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창간호]
아버지
- 강상훈
아버지가
잠근 방에서 며칠을 안 나오셨다
어머니가 열쇠장이를 불렀고
문을 따고는 그가 말했다
“사람이 있었네.”
말 없이 걸어나온 아버지가
나를 안아 올렸다.
입추
- 김선정
나이 먹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눈가의 잔주름 쯤이야 봐줄 만 하다고
그러나 여기저기 비명을 질러대는
내 몸의 관절들
입추 즈음
시린 하늘이 높아만 간다
투명인간
-김기민
통장 잔고를 확인해 본다
월세, 공과금, 관리비, 대출이자가 빠지고 나니
원래 그곳에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있다가 사라져버린 돈
소년도 갔다
그들 모두 투명인간이 되었다
송편
-박진하
얘야 송편은 먹었니?
내가 누워만 있으면 안 되는데
저기 슬픈 눈으로 이 어미를 지켜보는 애야!
송편은 먹었니?
난 지금 조금 피곤해서 누워있을 뿐이다.
오늘은 추석,
두둑한 용돈을 받은 아이들은 즐겁다.
과자를 굽는 오후
-이민우
해가 길게 늘어진 오후
베란다 창문 사이
놀이터의 아이들 소리
오랜만에 기분이 들떠
과자를 굽는다.
밀가루 한 주먹, 소금 반 스푼
버터 한 숟가락, 설탕 세 수저
따뜻하게 반죽하고
동그랗게 모양 내어
오븐에 사십오 분
그리고 띵!
아이들 소리 사라진 놀이터에
혼자 남아
따뜻한 과자를 먹는다.
모래 주변에 검은 봉지가
고양이처럼 기어다니고
긴 그림자 검은 꼬리처럼 춤춘다.
해가 길게 늘어진 오후
부르르 울리는 핸드폰에
입 안 가득
“엄마.”
마지막 가는 길
- 서정혜
새벽이 눈을 뜨고 손을 뻗었다.
깊게 패인 주름
끊어질 듯 이어질 듯
고르지 않은 호흡
이젠 홀로 남아야 하는 시간
당신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나
영원한 당신의 분신이 되고픈
이 세상에서 가장 자상한 모습을 가진 당신
당신의 이름은 아버지
아버지 가시는 마지막 길에
내 마음은 별이 된다.
* 이 작품들은 성북동천이 개설한 시 창작 교실 참가자가 강좌 시간에 쓴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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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호·창간호는 성북구청 2013 성북구 마을만들기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3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