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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Apr 21. 2019

호탕한 웃음, 끊임없는 열정
권호성 연출가

[12호] 우리 동네 아트살롱 | 취재 장영철·차정미 

취재 장영철·차정미 

현장기록 김기민 



성북동은 대학로와 가까워서 연극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요. 우리가 만난 권호성 연출가는 블루사이공, 들풀,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서편제 등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드는 연출로 인정받고 있으며, 현재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상임연출이자 공연 제작사인 ‘쇼앤라이프’의 대표입니다. 성북동에 살고 있는 그를 만나 주민으로서 연극인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는데요. 인터뷰 전날이 그가 연출한 과천축제의 마지막 날이라 피로가 다 풀리지 않았을까 내심 걱정도 되었지만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해주었습니다.


* 이 인터뷰는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편집위원회 박진하 편집위원, 극단 더늠 차지성 대표의 질문을 모아 진행했습니다. 




장영철(이하 ):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올해 편집장을 맡게 된 장영철입니다.


차정미(이하 ): 운영과 편집을 맡고 있는 차정미입니다.


권호성(이하 ): 반갑습니다. 연출가 권호성입니다.


차: 언제부터 성북동에 사셨는지 궁금해요.


권: 대학로에서 일을 하면서 명륜동, 성북동에 살게 되었는데 본격적으로 성북동과 인연을 맺게 된 건 10년 정도 됐어요. 처음에는 당시 닭볶음탕으로 유명했던(지금은 사라진) 성너머집 가기 전 오른쪽 부근에 살았는데 산속에 있는 지인의 집이었어요. 한눈에 보고 반해서 살게 되었어요.

그 이후 5년 전쯤에 수연산방 골목 위쪽으로 둥지를 틀고 있다가 재작년 말에 그 건물 차고를 리모델링해서 연극 연습장으로 쓰고 있어요. 이름도 지었지요. ‘하늘땅 별당(別堂)’. 특별할 ‘별’자에 집 ‘당’자를 써서 ‘특별한 집’이라는 뜻으로.


장 : 뮤지컬 서편제를 마치고 배우들과 함께 창과 소리를 하며 즐겁게 보내는 광경은 영화 속 장면 같았다고 디미방 박진하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는데요. 이처럼 성북동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권 : 아, 네! 뮤지컬 서편제를 연습하다 디미방에서 회식을 했었어요. 막걸리 마시다가 흥이 오르면 저절로 소리가 나오는 친구들이니까 막걸리 몇 잔이 돌면 바로 소리판이 열리죠.

성북동에서는 자주 파티가 열려요. 제가 속한 모임 중에 ‘성북동 모임’이 있는데 연극인, 음악인, 춤꾼, 회사원, 디자이너, 오스트리아대사관 참사관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매우 재밌는 모임이 있어요. 어제 과천 축제할 때도 그 친구들이 역시 다 몰려 와서 함께 축제를 즐기고 왔죠.


차 : 성북동 모임은 어떤 모임인가요?


권 : 성북동 연습실 앞에 비아와트라고 하는 가죽 공방이 있어요.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가 만든 곳인데 제품의 퀄리티가 정말 명품이에요. 동네 가게니까 거기를 기웃기웃하다가 차 한 잔 마시면서 알게 되었죠. 그러다 제 작품에 초대를 하고 공연 뒤풀이도 함께 하면서 제 지인들과 비아와트 지인들이 합쳐지기 시작한 거예요. 비와아트 대표인 이경림 씨는 성북초등학교 나오고 오랫동안 이곳에서 자란 성북동 토박이에요.


장 : 잘 됐네요. 다음 기사소재가 하나 나왔네요.(웃음) 


차: 공연들 중에는 블루사이공, 들풀, 서편제 같은 한국적인 소재와 역사적인 소재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만들게 되셨나요?


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우리 연극에 대한 관심도 컸고요. 그런 성향 때문에 역사적 소재를 많이 활용하게 되었죠. ‘들풀’은 제가 연극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작품이에요. 20대 초반부터 동학사상에 심취했었고 이런 훌륭한 사상이 교과서에서 한 줄로 폄하되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근대사 한 줄 한 줄은 다 드라마 소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것들을 무대에 올려보고 싶었어요. 


장: 많은 작품과 대극장 공연 같은 규모가 큰 작업들을 하다 보면 늘 예산이 부족하던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면?


권: 연극은 기록예술이 아니라 소멸예술이에요. 연극이라는 것은 관객과 약속을 거는 거잖아요. 전통 마당놀이극을 보면 작대기 하나가 칼도 되고 뱀도 되고 모든 게 다 될 수 있지요. 요즘 연극들은 이런 연극성을 상실하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해요. 무언가 보여주려고 하기 보다는 관객의 상상력을 이용하는 게 오히려 작품에도 도움이 되고 예산을 줄일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 뮤지컬과 정극을 넘나드는 연출로 인정받고 계신데 어느 쪽이 더 재밌나요?


권: 연극할 땐 연극이 재밌고 뮤지컬 할 땐 뮤지컬이 재밌어요. 또 한편으론 연극할 땐 뮤지컬하고 싶고 뮤지컬 할 땐 연극하고 싶고.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인적인 능력이 요구되는 작업이에요. 연극은 배우와 만나서 작업하는 과정이 되게 중요하고 힘들어요. 그에 반면 뮤지컬은 테이블 작업에서 완성되는 게 많아서 배우를 만나기 직전에 하는 작업이 고통스럽죠.

그러다보니 연극을 뮤지컬처럼 만들고 뮤지컬은 연극처럼 만들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극장주의 뮤지컬, 다시 말해 서편제 같은 마당놀이적 뮤지컬을 시도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추구해 나가고 싶어요. 이건 아까 말씀드린 저예산 공연과도 밀접하고요.


장: 후배 연극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하나만 얘기해 주세요. 


권: 제가 연극 제작을 하면서 크게 망한 적이 있어요. 그때 이민 가버릴까? 할 정도로 충격을 크게 받았고 심지어 잠적하고 싶더라고요. 결국 계속 하게 됐던 힘은 친구들, 동료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정공법을 택했어요. 기다려줘라, 반드시 갚겠다 하고 결국 몇 년에 걸쳐서 해결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연출만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목표를 하나 세웠어요. 절대 제작은 안한다, 하더라도 서편제 같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만 하겠다. 그러다보니 연극성을 찾게 되고 시적 언어를 찾게 되었죠.


장: 매년 작품을 만드시는데 높은 평가를 받고 계십니다. 작품 아이디어와 이를 추진하는 에너지는 어디서 얻는지 궁금합니다.


권: 연출로 밥 먹고 살아야 하니까 누구보다 많은 작업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있는 자리에서 문제를 해결하자’ 이게 제 원칙이에요. 결정할 수 있는 건 그 때 바로 결정하자. 스트레스는 가능한 빨리 배출해요. 그리고 중요한 건, 좋은 친구들과 막걸리 한 잔 하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거예요. 쓸데없는 농담하고 낄낄거리는 그 시간이 좋아요. 성북동 친구들하고요.


장: 많은 연극인들이 대학로의 젠트리피케이션 영향을 받고 있는데요. 앞으로 성북동도 그렇게 될까 걱정이 됩니다.


권: 성북동도 너무 비싸져서 후배들도 하나 둘씩 떠나더라고요. 안타깝죠. 저절로 모여든 예술가들을 위한 정책, 특히 젊은 예술가들을 품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성북동에서 연극 국제 페스티벌도 할 수 있다고 봐요. 프랑스 아비뇽 국제연극제도 동네 골목, 옥상, 가게, 이런 데서 공연을 하는데 그런 점에서 성북동이야말로 서울 최고의 보물이죠.

내년이면 연출한지 30주년이 돼요. 기념으로 뭘 할까 고민하다가 책을 출간할까 해요. 30년간 작품 프로그램에 실렸던 연출 이야기만 모아도 책 한 권이 되더라고요. 그 당시 작업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수필처럼 썼어요. 개인적으로 뜻깊은 일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장: 도서관에서 일하다 보니까 책에 관심이 많아요. 책이 나오게 되면 꼭 보고 싶습니다. 오늘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권호성 연출가는 과천 축제 때 직접 기획하고 만들었다며 ‘과천 막걸리’를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맛보았는데요. 축제 환호성처럼 톡 쏘는 청량감 있는 맛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그는 곧장 뮤지컬 <메밀꽃 필 무렵> 연습 현장인 춘천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쉴 새 없는 행보에도 지치지 않는 에너지 넘치는 모습, 그의 시원하고 유쾌한 말솜씨가 인상에 남는 인터뷰였습니다.   [끝]  




권호성은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상임 연출이자 공연제작사인 ‘쇼앤라이프’의 대표이다. 1997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대상, 2003년 올해의 베스트 연극상, 2013년 뮤지컬 부문 국회문화대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2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8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8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8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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