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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Oct 16. 2018

성북동에서 갤러리를 하는 이유

[11호] 성북동 문화아지트|글 아트스페이스 H

  아트스페이스 에이치(Artspace H)는 예술 작품을 거래하는 상업 화랑입니다. 모든 전시 관람은 무료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명절에만 휴관입니다. 전시는 통상 한 달에 한두 번 이루어집니다. 2008년 4월 북촌지역 창덕궁 담 근처에 갤러리로서 첫 전시를 시작했습니다. 올해로 정확히 만 10년이 된 갤러리입니다.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들이 마음껏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자는 것이 갤러리 설립 취지였습니다. 

  성북동으로 2016년 5월 1일에 이사를 와서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강호동 씨가 출연했던 1박 2일에서 북촌이 알려지면서, 조용했던 북촌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관광지 동네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반해 성북동은 고즈넉한 옛 동네의 정취를 머금고 있지만, 아직 개발의 손길이 덜 닿은 동네라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시내 중심지에서 지하철로 삼십 분 떨어진 곳, 십일 년 간 살았던 런던의 한 작은 동네 - 그 한적한 느낌을 이곳 성북동에서 종종 느낀답니다. 성북동의 진정한 매력은 슬로우 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동네라서가 아닐까요? 


  갤러리 주차장에서 바라다 보이는 70, 80년대 주택들이 무척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미래의 성북동은 예술가들이 주도해서 변화시켰으면 합니다. 문인, 음악가, 건축가, 예술가들의 작업실, 공방, 갤러리, 자그마한 가게들이 어우러져서 예술과 문화로 이루어진 멋진 동네로 거듭나는 데에 우리 갤러리도 일조하고 싶은 바람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정체성을 상실하면서 흥미를 잃어버린 인사동, 삼청동, 대학로, 로데오 거리, 가로수 길과 같은 전철을 성북동만큼은 절대 밟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할 뿐입니다.


  아트스페이스 H는 성북로 49 운석빌딩 2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운석빌딩이라는 간판이 없는 관계로 홈베이스 슈퍼마켓이 있는 건물이라고 설명한다면, 성북동 주민들은 쉽게 알 것 같습니다. 영어로 아트스페이스는 갤러리를 뜻하는 예술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요즘은 갤러리라는 용어보다는 아트스페이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갤러리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듯합니다. 

  영어 이니셜 H는 몇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는 휴머니티(Humanity), 하모니(Harmony), 해피니스(Happiness)를 뜻합니다.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과 작품을 구입하는 컬렉터들도 모두 사람입니다. 사람이 우선입니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 예술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갤러리의 역할은 작가와 컬렉터를 조화로운 관계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술 작품을 통해서 모두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것이 갤러리의 존재 이유입니다.  


  성북동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근현대 시절 성북동에 살았던 수많은 문인과 여러 예술가의 문학과 예술의 숨결과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랍니다. 성북동 길을 걷노라면, 한용운과 김광섭의 시가 떠오르기도 하고, 장승업과 김환기의 숨결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성북동의 자랑인 길상사를 둘러보면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되새겨보기도 하고, 백석 시인과 김영한의 못 다 이룬 사랑에 가슴이 저미기도 합니다.  


  영리를 추구하는 상업 화랑이지만, 성북동에 있으면서 일 년에 몇 차례 성신여대 미술대학원생들에게 무료 전시의 기회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연말에는 예술가들과 컬렉터들이 힘을 모아 자선 전시를 열고, 이를 통해 기금을 마련하여 한성대 입구 역 근처에 있는 라파엘 클리닉에 기부도 합니다. 라파엘 클리닉은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 세우신 한국 거주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병원인데요, 재작년과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연말에 기부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갤러리를 하기 오래 전 미술 애호가 시절에 사간동에 있는 어떤 메이저 화랑에 전시 구경을 간 적이 있었답니다. 난생 처음 갤러리를 혼자 방문하려니 쑥스럽기도 하고, 작품을 사야하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도 생기고 해서, 십여 분쯤 문 앞을 서성이다가 누군가가 들어가는 틈을 타서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답니다. 갤러리를 십 년 해본 입장에서 아직도 일반인들에게 갤러리의 문턱이 높게 느껴진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하지만 우리 갤러리만큼이라도 언제든지 부담 없이 오셔서 편하게 오랫동안 구경하시면 좋겠습니다. 저희 갤러리는 성북동 주민들과 타 지역 관람객들에게 예술 작품이 주는 보이지 않는 가치와 행복을 선사하는 문턱 낮은 갤러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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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균은 어릴 적부터 책읽기를 좋아해서 다양한 책들을 읽다가 쇼펜하우어가 좋아서 동국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서양철학보다 중국철학과 인도철학을 좋아하게 되었고, 고전어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 산스크리트어와 고전 티베트어를 배우고자 영국 런던대 SOAS 칼리지에서 수학하며 인도 티베트 불교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7년 간 박물관 학예실장으로 일하며 한국과 티베트의 불교 미술을 연구했고, 2010년부터는 갤러리를 운영하며 한국 미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데 기여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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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1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8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8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8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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