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민성 대장 증후군

그리고 대장독재자

by Ted

나의 과민성 대장은 나에게 많은 요구를 해왔다. 그러한 요구가 구체적이며 불가역적인 판단이 되었을 때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으며 지나치게 많은 불편함을 참고 살았던 때였다. 갑자기 온 몸에 나타난 두드러기를 참다 못해 방문한 병원에서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라는 말을 듣고 난 뒤에야 나는 내 몸에 미안함을 가졌더랬다. 지난 수십년간 나의 대장은 대장이 아닌 졸병의 모습으로 온갖 맞지 않는 음식을 소화해 내느라 무지막지한 노동을 해왔던 것이고 급기야는 피부에 신호를 보내 그만 괴롭히라는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우유를 끊고 밀가루를 줄였다. 가장 힘든 것은 라면이었는데 각종 채소를 투하한 형태로 협의를 보았다. 물론 나의 대장이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은 여지없긴 했어도.

그런데 오늘 아침, 자다 깬 어리숙한 나 자신이 일을 냈다. 일어나자마자 눈에 보였던 발효된 빵이 나의 경계심을 허물고 손이 빵을 집게 했으며, 맛있는 빵에 발라먹을 치즈와 버터, 즉 나의 대장을 괴롭힐 자객을 내손으로 넣어버리는 실수를 한 것이다.

오후 5시가 훨씬 지난 지금 나의 대장은 소리를 지른다. 왜 이런 시련을 주셨냐고 하는 것 같다. 가만히만 있어도 대장은 꾸루룩 소리를 내고 있다. 그 소리가 상당히 커서 옆 사람이 쳐다 볼 정도다. 미안하다 대장아. 하지만 이 마저도 지나갈 것이다. 신호가 오면 내가 주저없이 힘을 줘 보겠다. 그리고 다시는 네가 싫어하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

나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라는 병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대장을 너무 낮춰 보는 것만 같아서다. 힘없는 대장이 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줬다면 나의 대장은 이렇게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의 많은 왕들과 잘못된 지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나의 대장에게 독재자였으며 합리적이지 못한 일을 시켰던 것이다. 그러니 대장을 과민하다고 말할 게 아닌 것이고 나를 대장독재자 혹은 대장혹사자로 불러야 할 것이다. 미안하다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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