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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Feb 06. 2018

여행에서 만나 삶이 된
차 이야기가 흐르는, 티차이차

[6호] 우리 가게를 소개합니다|글 이장환

  2012년, 봄꽃이 지고 나뭇잎 색깔이 진해지기 시작한 초여름에 티차이차(TEACHAICHA)를 열었다. 내 삶의 초여름에게도 흥미를 잃지 않고 오래 할 수 있을 일을 선물하기로 했다. 긴 여행 속에서 길동무가 되어준 ‘차(tea)’와 함께라면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발품을 팔아 장소를 구하고, 공간을 준비하고, 아담한 공간에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빈 공간에 차가 가득 쌓이고, 가게를 열 수 있었다. 그곳에 내가 원하는 차와 이야기, 사람들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작고 소박하지만 내게는 소중했다. 나와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함께할 안식처를 마련한다는 의미이니까!


  처음 이름은 J’S TEA HOUSE(제이스 티하우스)였고, 2014년 여름 TEACHAICHA(티차이차)가 되었다. 이곳이 전 세계의 ‘온갖’ 차를 파는 곳이기 때문이다. 티(tea)와 차이(chai)와 차(cha)를 판다. 맑고 산뜻한 녹차, 조금 더 달콤하고 편안한 루이보스, 다양한 꽃과 과일이 더해진 허벌티... 내가 권하고 싶은 다양한 차를 소개하기로 했다.


  봄이면 화사한 꽃 화분과 함께 생기를 느낄 수 있는 차를 준비한다. 여름에는 더위를 식혀줄 냉침차가 더해진다. 가을, 겨울이면 몸에 온기를 불어 넣어 주는 차와 밀크 티를 준비한다.

  차를 주문하기 전, 짧게는 2~3주, 길게는 2달 동안 시음을 반복하면서 고민에 빠진다. 계절, 품질, 개인적인 취향과 호기심을 반영한 예비 목록을 만들기 위해서다. 계절에 어울리는, 소개하고 싶은 차를 고른다. 반복되는 시음과 예민한 감각을 유지하기 쉽지 않지만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선별한 차를 풀어 담고 정리하다 보면 바닥에 떨어진 마른 찻잎과 꽃잎이 발에 밟혀 바스락 거린다. 소리가 좋다. 가게 안은 어느 꽃집보다 화려한 향기로 가득 찬다. 차와 차향이 넘쳐나는 시간이다. 선택된 차는 찻통에 담겨서 손 글씨로 이름을 적어 진열대에 올린다.



  가게 문을 열고나면 소파에 걸터앉아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흩날리는 꽃과 푸릇푸릇한 나뭇잎의 떨림 가벼운 소음을 내며 달리는 차들과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이 조금 현실감 없어 보인다.

  작은 냄비에 밀크티를 끓인다. 불을 조절 하면서, 설탕을 더해 조금 달게 끓여낸다. 가게 안이 달콤하고 따뜻한 향기로 가득 찬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짧은 휴식을 즐기는 시간이다. 대학 시절, 나는 독수리 사냥에 관심이 많아 매년 몽골오지를 찾았고 그것을 주제로 졸업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추위를 떨어내라고 몽골북부 울기의 사냥꾼들이 건네주던 말과 야크의 젖을 넣은 차가 요즘 내가 끓이는 밀크티와 다르지 않았다.

  찻집 한쪽 벽에 걸린 사진을 바라본다. 사진 전시를 마치고 미련이 남아서 이렇게 걸어두고 있다. 가끔은 찻집의 분위기나 계절과 안 어울릴까 걱정이지만 아직은 몽골 사진이 좋다.




  찻집으로 손님이 들어오고 조용히 메뉴를 살피고, 차를 묻는 짧은 대화가 오간다. 기대에 찬 눈빛을 받으며 선택을 기다리는 차들이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제각각의 색과 모양의 차 통만큼 각각의 특별한 향과 맛이 기대감을 키운다. 손 글씨로 쓴 차 라벨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차를 가리키고, 차 통을 열어 향기를 맡는다.

  차를 주문하고 창가 소파에 앉으면 천천히 차를 내릴 준비를 한다.

  나무로 된 바와 작업대 사이에 차를 내기 위한 다기와 준비물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물이 끓어오르는 사이 차 주전자와 찻잔을 준비하고 차를 덜어낸다. 다양한 종류의 마른 과일과 꽃의 향기가 퍼지고 선택한 차의 풍미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다.

  

  티차이차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차를 공부하게 되면서, 공부하듯 혹은 약 먹듯 차를 마시기보다는 가볍게 즐기면서 차와 만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차를 즐긴다는 건, 무언가를 우려내어 마시면서 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복잡하고 오랜 역사와 세세하고 전문적인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건 즐겁게 마시는 것이다. 차 맛을 이야기하거나, 원하는 차를 고르기 위해서, 차의 품평을 위해서도 다양한 맛의 경험은 중요하다. 다양한 비교와 체험 없이는 차를 이야기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렇게 지식과 자료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나 스스로도 아직은 더 즐기고 더 편안하게 느끼기를 원한다.

  무엇보다 차(TEA)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향과 맛을 느끼며 이야기 나눌 줄 아는 사람이 차를 진짜 즐기는 사람이 아닐까? 대단하고 특별한 차라고 해도 누군가가 마시고 즐길 취향의 대상이다. 스스로 즐기고 ,각각의 차에 담긴 고유의 풍미와 특별함을 느끼고, 흔쾌히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각자의 취향과 기분을 존중하고 함부로 다루지 않아야 한다.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일과 차를 아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순간이라도 그런 태도를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차는 그런 것이다.

  여러 차를 경험하면서 배합 된 차에 관심이 많아졌다. ‘블랜드 티(BLEND TEA)’다. 복잡하고 오묘한 조합에 집중해 보면, 개별적인 향과 개성을 존중하면서 또 다른 조화를 이루는 솜씨에 놀란다. 향과 맛, 색의 조화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차. 마른 꽃잎들, 과일 조각, 나무뿌리나 허브 잎사귀 ,때로는 초콜릿과 사탕 조각들이 찻잎과 섞여 있는 모습들이 마법의 연금술처럼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요즘처럼 선선한 공기가 마을을 감싸고 반짝이는 가을의 햇볕이 가득할 때, 차 한 잔을 우려 놓고 찻집에 앉아 계절을 즐길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지난 4년 동안 내 생활뿐만 아니라 이 찻집과 일상에도 변화가 있었다. 성북동 찻집에는 다채로운 차들과 그에 관한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차게 되었다. 빈 구석이 많던 찻집이 지금은 좀 더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변하고 있다. 차에 익숙해진 고객들도 많아졌다. 티차이차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고 했지만 아직은 시작이다. 차와 찻잔, 차주전자와 이런저런 다기들, 화분의 꽃과 나무를 가꾸고 살펴 조화롭게 만드는 일도 그를 위한 노력이다. 차를 우려내고 나면 공간을 화사하게 채우던 향기는 사라지지만, 그 순간의 기억은 가을 석양빛처럼

오감에 남아 있을 것이다.

  혼자 찻집을 지키지만, 손님을 기다리는 200여 종의 차와 늘어선 다기들, 화사하게 꽃을 피운 화분들, 내게 새로운 여행을 부추기는 손님들이 모두 어우러져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여기는 성북동 TEACHAICHA(티차이차)다.


이장환은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고 차 마시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 2005년 여름, 처음 만난 독수리 사냥에 매료되어 그 후 수차례 몽골을 드나들며 ‘독수리 사냥’을 출판했다. 현재는 성북동에 거주하며 작지만 특별한 찻집, TEACHAICHA(티차이차)를 운영하고 있다.


위치.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52-2 (성북동 170-44)

전화. 010-7126-6135 / 메일. nakidas@gmail.com

블로그. http://mobsquard.blog.me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6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5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5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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