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꽃잎만 피처럼 붉구나

<왕과 사는 남자>

by 최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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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돌풍의 기세가 정말 대단합니다. 이 영화는 현재까지 최고 흥행작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명량>의 흥행을 넘어설 수도 있다고 개인적으로 예측해 봅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건드리고 있는 관객의 공감 포인트가 명량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인간이 약자에게 품는 보편적 정서인 측은지심'을 정확하고 치밀하게 조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잘 모르는 해외 관객들의 마음까지 울리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실제 단종의 음성을 들으시는 것처럼 단종이 남긴 시(子規樓詩)를 읽으시며 영화가 준 감동과 여운을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一自寃禽出帝宮 (일자원금출제궁) 원통한 한 마리 새 궁궐을 나온 뒤로

孤身隻影碧山中 (고신척영벽산중) 짝 잃은 그림자 홀로 산 속을 헤매네

假眠夜夜眠無假 (가면야야면무가) 밤마다 잠을 청하나 잠 못 이루는데

窮恨年年恨不窮 (궁한년년한불궁) 끝없는 한은 날이 가도 다함이 없구나

聲斷曉岑殘月白 (성단효잠잔월백) 밤새 울던 두견새 소리 끊긴 산마루엔 새벽 달빛 서러운데

血流春谷落花紅 (혈류춘곡낙화홍) 골짜기에 떨어진 꽃잎만 피처럼 붉구나

天聾尙未聞哀訴 (천롱상미문애소) 하늘은 귀를 막은 듯 애달픈 하소연 못 들으시는데

何奈愁人耳獨聰 (하내수인이독총) 어찌하여 수심 가득한 이내 귀만 열려서 홀로 듣고 있는가?


1457년 단종이 영월로 유배가서 청룡포에 머문 것은 불과 2달입니다. 하늘도 슬퍼서 눈물을 흘린 것인지 전에 없던 폭우로 동강에 홍수가 나서 청룡포가 물에 잠깁니다. 따라서 단종의 거처를 영월 관아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옮기게 됩니다. 단종은 그곳에 두어달 머물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단종이 관풍헌(觀風軒)에서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 눈물로 먹을 갈아서 피를 토하듯 써내려간 시가 이 시입니다.


먼저 2연의 짝잃은 그림자(孤身隻影)가 심금을 울립니다. 단종은 출생후 하루만에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첫 젖을 물리고 계속 키워주던 유모는 생후 1년 후에 잃었습니다. 세종도 이 박복한 어린 장손자가 가엾어서 특별히 마음을 쏟아서 돌보았다고 합니다. 어머니 없이 자란 소년왕은 14세에 한 살 연상의 아내를 맞습니다. 누이같고 어머니같던 아내는 결핍된 모성을 충족시켜주며 정신적으로 단종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한 축이 되어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조는 왕위를 찬탈하고, 역모죄로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키며 유배형에 처하며 아내와 영원한 이별을 맞게 하지요. 모성의 결핍 속에서 자라온 단종에게, 아내와의 영원한 이별은 왕좌를 빼앗긴 것보다 더 깊은 상처였을지 모릅니다. 심리적 살해에 가까운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매화가 단종의 곁을 지키는 여성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단종을 위로하고 마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존재가 결손을 부각시키는 역설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매화의 존재가 그렇습니다.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매화의 '어린시절부터 전하를 돌보았다'는 대사는 역설적으로 단종의 성장기의 모성의 결핍을 부각시키며 유배지의 단종을 더 의지할 곳 없는 가련한 존재로 보이게 하여 비극성을 짙게 합니다. 매화는 너무나 기가 막히는 이별이라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못하고 이별한 아내 정순왕후 송씨의 빈자리를 부각시킵니다.


3,4 연은 유배지의 한 깊은 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잠 못이루는 밤, 단종의 머릿속을 채우던 것은 숙부의 배덕(背德)이었을까요? 나라 걱정이었을까요? 눈을 감으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속에서 온기를 주고 위로해 주던 피난처는 아내에 대한 기억이었을 겁니다. 시의 3, 4연에서는 다소 관념적으로 단종의 한을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차가운 밤의 어두움을 뚫고 다가와 안아주던 것은 아내에 대한 상념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시리고 한스러운 것은 아내가 없는 방안을 가득 채우던 어둠이었을 것입니다.


관풍헌에서 보내던 그러한 절망의 밤마다, 짝 잃고 산중을 홀로 헤매는 가여운 넋과 같은 단종의 슬픔에 창밖에서 같이 울어주던 새라도 있었던 것일까요? 단종은 자신의 처지를 두견새에 빗대어 노래합니다(5, 6연). 옛 촉나라의 망제 두우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망제는 왕좌를 잃고 유배지에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피를 토하며 울다가 죽어 한 마리 새가 되었다고 하지요. 그 새가 두견새입니다.


두견새 울며 피를 토한 자리마다 붉은 꽃이 피었는데 이를 두견화(진달래)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6연의 ‘피처럼 붉은 낙화’는, 불의에 맞서 피 흘리며 죽어간 사육신을 비롯한 충신들, 그리고 자신이 맞게 될 피의 운명을 함께 예감한 이미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1연의 한마리 원통한 새(寃禽)는 단종 자신을 상징하며 5, 6연의 울다 지친 새와 떨어진 붉은 꽃잎(두견화 또는 진달래)와 상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서 두견새는 봄에 돌아와 늦가을에 떠나는 철새이고 진달래도 봄에 피는 꽃으로서 이 시가 씌여진 시기에는 볼 수 없는 새이고 꽃이지요. 그런 면에서 관념적이기는 하지만 단종은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꼭 맞는 이런 상징적 시어들을 가져와 자신의 한을 극대화하는 시를 적었습니다. 총명하여 좋은 임금이 될 것으로 기대되던 어린 왕의 시재는 발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로 놀랍습니다.


마지막 두 연에서는 절절한 한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하소연해도 듣지 않는다는 표현은 극한적인 절망의 표현입니다. 더이상 호소할 곳이 없고 이 절망은 이 호소는 그리고 이 절규는 오직 내 귀에만 들리고 내 가슴 속에서만 메아리 치고 있을 뿐이라고 가슴이 찢어지는 마음을 담아 시로 적었을 단종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옵니다.


어느 낯선 바람에 꺾여 동강 강물에 버려진 흰 꽃 한 송이가 있었습니다. 세월을 따라 떠내려가던 그 꽃이, 어느덧 은막 위에서 다시 피어나 오늘 우리의 눈물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역사에서는 언제나 칼이 눈물을 이기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무도하게 휘두른 칼날은 끝내 패배하고 만다는 사실을,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이 눈물들이 조용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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