에 한 눈에 반한 미셸은 평소 버릇처럼 테리에게도 수작을 걸어보지만 그녀는 이를 거절하지요. 하지만 민망해하는 미셸을 배려해서, 그녀는 함께 식사라도 하자는 미셸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이미 분명하게 선을 그은 후라서, 테리는 미셸과 편안히 대화하며 어울리게 되지만 약혼녀가 있는 유명 셀럽이 미모의 여성과 가까이 지내는 모습은 배 안의 많은 승객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됩니다. 승객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보고 테리는 그때부터 미셸과 거리를 두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그에게 끌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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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한지 며칠 만에 배는 중간 경유지인 마데이라(Madeira)에 도착합니다. 마데이라는 지중해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하여 대서양으로 나오면 곧 만나게 되는 포르투갈령의 아름다운 섬으로 관광지이자 휴양지였습니다. 여객선은 승객들에게 4시간의 시간을 허락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선하여 마데이라 관광에 나섭니다. 테리는 짧은 기착의 승객용 관광 코스의 하나를 택하여 물소가 끄는 마차를 타고 유람을 하는 도중에 전망 좋은 언덕 위의 주택가를 걷는 미셸을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어디에 가는 길이냐고 묻는 테리에게 미셸은 만나야 할 사람(lady)이 있어서 가는 중이라고 답합니다. 테리는 기가 막혀 하며 여기에도 여자가 있는 것이냐며 농담하였지만 미셸이 만나러 가는 사람은 그의 할머니였죠.


테리는 비록 농담이었지만 미셸을 힐난했던 것이 미안했던 터라 할머니를 방문하는데 동행하지 않겠냐는 미셸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외교관이었던 미셸의 할아버지는 은퇴 후에 마데이라에 정착해 살다가 세상을 뜨고, 그의 할머니 제누는 홀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저택에 살고 있었죠.


테리는 그곳에서 생각지 못했던 미셸의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집에 자그마한 기도소를 마련해 두고 날마다 기도하며 남편 곁에 묻히기를 기다리며 살고 있는 제누는, 미셸에게 어린 시절 성당에서 신부님을 도와 미사를 돕는 복사(服事)로 봉사하며 자란 신앙심 깊은 아이가 아니었냐며 기도소에 가서 우선 기도하라고 종용합니다. 또한 미셸은 할머니의 개에게도 다정하며, 정원사의 가족들과 어린 손녀에게도 한 가족처럼 상냥하고 친밀하게 대합니다.


미셸이 정원사 가족들을 만나러 그의 집에 간 동안, 테리는 그의 할머니 제누와 미셸을 화제로 대화하면서 미셸에 대해 더 알아갑니다. 미셸은 그림에 소질이 많은 화가 지망생이었지만 끈질기지 못하여 그만 두고, 상류층 여성들과 어울리며 세간에 유명해졌지만 쉽게 산 인생에 나중에 지불해야 할 청구서를 받게 되면 곧 어려움을 겪게 될 것 같아 걱정이라며 제누는 손자 걱정이 끝이 없습니다. 그녀는 첫 대면에서 테리를 미셸의 약혼자 로이스 클락크인 줄 오해하지만, 신앙심 깊고 사려 깊으며, 소박하고 다정다감한 성품의 테리를 마음에 들어합니다. 그녀는 재벌가의 상속녀 보다 테리같이 좋은 여자가 곁에 있다면 손자가 인생을 바르게 살게 될 것 같다며 테리를 탐내는 마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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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는 제누와 함께 대화하면서 신실하고 소박한 그녀와 가까워지고, 홀로 사는 그녀에게 연민을 느낍니다. 그러다가 그녀의 걱정거리인 손자를 염려하는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공감하게 됩니다. 테리는 미셸을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같이 느끼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자기도 모르게 제누처럼 그를 진심으로 염려하고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테리와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미셸은 그가 어울리던 수많은 여인들과는 다른 테리의 면모를 보게 됩니다. 기도소에서 경건하게 기도하던 테리의 모습, 찬장에서 찻잔을 날라다 차를 준비하는 모습, 그리고 할머니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미셸은 자기도 모르게 테리에게 더 끌리게 됩니다.


어느덧 배가 출항을 준비하기 위하여 승객들을 소환하는 기적을 울리고, 제누는 그 소리에 손자와의 이별이 아쉬워 눈물 짓습니다. 미셸은 조만간 다시 오겠다며 제누를 달래고, 테리는 뉴욕에 돌아가면 편지하겠다고 약속하며 제누와 작별합니다. 하지만 슬퍼하며 손을 흔드는 제누가 안쓰럽던 테리는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가 제누를 안아주고 볼에 입을 맞춥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두 여자 사이에 쌓인 끈끈한 애정을 보면서 미셸은 왠지 모르게 테리에게 전에 없던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배로 돌아가는 길에, 테리와 미셸 모두 어느새 서로에게 더 끌리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며 두 사람은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입니다. 남들의 이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은 하루 종일 함께 보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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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늦게 테리를 데려다 주려고 그녀의 방에 들른 미셸은 테리에게 입을 맞추고 그녀는 거부하지 않고 그를 받아들입니다. 그날밤 폭풍우로 거칠어진 바다는 거세게 배를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테리는 입맞춤 끝에 "우리 앞에는 거친 바다가 기다리고 있어요. 미셸, 잘 자요 ."하며 밤 인사를 하죠. 이 대사는 테리가 제누의 피아노에 맞추어 부르던 노래 '사랑의 기쁨(Plaisir d'amour)'의 내용처럼 두 사람의 앞날을 예시하는 복선(伏線)으로 보입니다. 이 노레의 제목은 '사랑의 기쁨'이지만 '사랑의 기쁨은 잠간이고 사랑의 슬픔은 영원히 남는다'는 내용이죠.


그 후로 배가 뉴욕에 도착하기까지 며칠간 두 사람은 매일 붙어지내며 깊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혼란스럽고, 그러면서도 또한 번개에 맞은 듯 놀랍고, 걱정스러우면서도 달콤한 시간들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드디어 배가 뉴욕항에 도착하기 전날 밤, 테리는 밤잠을 못 이루고 갑판에 나와서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그때 미셸이 다가와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이런저런 겉도는 이야기 끝에 테리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냅니다. 내일 아침 뉴욕에 도착하게 되는데, 두 사람의 약혼자들은 뉴욕항에서 두 사람을 기다릴 예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이 서로 마음 속에 있는(현실적인) 이야기를 지금 터놓고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 테리의 이야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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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은 자기가 겉도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합니다. 바로 자신은 평생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고 여자들이 주는 돈으로 살아왔기에 테리에게 자신과 인생을 함께 하자는 프로포즈를 하기가 힘들었다는 이야기였죠. 그는 6개월의 시간을 주면 자기 힘으로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어보고 자신이 생기면 그때 마음 속에 든 이야기를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테리는 이 말 가운데서 그의 진심을 느끼고 이를 받아들입니다.


테리는 잠을 청해보려고 침실로 향하고 미셸은 더 갑판 위에서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침실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며 테리가 갑판 위의 미셸에게 묻습니다. '나같은 여자에게 결혼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당신은 아냐?'고..... 그리고는 또 한가지를 더 묻지요. '당신도 나처럼 아기 좋아하냐?'고..... 마음 속에 불안과 걱정이 가득한 테리의 복잡한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는 대사입니다.


갑판 위의 두 사람의 대화는, 한 줄 한 줄 곱씹어 보면 사랑 앞에서 같은 마음인 것 같지만,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다른지를 잘 그리고 있는 재미있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의 두 사람의 대화는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1966년작 프랑스 영화 <남과 여 (Un homme et une femme)>를 문득 떠올리게 합니다.


다음날 배는 뉴욕항에 도착합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 테리는 미셸을 만나서 메모지를 한 장 건넵니다. 거기에는 6개월 후인 7월 1일 오후 5시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02층 전망대에서 만나자는 약속이 적혀있습니다. 테리는 정식으로 미셸에게 6개월의 시간을 주고, 그동안 성실하게 열심히 살다가 다시 만나자는 그녀의 기원을 담은 메모를 건넨 것입니다. 테리는 미셸에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가리키며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고 뉴욕 어디에서든 볼 수 있어서 못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꼭 다시 만나자는 다짐의 말이기도 했죠. 그렇게 두 사람은 재회를 약속하고 헤어져 각각 부두에 내려 마중 나온 약혼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다음날 아침 신문에서 테리는 재벌가의 상속녀와 미셸 마네의 파혼에 대해서 보도하는 기사를 보게 됩니다. 그녀는 발코니로 나와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6개월 후에 그곳의 전망대에서 그녀를 기다릴 미셸을 상상해 보고 행복감에 잠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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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은 재벌가의 약혼녀와 헤어지고, 자신의 꿈이었던 화가가 되기 위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또한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고층 건물에 올라가 광고 간판을 그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테리는 부유한 약혼자와 헤어져 밤무대 가수로 돌아갔습니다. 저녁 무렵부터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하는 고된 생활 가운데에서도 테리는 하루하루 미셸을 그리워하며 기다림의 날들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6개월 후인 7월 1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맨 위의 전망대에서 과연 두 사람은 행복한 재회를 할 수 있을까요?


《러브 어페어(Love Affair)》(1939)는 당시 대단한 흥행몰이를 하였고,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여우 주연상(아이린 던), 여우 조연상, 각본상 등 모두 여섯 부문에 걸쳐서 후보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워낙 막강한 경쟁작이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8개 부문에서 수상하고 2개 부문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모두 10개 부문의 수상을 차지하면서 <러브 어페어>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불발하고 말았습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레오 매케리(Leo McCarey) 감독은 18년 후인 1957년, 동일한 대본으로 , 케리 그랜트와 데보라 커를 출연시켜서 이 영화를 리메이크하여 "<An Affair to Remember>"를 제작하였습니다. 이 영화도 전세계적인 히트를 하여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작품이 되었고, 아카데미상에도 네 부문에서 후보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1994년에도 <러브 어페어>란 제목으로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을 캐스팅하여 remake되기도 하였습니다.


탐 행크스와 멕 라이언이 주연한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 1993)"에서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의 만남의 장면이 나옵니다. 엄마를 잃고 Seattle에서 아빠와 단 둘이 살고 있던 초등학생인 Jonah는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에 라디오 방송 프로의 고민 상담 코너에 전화를 걸죠. 상처하고 혼자 사는 아빠(탐 행크스)가 걱정이라며 상담하려고 한 것인데 이 가여운 어린이와 아빠를 동정하여 전국에서 여인들이 편지를 보내옵니다. 그 덕분에 볼티모어에 살고 있는 Annie(멕 라이언)과도 연결되죠. Jonah는 Annie에게 운명적인 만남이라면 발렌타인 데이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맨 위의 전망대에서 만나자고 편지를 보냅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의 만남은 1939년작 <러브 어페어(Love Affair>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입니다.


이 영화는 저작권자가 저작권 갱신에 소홀하여 권리를 잃게 되어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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