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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Oct 20. 2018

디자인된 커피를 파는 카페, 디터틀입니다

[11호]우리 가게를 소개합니다|글 박병찬


안녕하세요디터틀입니다


  이제 세 번의 겨울을 지내고 다시 여름을 맞이하는 디터틀은 한가로운 성북동에서도 가장 한적한 골목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3년차에 접어든 지금도 처음 오시는 손님들이 “언제 생겼어요?” 하고 가끔 물어보시는데, 그때마다 저희가 정말 한적한 곳에 숨어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고는 합니다. 커피가 맛있어 꼭 다시 오겠다는 손님의 한 마디에, 힘겹지만 그래도 버텨왔던 시간들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하는 날도 꽤 있습니다.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기로 결정하고 공사를 한창 하고 있을 때 골목에 사시는 분들의 걱정스런 표정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유난히도 추웠던 첫 번째 겨울, 우리 부부 말고는 골목을 오가는 이가 아무도 없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추운 날들을 지나 이제 세 번째 여름을 맞이하며, 이 조용하던 골목에 저희를 보고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겼음에 언제나 감사합니다. 



디터틀이 무슨 뜻이냐고요?


  손님들 중에서도 가끔은 저희 이름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처음에는 그냥 이름이 특이해서 궁금해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조금 흐르고 보니 어쩌면 카페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으로 느끼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름지기 카페 이름이라면 좀 멋진 단어나 영어 외의 외래어로 짓거나, 요즈음에는 옛날 생각이 나는 이름으로 좀 더 멋들어지게 쓰는데 디터틀은 너무 쉽게 알 수 있는 단어 ‘터틀’과 생략된 문자 ‘디’로 이루어져 있으니 보는 분에 따라서는 조금 수상한 이름일 수도 있었겠습니다.

  디터틀은, 저의 커피일의 시작이 더치커피 공방이었다는 것을 아시는 분들에게는 아주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이름일 것입니다. 더치커피의 ‘D’와 그 추출의 과정에 잘 어울리는 ‘turtle’ - 사연을 알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조합이지요. 그런데 사실 그 안에 많은 것들이 숨어있기는 합니다. 일단 ‘터틀’은 제 별명입니다. 처음 사람들이 그렇게 부를 때는 별로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별명을 따라 점점 비슷해졌는지 이제 물어보시는 분들도 그 부분은 금방 알아차리시곤 합니다. 

  사실 이 이름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닮긴 부분은 ‘D’입니다. 가장 먼저는, 위에 쓴 것처럼 ‘Dutch’에서 따온 것입니다. 제가 커피를 하게 된 이유이자 카페를 열게 된 이유입니다. 저는 커피를 팔기 전에 한참동안 학생 신분이었습니다. 아시겠지만 그 공부라는 것이 잠과는 거리가 먼 분야이고 그 와중에도 정신은 또렷해야 하는 것이어서 그 시절 저는 커피를 엄청 많이 마셨었습니다. 에스프레소 더블샷, 그게 없었다면 당시를 어찌 버텼을지 상상할 수 없다고 할까요.

  그러던 중에 더치커피라는, 처음 보는 메뉴를 마셔보고는 제 커피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아이스로 마시면 향이 죽는 핸드드립과는 달리 향이 가득한 아이스커피. 그래서 그 추출 과정을 살피고 이곳저곳에 가서 마셔보고 검색해보고 느낀 것은 ‘지금 팔리는 더치는 제대로 자기 향을 내고 있지 않다’는 것과 ‘내가 직접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치커피라는 개념조차 생소해 도와줄 사람도 없었던 그 시절에 추출 기구를 만들어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마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시고 남은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고 또 그 사람들이 맛있다고 팔아보기를 권유해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시작한 것이 더치커피 공방 ‘디터틀’ 이었습니다. 그리고 커피를 마셔보려면 어디로 가면 되냐는 손님들의 문의에 답하고자 문을 열게 된 곳이 ‘까페 디터틀’입니다. 

  이름이라는 것이 단순하고 뜻도 명확해야 좋다는데 저는 미련이 많은 사람인지 이름 짓는 것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D’는 이밖에도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있습니다. 독보적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고유명사 앞에 붙는 정관사 ‘The’의 다른 발음이기도 하고, 제가 공부로 결실을 맺지 못해 가지지 못한 이름 ‘Ph.D’의 ‘D’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Designed coffee’의 ‘D’이기도 합니다. 그냥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추출되고 습관적으로 서빙되고 마셔지는 커피가 아니라 추출단계에서부터 잘 디자인되고 그것이 서빙될 때도 잔이나 식기, 부재료, 마시는 방법까지 그에 맞춰져있는 커피를 드리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수줍음이 많아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말도 못하는 성격이었던 제가 카페 주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신 분들이 주변에 아무도 안 계십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공부를 다 마치고 - 오랜 후이기는 했지만 - 한 번 정도는 카페를 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때 상상한 카페는 인문학이 살아있는 카페였습니다. 입구에는 고서점처럼 책이 가득 꽂혀있고, 그 책에는 읽은 사람들의 생각이 적혀있는 책갈피가 여기저기 꽂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계속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이어져 갑니다.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넓은 공간이 나와 가끔은 그 책을 읽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카페를 열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저희 디터틀이 그런 카페였으면 좋겠습니다. 

  카페에 매어있다 보니 여러 활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지역에서 회의를 하거나 이야기 나누는 곳이 필요할 때, 혹은 그림이나 사진을 전시하고 싶을 때 공간을 내어드리고 있습니다. 공간을 내어준다는 것이 늘 마음 같지 않고 모두에게 좋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북동에서 어디 갈까? 하고 고민할 때 생각나는 곳, 마음 편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껏 활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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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찬은 선잠단지 옆 성북로 18길에 위치한 작은 카페 디터틀을 운영하고 있다. 커피를 내리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매일매일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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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1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8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8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8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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