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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Mar 17. 2019

이름

[12호] 성북동의 숨은 보물찾기 | 글 최성수 · 사진 17717김선문

글 최성수 

사진 17717 김선문 



우일사 양복점 이웃에는 만리장성이 있다. 입학식이나 졸업식이 끝나면 이층 중국집 구석방에서 먹던 짜장면은 빛 바랜 멍자국처럼 어두웠다. 만리장성 뒷쪽으로는 순대와 푸성귀 생선을 팔던 손바닥만한 성북시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왁자지껄하던 시장 사람들은 다 성북동 이웃들이었다. 시장 끝에는 성암탕, 건너편 남대문 사장1)에는 우리 큰아이 돌사진이 오래 걸려 있었다. 사진관 이웃 경일 안경원에서 나는 첫 안경을 해 쓰고 중학생이 되

었다. 골목에 살던 최순우 선생은 몰랐지만, 내 초등학교 친구가 살던 그 두부골목을 지나 나는 혜화동 고개를 넘어 동양서림으로 시집을 사러 가곤 했다. 내가 살던 3번지 골목 입구 심원 쌀상회와 심원 미장원을 지나 삼선교까지 걸어 고등학교를 다녔던 시간들


바람부는 세상에 서있는 몇 해 동안

그 이름들은 하나 둘 사라져갔다

나는 무시로 사라진 이름들을 떠올리며 성북동길을 걷는다


우일사, 만리장성, 성북시장, 성암탕, 남대문 사장, 경일 안경원, 두부골목, 심원 쌀상회, 심원 미장원... 


최순우 옛집이 위치한 골목, 성북로15길 


이름에 기대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워지고, 지워지다 마침내는 닳아버린 고무신처럼 버려진 성북동의 이름들 


성북동은 지워진 이름들의 숨결로

아득하고 아늑하다



1) ‘사장’은 사진관의 옛 표현입니다 



최성수는 시인이며 청소년 문학 작가이다. 그동안 시집 〈장다리꽃 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사랑은〉, 〈천 년 전 같은 오늘 하루〉, 〈꽃, 꽃잎〉을 냈으며, 청소년 소설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무지개 너머 1,230마일〉을 내기도 했다. 성북동에 50년을 살다 지금은 고향인 강원도 안흥 보리소골로 귀향하여 고향과 성북동 집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북동이 사람들의 행복한 꿈을 담아내는 터전이기를 꿈꾸고 있다. 본지의 편집위원이자 성북동천의 고문이기도 하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2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8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8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8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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