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의 기억을 기록하는 마을 아카이브

[플랫폼성북] 창간준비호|우리동네 아카이브

by 김성북

최연희(우리동네 스토리코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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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핫’하다도 옛말이라고 한다. ‘힙’하다는 말 정도는 써줘야 한다고. 국민 모두가 열광할 정도는 아니지만 최근 활동과 연구 분야에서 ‘힙’한 주제로 떠오르는 것 중에 아카이브 특히 마을기록, 마을아카이브가 있다. 아카이브는 단어만 봐도 어렵다. 모두 알고 있고 누구나 거주하지만 사실 개념을 명확하게 제시하기 좀 어려운 마을, 거기에 아카이브가 붙었으니 쉬울 리야 없겠지만 일단 안심하시라. 기록전문가에게도 마을기록, 마을아카이브는 낯선 분야라고 들었다.

아카이브(Archives)는 영구적인 보존가치가 있는 기록물과 그 관리 기구 등을 일컫는 말이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서울기록원 같은 전문적인 공공기관의 이름을 들어 봤을 것이다. 민감한 외교문서가 기밀 유지 기한이 지나서 공개되기도 하고, 대통령 기록물을 이관하는 문제로 몇 번 시끄러운 일이 있었기 때문에 공공이 생산한 기록물을 보존하는 절차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고도화되고 시민의식이 성숙하면서 국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정보공개청구로도 우리는 여러 기록물의 존재를 접하고 있다.

그런데 마을기록, 마을아카이브는 무엇일까? 마을의 역사? 유명한 인물? 마을에 기록할 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지겹게 학교를 다니며 억지로 외우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왕의 이야기와 전쟁사를 빼면 딱히 기억나는 역사가 없다. 한국사회에서 나의 이야기는 개인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드러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역사는 공적인 즉 정치 언저리의 기억이 거의 전부이다. 임진왜란 때 왕이 선조이고 나라를 구한 영웅이 이순신 장군인 것은 모두 배웠고 기억하지만 그 시절에 백성들, 나의 조상인 아무개의 삶이 어땠는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솔직히 찾을 생각조차 해보질 못했다. 자손인 나는 궁금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 마을기록, 마을아카이브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 지역 사회에서 기록할만한 것이 무엇인지, 기록에 대해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나누는 것에서 출발한다.

2018년 3~4월 ‘정릉 마을기록 주민이야기마당 주민 워크숍을 세 차례 하면서 참여자들은 마을에서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 누가 기록할 것인지, 기록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 모두 기록의 주인공인 주민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문제인식을 갖게 되었다. 전문가가 와서 정릉을 잘 기록해주는 것이 아니라 마을기록의 기준과 가치는 주민들이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전문가와 기관에서는 마을아카이브에 대한 주민 논의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었고, 무엇보다 아직 주민들이 마을아카이브를 주체적으로 할 만한 상황인지에 대해 회의에 참여한 다른 전문가, 활동가들의 의견도 우려가 많았다. 물론 주민들이 정보 제공자 역할에만 머물러야 하는가, 마을아카이브의 주체는 행정이나 전문기관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이견이 많다. 비단 성북구, 정릉의 일만이 아니다. 막막하고 길이 보이질 않지만 마을기록이 마을에 있어서 특별하며, 마을공동체의 유산이라는 점에서 지역사회와 주민들은 고민을 계속해야 한다. 정릉은 마을기록, 마을아카이브에 관심이 있는 주민, 활동가, 전문가, 단체들이 모여서 정릉마을아카이브네트워크 ’정말기록당‘을 구성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필자는 상임활동가를 맡고 있다. 다음은 지난 1년 동안의 즐거웠던 에피소드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수다, 마을기록의 시작

위대한 창조도 시작은 아마도 미약했으리라. 공공(행정)의 기록과 달리 법적 의무도 없고, 누가 관심을 가지고 번듯하게 기록을 해 온 것이 아니다보니 마을기록은 특히나 숨어 있는 것이 많아서 그야말로 ‘소 뒷걸음질 치기’ 식으로 얻어 걸리게 된다. 때문에 마을기록의 시작은 단언컨대 수다이다. 간식으로 사온 떡을 먹으면서 어디 떡집의 무슨 떡이 맛있는지, 정릉에 떡집이 많은데 정릉 사람들이 그렇게 떡을 좋아하는가 등등 아무 말 대잔치 중에 누군가 말했다. 정릉에는 사찰, 굿당들이 워낙 많아서 떡집이 많다고 들었다고. 그게 사실인지 몰라도 수백 개의 사찰과 암자, 무속인의 거처와 기도처가 있는 정릉이기에 충분히 수긍이 가는 해석이었다. 이 말을 듣고 떡을 워낙 좋아해서 ‘떡경혜’라고 별명이 붙은 주민 김경혜 님이 떡집들을 찾아다녔다. 서울 시내 한복판인데도 참기름도 짜고 고춧가루도 빻는 떡방앗간을 운영하는 곳이 7곳이나 된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렇게 16곳을 찾아서 사진을 찍어 정릉 버들잎 축제가 열린 정릉 교통광장 제1회 정릉 마을아카이브 전시회에 걸었다. 전시회 전날 이웃의 제보로 어느 아파트단지 상가에 있는 떡집을 빼먹은 것을 확인하고선 부랴부랴 보강 조사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로써 정릉에는 거의 40년이 된 떡집을 포함해서 17곳의 떡집이 있음을 확인했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넘길지도 모른다. 그 동네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궁금했고 어디서도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를 이웃들이 묻고 물어 찾아냈다. 역사를 뒤바꿀 엄청난 발견은 아닐지라도 오랜 시간 정릉에서 쪄낸 떡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나는 기대된다. 이렇게 평범한 수다에서 모든 것이 시작될 수 있다.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마법 같은 마을기록

마을기록을 조사하면서 동네의 옛날 사진이 없냐는 질문을 하면 대부분 주민들은 없다고 대답한다. 한곳에서 몇 십 년씩 살다보면 한번쯤은 집에 불이 나거나 집에 물이 들어와서 사진을 못 쓰게 되기도 하고, 이사를 다니다보면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한다. 동네에서 몇 십 년을 살았던 분들 대답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결혼식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결혼식을 했던 예식장이 마침 지금은 번듯한 빌딩이 들어선 그 자리였다는 것을 무심코 기억해 내시고 결혼사진을 보여주셨다. 몇 십 년 전 초등학교 졸업사진과 졸업앨범을 보면 지금과는 다른 학교 건물과 정문, 학교 근처 집들의 풍경을 보여준다. 이분들 모두 옛날 사진은 안 갖고 있다고 답하신 분들이다. 또르르르... 그 후로는 질문을 바꿨다. 예를 들면 자녀가 어느 유치원, 학교를 나왔는지 묻고 아이들과 갔던 소풍이나 운동회, 졸업식 사진이 있냐고 물으면 대부분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된 정보는 그 위치가 다를 테니 마을기록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질문하는 방법도 많이 연구를 해야 한다. 그렇게 찾다가 단기 4290년이자 서기 1957년 정덕초등학교 졸업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60년이 넘도록 종이가 다 삭은 앨범을 간직하셨던 정재오 어르신도 누군가에게 그 앨범을 보여줄 생각은 안 해보셨다고 했다. 누가 있느냐 물어본 적도 없을 테니 말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기록인데 등장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확인하지 못하는 것이 또 마을기록의 특징이다.

이 어르신은 정릉에 있던 경신학교 이야기를 하셨는데 학교 위치나 모습과 같은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며 넘어가려고 하셨다. 아쉬워하는 내 얼굴을 보고 미안하셨던지 한번 보라고 주신 자료가 1985년 경신학교 100주년 교지였다. 문득 기념교지를 내면 분명 학교 연혁이 적혀 있을 것 같아서 급히 뒤져보니 전설로만 들었던 경신학교 정릉동 교사 시절의 간략한 역사와 사진이 실려 있었다. 자료를 주신 어르신조차도 거기 그 내용이 실려 있는지 모르고 계셨다. 뜻밖의 발견에 어르신도 나도 놀랐다. 졸업한지 수십 년 지난 학교에서 보내온 교지를 또 30년이 넘도록 버리지 않고 간직해주신 어르신께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르신은 자료를 찾게 해준 내게 고마워하셨다.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고 명확한 답이 나오지도 않는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사명감에 불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별것 아닌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가 바로 마을기록, 마을아카이브이고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하는 과거, 현재, 미래이다. 마을의 번영과 발전 때문이 아니라 나와 당신이,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기억을 기록하는 마을아카이브는 당신이 꼭 필요하다.

참, 이 글의 부제가 있는데 앞에 말씀드렸던가? ‘마을아카이브, 해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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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시민협력플랫폼 구축사업(2차년도)는/은 성북구 지역시민사회의 자생적 활동 생태계 조성을 위해 활동주체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 전반을 아우르는 포괄적 네트워크 구축을 비전으로 여성·아동 복지 실현을 목표로 하는 지역단체 성북나눔연대, 동 기반 주민모임 성북동천, 성북의 지역활동가 단체 성북마을살이연구회, 성북구 대표 지역법인 함께살이성북사회적협동조합이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추진하는 사업입니다.

"자치구 시민 주체의 성장을 통한 지역 협치 실현"이란 핵심비전을 갖고 추진되는 서울시 시민협력플랫폼 지원사업에 2017·2018 연속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추진중입니다. (지원 : 서울특별시, 성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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