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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Apr 01. 2018

월요약국으로 오세요

[8호] 주민기고|글 최주애

  “반갑습니다! 약은 없지만 약이 되는 이야기가 있는 월요약국입니다.”


  약국인데 약은 없는, 매주 월요일에만 열리는 성북동의 특별한 약국이 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일, 외부 침입자로부터 우리 몸을 지키기 위해 일어나는 일, 여성이라서 더 복잡하고 특별하게 일어나는 신비로운 일 등, 분명 우리 몸 안에서 매일 쉬지 않고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정작 잘 모르는 것들이다. 월요약국에서는 이런 일들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며 건강한 생활습관을 강조한다.

  나는 올해 7년차 약사로 졸업 후 줄곧 약국에서 근무해왔다. 사람을 좋아하고 낯가림이 없어, 다양한 손님들을 맞이하는 약국이라는 일터에 만족하고 있다. 물론 어렵고 까다로운 손님을 만나면 힘들기도 하고 속상한 일도 있지만 반대로 보람되고 즐거운 일들도 많은 곳이 약국이다. 아직 개국을 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내가 꾸린 약국에서 손님들을 맞이하며 건강을 돌보는 약사를 꿈꾸고 있다. 그런 마음을 품고 고즈넉한 성북동의 분위기에 반해 이사를 온지 몇 달 후, 우연히 17717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문화기획자 김선문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가 있었다. 성북동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엮어 여러 가지 문화예술 기획을 하는 김선문 씨의 눈에는 사회적경제와 마을활동에 관심 많은 약사가 참 독특해보였던 것 같다. 나의 관심사와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쭉 들어보더니 이 동네에서 무언가를 같이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했다. 이것이 월요약국 기획의 시작이 되었다.


  이야기가 오가고 곧바로 월요약국을 시작한 건 아니다. 2015년의 초여름에 처음 이야기를 주고받고 그 후로 1년이 지나 올해 8월에 진행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처음엔 약사인 내가 동네에서 약 없이 무얼 할 수 있을까 막연했다. 문화예술 분야 기획을 바탕으로 운영하는 17717과 약학이라는 분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약사와 시민이 처방전을 매개로 소통하는 것을 넘어 직접 관계 맺는 방식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배운 것을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렇게 월요약국에 대한 방향을 잡게 되었고 곧 진행하게 된 것이다.


  어깨에 피로곰을 올려둔 당신, 잔병치레가 많아 툭하면 골골대는 당신, 건강한 아름다움을 갖고 싶은 당신, 내가 먹을 영양제를 못 고르는 당신. 이렇게 4주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홍보를 시작했다.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반, 너무 많이 와서 공간이 부족하면 어쩌나 하는 설레발 반으로 첫 월요약국이 열릴 날을 기다렸다. 나름의 준비는 열심히 해왔는데 정말 아무도 안 오면 남은 3주를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첫날 공간에 준비된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와주셨고 덕분에 나는 너무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4주 간의 월요약국을 끝까지 진행할 수 있었다.



  월요약국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프로그램이 진행된 4주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와주셨던 신혼부부가 있었다. 오실 때마다 꼼꼼하고 정돈된 필기와 함께 내 이야기를 경청해주던 분들이었는데 4주 간의 월요약국을 마친 바로 다음 화요일 아침, 남편 분을 만난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드렸고 마침 출근방향도 같아서 지하철에서 잠시 얘기를 나누었는데, 약국에 가면 붙어있는 포스터 같은 것들이 달리 보이고 최근에 보았던 다큐멘터리의 내용도 월요약국을 듣고 보니 더 쉽게 이해가 가더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또한 지금 건강을 위한 작은 것들이 나중을 생각하면 큰 차이를 가져오니 잘 실천해보려 한다는 말에 뿌듯함을 느꼈다.


  월요약국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동네주민들의 이야기를 맘껏 듣고 또 각자의 이야기에 맞는 도움을 주는 소통을 통해 약사로서 어떤 마음가짐과 방향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야할지를 생각하는 소중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소중한 기회를 맘껏 펼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성북동에 있는 17717과 동네공간이 너무나 큰 도움을 주었다.

나 혼자였다면 아마 앞으로도 영영 시도해보지 못하였을 일들이다.


  8월의 월요약국은 준비한 주제들이 일반인들이 듣기에 무리가 없고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들인지 점검해보고 진행방식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알아보고 왜 우리가 건강한 습관을 가져야 하는지 대화를 나눠보는 월요약국의 기본은 유지하되, 그러한 습관을 실천해보며 스스로 변화를 느껴볼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는 것이 다음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회성 참여가 아닌, 꾸준한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꼭 필요한 부분이다. 쉬운 작업은 아니겠지만 꼭 진행해보고 싶은 기획이다.


  저마다 느끼고 있는 본인의 건강 문제와 더불어 건강해지려는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는 막연해한다. 방법은 알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건강을 지키는 주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건강을 위해 유난스럽게 굴자는 말이 아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한 스스로의 선택이 생활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월요약국이 우리 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바람직한 생활 습관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건강한 삶을 지향하고자 하는 분들이 함께 소통하는 곳으로 성북동에 자리 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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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애는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고, 그 꿈을 이루는 수단으로 약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7년 차 약사이다. 다른 이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일상이 건강해지도록 하는 일을 사랑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자극받는 일을 좋아한다. 현재 ‘어린이 여성건강을 위한 약사모임’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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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17은 성북동 177-17번지(성북로8길 11) 지하에 위치한 문화·예술 및 전시 공간이다. 주민공동체 성북동천이 발행하는 마을잡지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간행사업에서 편집디자인 역할을 맡아 함께 해오고 있다. 2016년에는 <청년활력공간지원사업 우리동네 무중력지대>에 선정되어 청년, 지역 주민이 힘을 모아 문화·예술을기반으로 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으며, 월요약국은 그 활동의 일환으로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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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공간은 성북구 지역 사회에서 활동 공간을 필요로 하는 주체들이 필요한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고자 만든 공동공간이다. 궁극적으로는 지역 내 활동 주체들이 필요한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는 공간 자급의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2016년 10월 현재 성북동 동네공간은 건축그룹[tam], 성북동천, 성북마을살이연구회, 성북마을기금협의회, 성북마을무지개, ㈜아트버스킹, 이예례 가족, 창작집단미러, 한살림 성북동마을모임 등 성북동/성북구 기반의 주민모임, 단체, 회사 등이 공동 사무/활동 용도로 함께 꾸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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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8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6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6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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