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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Feb 19. 2018

‘성북동, 시인과 만나다’가 열린
염상섭옛집을 다녀와서

[6호] 리뷰|글 서정혜

  멋진 시인을 남편으로 둔 친구의 권유로 몇몇 친구들과 함께 이 가을 문화행사에 초대받았다.

  성북동 주민은 아니지만 성북동을 내 집처럼 누구보다 더 자주 왕래하는 터라 그 만큼 이 행사에 관심이 많았다.

  처음 가보는 성북동 골목길에 우리를 맞이한 것은 예전부터 꿈 꿔왔던 마당, 정원이 있는 아담한 주택이었다. 모양 빠진 아파트살이에 익숙했던 우리는 마치 이방인들처럼 주변을 맴돌다가 어느덧 시인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염상섭님이 과거에 이곳에서 머물렀다는 사실 하나로, 학창 시절에 배웠던 자연주의적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3.1 운동 직전 식민지 시대의 비참한 민족 현실을 표현한 ‘만세전’이 머리 속에 스침과 동시에 그 동안 시를 잊고 멀리했던 우리에게 시를 선물해 주는 자리임에 틀림없었다.

  군데군데 비춰진 나지막한 조명과 푸르른 나무들 아래에, 초대시인 박인환님의 등장은 참으로 절묘한 조화였으며, 그 분의 시 낭송을 통해 아름다움, 슬픔, 낭만, 외로움, 그리움 등등 우리에게 왜 이러한 감정들이 필요한 건지, 시를 쓰고 느끼는 감성 그 자체가 곧 삶의 목적이 아닌가, 그리고 우리 삶의 일부가 곧 시 인 것을, 시 자체의 분석만으로 온전하게 시를 이해할 수 있는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시를 지면에서만 만나다가 이렇게 대화하는 자리에서 접하게 되니 시의 장르가 다시 새로워지며 좀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우리의 생각을, 감성을 표현해서 서로 공감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렇게 시에 대한 감성에 푹 빠져 있는 가운데 우리의 귀를 자극한 또 하나의 작품, 바로 가수 정밀아 씨의 기타 반주와 함께 한 노래였다. 그야말로 두 귀의 감각기관이 완전 집중되어야 들을 수 있는 읖조리는듯한 노래 소리. 우리의 잊혀져가는 감성을 파고드는 그녀의 음성은 깊어가는 늦 여름밤의 정적을 깨고 결국 시와 음악이 어울어지니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며, 이러한 자리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소리이고 나지막한 주장이었다.

  계속해서, 특히 신현수님의 ‘우루무치의 사랑’을 통해 시간은 결국 침묵으로 소리 없이 흐르고 있음을, 최성수님의 ‘성북동에게’를 듣고서는 성북동을 사랑하는 진심이 가슴에 전율로 느껴지며 염상섭 님이 그 곳에 함께 계셨더라면 하는 생각과 더불어 그 순간에 우리 모두는 성북동 주민이 된 듯하였다.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짜여진 그물 속에서 이젠 벗어날 수도 없고, 우리네 삶은 막막해져간다. 이러다가는 하늘이 컴퓨터 화면처럼 느껴져 가상과 현실이 구별조차 안 될 것 같은 세상에 사는 우리네들의 기계같이 메마른 삶에 크나큰 위로가 되는 것은 ‘시’인 것을.

  아무리 세상이 컴퓨터 화면으로 바뀌어도 시를 읽음으로서 우리의 감성을 촉촉이 적시게 되면 좀 더 인간적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때로는 無의 세계가 가장 적극적인 표현이라고는 하지만, 글을 쓰기도 하고 읽기도 하고 느껴보기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되는 지금, 이제 청명한 가을은 점점 깊어만 가는데 다음에 있을 ‘시인과의 대화’가 더욱 더 궁금해진다.


‘성북동, 시인과 만나다-네 번째’가 열린염상섭 옛집


서정혜는 성북동에 이웃한 돈암동에 살고 있는 주부다. 성북동을 사랑하며, 성북동의 문화에 관심이 많고, 가끔 성북동 나들이를 통해 문화가 살아있는 동네의 아름다움을 맛보는 즐거움을 무엇보다도 아끼는 사람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성북동의 행사에 꼭 참여하는 즐거움을 자주 갖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6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5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5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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