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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Oct 18. 2018

푸른 시간

[11호] 17717 현장스케치|작가 이영은


#1

길을 걷다 스쳐지나간 그 사람은 집에 가서 무엇을 할까. 어떤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어떤 생각으로 휴식을 취할까. 하루를 되뇌며 감상에 젖어 있을까. 좀 더 빨리 들어오지 못한 것에 짜증을 내며 추레한 옷차림으로 쭈그려 앉아 드라마를 볼까.

그 사람은 지친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와 열쇠로 문을 열고, 아끼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반갑게 맞이하는 가족들에게 의례적으로 인사하며 방으로 직행한다. 이어서, 색깔도 맞지 않는 티셔츠와 바지를 아무렇게나 걸쳐 입고는 거울을 한번 보면서 ‘남들은 집에서 내가 이러고 있는 걸 상상도 못할 거야’ 라고 생각한다. 다음날 아침, 늘어난 티셔츠를 벗고 결혼식에 가기 위해 옷장을 뒤적인다.


위의 글에서 타인처럼 지칭한 ‘그 사람’은 타인에 의해 관찰된 ‘나’일 수도 있다. ‘나’ 또한 모두의 타인이며 ‘타인’은 모두 각각의 나이다. 우리는 사적인 공간에서만 지낼 수는 없기에 외부와 소통하기 위한 모습을 만들어간다. 공간과 환경은 하나의 매뉴얼이 되어 ‘나’를 다룬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최소한의 자아를 지키면서도 공개해도 괜찮을만한 어떠한 ‘표시’를 한다. 그 표시는 누군가에게는 내면의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고, 나를 방어해 주기도 하며, 행동을 규제하기도 한다.


알몸의 상태로만 생활하기에는 소통에 불편함이 있을 것이다. 그 불편함은 시각적으로는 더 이상 벗겨질 수는 없기 때문에 무언가로 가려야만 한다. 고로 작가 본인에게 옷이란, ‘나’와 ‘타인’과의 소통의 매개체이다. 내 몸 안에 있는 여러 생각과 행동들은 나의 외부에 속하는 공간들과 타인과의 만남에서 다양한 감정으로 공존한다. 이렇듯 각각의 ‘나’는 그들만의 완벽한 내면을 간직한 채 소통 가능한 외면을 이 곳 저 곳에 뿌린다.


#2

극이 시작하려 한다.

아직은 빈자리도 있고 채워진 곳도 있다.

넥타이를 한 사내와 그의 일행이 들어온다.

그들은 어딘가에 앉았고 무대를 바라보며 그렇게 있다.

침묵하기도 하고 함께 온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스웨터를 입은 사람이 들어온다.

그 사람은 침묵하며 무대와 바닥을 번갈아 바라본다.

극이 시작한다.

모두가 일제히 무대를 바라본다.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한 곳을 바라봤고 모두 조용했고 모두 멈추었다.

극이 끝나고 사람들은 함께 온 지인과 다시 이야기를 나누며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그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을 떠났다.


익명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공간과 하나의 시간, 그리고 취향을 나누는 곳인 극장. 순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각각 분리된 공기는 결코 섞일 리 없는 좌석의 범위 안에서만 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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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영은 

www.leeyoungeun.com

skyoath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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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1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8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8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8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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