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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Oct 17. 2018

소나무 아트스튜디오, 서울미래유산
- 윤중식 가옥

[11호] 우리동네 아트살롱|글 윤가현

  성북동은 나에겐 고향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1963년에 자리 잡은 이 동네에서 우리 세 자매는 태어나 자랐고, 유학과 결혼 후에도 나는 성북동에 작업실을 쓰며 이 동네를 떠나지 않고 있다. 할아버지께서 작업하시는 모습을 항상 보면서 자라서인지 내가 작가가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계속 작업을 하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그저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 역시도 어린 시절부터 속해 있던 나의 이러한 환경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가 머물렀던 장소를 미니어처로 제작한 후, 사진이나 영상 촬영을 통해 기억(기록)하는 작업을 해왔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부터의 기억이 담긴 우리집, 오랫동안 사용하던 작업실 공간 등을 미니어처로 제작한 후 촬영하는 프로세스를 거치는 작업 같은 것이다.

  나는 우리가 매일 점유하고 있는 익숙한 공간에서의 낯설지만 동시에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상상한다. 익숙함과 낯섦, 안전과 불안감, 현실과 비현실과 같이 상반되지만 항상 공존하는 두 가지 개념의 다이얼로그는 나의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키워드이다.  


  시카고예술대학(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유학시절에 아마도 향수병에서 출발해 제작한 ‘성북동 우리집 마당 <145-23, Seongbuk-dong, Seongbuk-gu, Seoul>’은 제작 기간 내내 우리집과 동네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지게 만들었다. 유학 전에도 딱히 노마딕 인생을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다녀온 후로는 성북동 집 근처에 작업실을 구하고, 성북동에 있는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는 등 동네에서 모든 것들을 하게 되는, 점점 더 동네를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2012년 가을, 한국에 돌아와서 성북동에 있는 갤러리 스페이스캔을 알게 되어 <오래된집 재생프로젝트> 레지던시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자주 지나다니던 골목길에 자리 잡고 있던 작은 집들,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오래된 집<성북동 62-10번지, 62-11번지>는 나에게 동네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의미를 갖게 만들었다. 

  재건축, 재개발에 대한 이슈가 항상 존재하는 서울에서 성북동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지금은 문화예술지구로 지정되어 어느 정도 개발이 제한되고, 실제로 10년 넘게 이야기되던 재개발이 최근 들어 구역 해제되기도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성북동의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던 오래된 집들은 그 자리에 다세대 주택들과 상가 건물이 세워지면서 달라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나에게 <오래된 집>은 어린 시절 기억 속 성북동에 대한 그리움을 더 키움과 동시에 낯선 풍경이 되어 버렸다.


  2013년 가을에는 성북동 스페이스 오뉴월에서 <서울지붕첫마을 성북동옛날사진전>에 기획과 작품으로 참여하였다. 동네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주민들이 옛날 사진들을 모아주고, 그 사진을 모아 두 벽면을 채웠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 가족들의 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사진을 모아 보니 여긴 어디였다, 원래 이 자리엔 뭐가 있었다, 어렸을 때 이곳에 가보았다, 하는 등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친근하고 그리운 전시였다. 

  나는 개인 작업으로 성북동 오래된 집들의 대문을 미니어처로 제작하고 그 문들을 재조합해서 골목길을 만든 다음 사진 촬영을 하였다. 완성된 사진 작업은 성북동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골목의 모습이었고,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아, 여기가 어디더라?” 혹은 “나 여기 아는데!” 등의 익숙하다는 반응들을 보이다가 이내 무언가 어색하고, 낯선 풍경임을 감지했다. 


(참고 :서울지붕첫마을, 성북동옛날사진전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창간호 72p)


<소나무 정원에서 펼쳐지는 키즈아트>

  부모님 댁인 성북동 145-23번지는 할아버지께서 오랜 세월 작업을 하셨던 공간으로의 의미가 큰 곳으로 [서울미래유산 – 윤중식 가옥]으로 지정된 장소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할아버지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화가 윤중식(1913-2012)
화가 윤중식(1913-2012)

평양 출생, 동경제국미술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교수, 국전심사위원,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장 역임
서울문화상, 은관문화훈장, 대한민국예술원상(미술부문) 수상 
개인전 <상수(上壽:100세)>(2012, 성북구립미술관)展을 마지막으로 별세


  내가 작업 활동과 함께 오랫동안 꼭 하고 싶었던 일인 아이들 미술 교육을 올해 <소나무 아트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할아버지께서 사용하시던 작업실 공간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소나무 아트스튜디오>를 준비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우리 가족의 일상이었던 이 집에서의 많은 추억이 새삼 떠올랐다. 특히 이 작은 별채 곳곳에는 할아버지 작업실이었을 때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옛날 창틀이 그대로 있고, 쓰시던 가구들 중에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는 것들도 있고, 작업실로 쓰실 때의 모습이 생생하다. 


  성북동 집 정원에는 200년 넘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다. 마당 안쪽으로 넓게 자란 소나무 가지들은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비나 눈도 막아준다. 봄비가 오는 날이면 우리집 강아지 동이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소나무 아래에 배를 깔고 누워 있기도 한다. 이 존재감 있는 소나무는 처음 스튜디오의 이름을 정할 때부터 당연히 고려 대상이었다. 스튜디오의 넓은 마당에서 자연재료와 환경을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고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소나무가 작업하는 우리 아이들의 배경이 되어주면 정말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할아버지의 작업실이었던 곳인 만큼 특별하게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앞서 언급했던 스페이스캔에서 <오래된 집 재생프로젝트> 레지던시를 하면서 교육 프로그램에 작가로 참여해 아이들 대상의 미술 수업을 했었는데, 그 수업은 아이들에게만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되었고, 아이들 수업을 어렵게 생각하던 나에게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의 작업 주제나 방법을 아이들의 수업으로 만드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소나무 아트스튜디오>를 함께 시작해서 운영하고 있는 또 한 명의 에듀케이터가 스페이스캔의 교육팀장으로 있었던 박선영 에듀케이터이다.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 이렇게 프로그램도 함께 만들고, 운영 전반에 대한 모든 것을 함께하고 있다. 


  소나무아트스튜디오의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 수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소나무아트클래스는 회화, 디자인, 조형, 미디어,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영역의 아트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수업이다. 아이들은 미술이 단순히 그리기, 만들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여러 장르의 복합적인 제작 과정을 통해 일상적인 것을 예술로 접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장르의 융·복합은 나의 작품 제작과도 큰 관련이 있다. 회화를 전공했지만 입체, 사진, 영상, 설치 등의 방법으로 작업을 확장해 나가며 항상 무언가 틀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러한 복합적인 예술 프로세스는 나로 하여금 새로운 분야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경험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작가클래스는 현대미술, 디자인, 코딩, 인테리어, 패션, 보드게임, 웹툰 등의 분야에서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작가 및 전문가와 어린이가 함께 만들어가는 수업이다. 이 클래스는 작가와 전문가가 진행 중인 작업을 모티브로 하여 아이들의 연령대와 특성에 맞도록 재구성한 수업으로, 그 과정에서 그들의 작품 제작 과정을 경험하고 다채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소나무 아트스튜디오>를 준비하는 2018년 상반기 내내,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넘치고 있다. 본격적으로 아이들 수업을 만들고 진행할 생각을 하면서 필요한 부분을 연구하다 보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배움에 대한 즐거움도 다시 느끼게 되고 무심코 지나던 것들도 다시 돌아보면서 수업에 창의적으로 응용할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 준비를 시작할 때는 이곳이 상가 건물이 아니어서 교육청 허가, 사업자등록 등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러한 행정적인 부분을 다 해결하고 프로그램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을 만나 소나무아트스튜디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즐겁다. 지금은 6세~13세를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점차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성북동 스튜디오에 있다 보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할아버지께선 매일 작업을 마치면 항상 붓 관리를 깨끗하게 하셨는데 언니와 나에게 자주 붓 빠는 것을 함께 하도록 해주셨다. 그때는 그게 매일매일 하는 하나의 놀이였다. 유화작업을 하셨기 때문에 항상 작업실에는 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는데, 우리는 그 냄새가 너무 익숙했고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항상 언니와 나를 데리고 뒷산에 올라가 함께 그림을 그리도록 해주셨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우리 자매의 인생에서 미술이 당연하게 자리를 잡았고, 언니는 디자인과 큐레이팅을, 나는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지금도 물론 그 연장선상에서 <소나무 아트스튜디오>를 기획하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할아버지께선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셨다. 우리 세 자매의 사진을 즐겨 찍으셨고 드로잉으로도 많이 옮기셨다. 우리가 친구들과 마당에서 뛰어놀 때, 골목길에서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날 때 항상 즐거워 하셨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할아버지께서 연을 직접 만들어 날리는 걸 알려 주시던 게 생각난다. 스튜디오 마당에서 아이들이 뛰어놀며 작업할 것을 생각하니 요즘 들어 부쩍 할아버지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된다.


  성북동집이 미술관이 되기 전까지, <소나무 아트스튜디오>를 이곳에서 할 수 있는 동안은 이곳의 자연환경과 문화예술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적인 특징을 최대한 살려 운영해 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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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현은 소나무아트스튜디오대표이자 에듀케이터이다. 중앙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시카고예술대학(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Art and Technology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오랫동안 머문 장소에 대한 입체, 사진, 영상 작업을 하며 성북동에 위치한 스페이스캔의 <오래된집 재생프로젝트>, 스페이스오뉴월의 <서울지붕첫마을 성북동옛날사진전>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성북동에 있을 때 가장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한 성북동 토박이 작가이다. 

*윤가현 홈페이지 www.yunkahyun.com


*소나무아트스튜디오

02)6339-0685

서울 성북구 성북로14가길 13-14 (서울미래유산-윤중식가옥)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onamu_artstudio/


*참고

- 성북동, 잊혀져가는 우리동네 옛 이야기를 찾아서, 46p, 성북동, 오늘의 예술가 – 윤중식

- <서울지붕첫마을, 성북동옛날사진전, 스페이스오뉴월> 전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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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1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8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8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8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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