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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Apr 01. 2018

마을미디어, 지역공동체, 어쩌다 4년차

[8호] 편집후기|글 김기민

2016년 병신(丙申)년, 성북동천도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도 따져보니 햇수로 어느덧 4년차를 맞이했다. 지난 2013년 성북동 마을학교에서 만난 성북동 주민들, 지역의 문화 기획자와 예술인, 비영리단체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가운데 몇몇이 모여 ‘성북동천’이란 단체를 설립하고 숨 가쁜 활동을 이어가다 문득 시간을 돌이켜보니 그러하다. ‘어느덧’이란 말보단 그냥 어쩌다 보니 4년여를 맞이했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모임에서 상시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상근하지 않으며 전임으로 노동하지 않는 와중에, 순전히 회원을 자임하고 무보수 자원 활동을 자처한 사람들에 의해 지금까지 굴러 왔으니까 말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경험이 쌓여 익숙해지고 일이 손에 익어 많은 것들이 좀 더 수월해지지만, 동시에 더 많은 책임감과 중압감을 갖게 된다. 우리가 지역 안에서 그간 해온 활동과 만들어온 잡지가 그 가치를 인정받고 쌓은 역사를 존중받는 만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라도 해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비단 이 잡지가 성북구와 서울시의 재정으로 조직된 공모사업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여 제작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책임의 시발점이라면 종착점은 이후 이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노력과 공, 그리고 그 결과물로서 만들어진 잡지를 애정하고 소중히 여기며 늘 다음 호를 기다리는 독자들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는 분들 앞에서 한 없이 왜소해지고 작아진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읽는 분들에게 떳떳한 잡지를 만들기란 얼마나 어렵고 힘겨운 것인지 해를 거듭할수록 좀 더 명징하게 인식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고민한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마을 잡지란 무엇인지, 진정한 마을미디어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단지 지역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마을미디어가 될 수 있을까? 지역에 거주하거나 생활하는 사람들이 만들면 마을미디어가 되는 것일까? 서로 듣기 좋고 보기 좋은 내용만으로 채워서 공유하고 나누는 것만으로 마을미디어가 제 역할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리와 비영리, 공익과 사익 사이 그 어딘가 쯤에 발 딛고 서 있는 것이 옳을까? 이 모든 질문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똑 부러지게 응답할 수 있을까.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는 한 지역의 모든 주민들이 대면 접촉하며 관계 맺을 수 없는 지금 세상에서, 그렇다고 내가 사는 동네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는 채로 삭막하게 살고 싶진 않은 우리 마음 속 바람과 소망을 ‘성북동천’이란 모임을 통해, 그 모임이 하는 활동을 통해 실현시켜 보고픈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만드는 과정 자체가 우리에겐 만남이었고, 결과를 나누는 것 또한 만남의 연속이었다. 비록 만남과 관계의 확장은 말도 못할 만큼 느리고 티도 나지 않을 만큼 소소했지만 세월과 노력은 무상하지 않았다.


하면 할수록 고민이 깊어지고, 고민이 깊어질수록 할 일은 많아진다.

마을잡지를 애정하시는 독자 분들을 좀 더 적극적인 참여의 영역으로 초대하고, 그분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좀 더 활동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다지는 과정을 미룰 수 없다. 편집위원으로, 운영위원으로, 활동회원으로, 후원회원으로, 기고자로, 그 밖에 많은 역할들로 부단히 모심으로써 우리가 가진 한계를 넘어 확장해야 한다. 더불어 재정도 확충하고 사업재원과 운영 경비도 마련해야 한다. 지역 안팎의 다양한 활동 단위들과도 활발히 교류하고 부단히 소통하며 관계망을 다져야 한다. 마을미디어를 사익 추구의 방편으로 삼는 것을 지양하면서도 자위 수단에 머무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공익과 비영리, 자부심과 명예 사이의 그 어딘가 즈음에서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가 갖는 고유의 색깔과 정체성, 우리가 시작할 때 먹었던 그 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을 때까지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치지 않아야 한다. 사무실 임대료를 내는 것이 벅차도, 노트북이 낡고 오래되어 버벅거리는 것을 악착까지 쓰고 또 써야 할지라도, 그러다가 기껏 교정·교열 본 원고 수정안, 사업비 증빙과 인건비 지급신청을 위해 준비해둔 서류들이 온데간데없이 몽땅 다 날아가도, 그래서 더 이상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1도 생기지 않게 되더라도 지쳐서는 안 된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와도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을 의심하지 않는 마음으로, 캔디처럼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으면서 말이다. 어쩌다 4년차는 여간 굳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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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민은 성북동천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으로, 숫자에 1도 관심이 없지만 어쩌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줄곧 총무를 맡아왔다. 나름의 정리벽 덕분에 지난 몇 년간 사업운영담당자 역할만 맡으며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편집위원회 밖에서 실무 지원을 하거나 요청받은 원고를 조금 썼다. 2016년에 편집위원회에 합류함과 동시에 (불현듯) 순번제로 돌아가며 맡는 편집위원장이 되어 7·8호 간행을 총괄하게 되었는데, 왠지 9·10호간행도 맡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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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8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6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6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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