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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Feb 05. 2018

성북동과 시인 김광섭,
그리고 화가 김환기

[6호] 편집부

  시인 김광섭은 1961년부터 불과 5년이라는 짧은 세월을 성북동에서 살았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그 어느 것보다 깊다. 아마도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성북동 비둘기’를 쓴 시점이 이 시기이었기에 그럴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성북동은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그의 시는 내면의 세계나 이상향을 관념적인 표현으로 노래하였으나 성북동에서의 삶을 기점으로 변화되었다.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표현방식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뇌출혈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되지만 어렵기만 한 그의 시가 우리 곁으로 내려와 보다 편안하게 이해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인가 작곡가 모리스 라벨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볼레르’는 치매 증상이 보이는 시점에서 만들어 졌다고 하는 것이다. 주제가 169번이나 반복되는 것이 그런 증거라 한다. 일반적으로 치매가 심화되면 한 말을 또 하고 또 한다는 것이다. 그처럼 라벨은 한 주제를 끊임없이 반복하였다. 그러나 조금씩 음이 고조시키거나 변형시키면서 같은 느낌이 없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그 어려운 클래식을 보다 쉽고 편안하게 접근하게 만들었다. 달콤한 매혹적인 ‘볼레르’는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를 닮아있다.


  또 다른 그의 시는 위대한 미술작품을 낳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저녁에’라는 작품이다. 그의 절친한 친구, 김환기 화가가 김광섭 시인의 이 작품을 보고 그림으로 표현했다.  뇌출혈로 인해 죽음을 예감하며 쓴 시가 이것이다. 그는 ‘밤을 깊을수록 /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고 했다. 사라질 그의 운명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 시를 본 화가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작품으로 응답하고 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 새’라는 작품을 보면 소녀의 운명을 연장하기 위해 노화가가 벽에 영원히 지지 않을 잎새를 그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화가 김환기는 밝음 속에서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무수한 별을 캔버스에 그린다.

  그들은 성북동에 나누었던 우정을 위대한 작품으로 승화시켜 우리 곁에 남아 있게 했다. 이번 마을 잡지에서는 그들의 삶과 예술 세계를 정리해 보았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시인 김광섭이 살았던 집 앞에 안내판 하나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가 살았던 집터를 찾았으나 없었다.

또 성북동 168-34(새 주소 : 성북로 10길 30)에 들어선 원익 스카이 빌에 사시는 주민들은 그들이 어느 시인이 살던 그 터 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까?

더불어 주위 어르신께 물어 ‘성북동 비둘기’에 나오는 채석장이 벼랑을 깍은 흔적인 역력한 주차장이 되고 한진 아파트가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저녁에

-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을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작가 김환기, 크기 236*172cm, 제 1회 한국미술대상전 대상 수상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6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5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5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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