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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Feb 04. 2018

화가 김환기와 작품 해설

[6호] 글 장유정

  2015년 10월 성북천에는 김광섭 시인의 시가 나부꼈다. <성북동 비둘기>로 우리에게 친숙한 김광섭 시인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여, 시민들이 그의 시를 한글 서예나 캘리그래피로 쓴 것을 깃발 현수막으로 만들어 설치한 것이다. 수많은 시들 중 유난히 <저녁>이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중략)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랴.


  이 시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수화 김환기(1913- 1974)의 그림 한 폭이 생각난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가 바로 그 작품인데, 김광섭 시인의 시 <저녁>(1969)의 마지막 두 구절을 가져 와 제목으로 삼았다.



 김환기가 뉴욕으로 건너가 예술가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을 때, 한국일보에서 만든 제 1회 한국미술대상에 응모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마침, 김광섭이 오랜만에 시를 발표했다며 보내온 잡지에 수록된 <저녁에>를 읽고 이 작품을 그리게 된다. 당시 김환기는 한국에서 쌓아올린 작가로서의 명성과 미술계의 인정을 내려놓고 뉴욕으로 가, 외로움을 견디며 날마다 열 시간 이상을 그림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에게 조국과 벗들은 그리움에 사무치는 대상이었다. 뉴욕에 간 지 두 달도 안 되었을 무렵의 그의 일기를 보면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조국이라는 게, 고향이라는 게, 내 예술과 우리 서울과는 분리할 수 없을 것 같애…’(1963년 12월 12일)라고 쓰고 있을 정도다.

  어쨌든 김환기는 이 작품으로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게 되었고, 수상 소감에서 “그리운 친구들을 생각하며 점 하나하나를 그렸다”고 밝혔다. 성북동 노시산방을 헐값에 넘겨 준 김용준, 결혼식 주례를 서 준 고희동, 부산 피난 시절 국립박물관에서 현대미술 전시회를 열어 그림을 팔아 준 최순우, 성북동 시절부터 깊은 교제를 나누었던 김광섭 등등. 그리운 얼굴들이 푸른 점이 되어 대형 화폭에 하나하나 찍혀 갔을 것이다.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희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1970년 1월 27일자 김환기 일기 중)”


  이 작품이 출품되었을 때 한국 화단은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의 정서,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백자 달 항아리, 매화, 학, 산, 강 등 전통 문화나 자연을 소재로 반구상의 그림을 그려왔던 김환기의 화풍이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뉴욕에 간 뒤 단순한 원색의 색면을 거치더니, 점차적으로 점들을 반복적으로 찍어 화면 전체를 덮는 전면 점화로 변해갔던 것이다. 물론 이 점들은 이전 그림들에서 보이던 산의 윤곽이나, 바다에 떠 있는 섬 등을 더 추상화시킨 것으로, 자연에 가까이 가려는 그의 근본적인 마음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중에는 자연을 우주로까지 확장하여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김환기는 뉴욕에서의 피나는 노력 끝에 자신의 새로운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했지만,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평소 ‘이런데서 누워서 쉬면 좋겠다’며 즐겨 갔던 뉴욕 발할라 마을 켄시코 묘지에 영원히 잠들었다. 김환기와 가까이 교유했던 최순우의 표현대로 ‘한국의 멋을 폭넓게 창조해내고 멋으로 세상을 살아간 참으로 귀한 예술가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예술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성북동의 예술가를 이야기할 때마다, 때로 김광섭의 시를 보면서도 말이다.


장유정은 성북 예술창작터 큐레이터로 성북주민을 위한 여러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6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5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5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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