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북 Jun 08. 2017

한 눈으로 보는 성북동천 마을 학교

[1호·창간호] 

아버지

- 강상훈


아버지가

잠근 방에서 며칠을 안 나오셨다


어머니가 열쇠장이를 불렀고

문을 따고는 그가 말했다


“사람이 있었네.”


말 없이 걸어나온 아버지가

나를 안아 올렸다.





입추

- 김선정


나이 먹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눈가의 잔주름 쯤이야 봐줄 만 하다고

그러나 여기저기 비명을 질러대는

내 몸의 관절들


입추 즈음

시린 하늘이 높아만 간다





투명인간

-김기민


통장 잔고를 확인해 본다

월세, 공과금, 관리비, 대출이자가 빠지고 나니

원래 그곳에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있다가 사라져버린 돈


소년도 갔다


그들 모두 투명인간이 되었다





송편

-박진하


얘야 송편은 먹었니?

내가 누워만 있으면 안 되는데

저기 슬픈 눈으로 이 어미를 지켜보는 애야!

송편은 먹었니?

난 지금 조금 피곤해서 누워있을 뿐이다.


오늘은 추석,

두둑한 용돈을 받은 아이들은 즐겁다.





과자를 굽는 오후

-이민우


해가 길게 늘어진 오후

베란다 창문 사이

놀이터의 아이들 소리

오랜만에 기분이 들떠

과자를 굽는다.


밀가루 한 주먹, 소금 반 스푼

버터 한 숟가락, 설탕 세 수저

따뜻하게 반죽하고

동그랗게 모양 내어

오븐에 사십오 분

그리고 띵!


아이들 소리 사라진 놀이터에

혼자 남아

따뜻한 과자를 먹는다.

모래 주변에 검은 봉지가

고양이처럼 기어다니고

긴 그림자 검은 꼬리처럼 춤춘다.


해가 길게 늘어진 오후

부르르 울리는 핸드폰에

입 안 가득


“엄마.”




마지막 가는 길

- 서정혜


새벽이 눈을 뜨고 손을 뻗었다.

깊게 패인 주름

끊어질 듯 이어질 듯

고르지 않은 호흡

이젠 홀로 남아야 하는 시간

당신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나

영원한 당신의 분신이 되고픈

이 세상에서 가장 자상한 모습을 가진 당신

당신의 이름은 아버지


아버지 가시는 마지막 길에

내 마음은 별이 된다.




* 이 작품들은 성북동천이 개설한 시 창작 교실 참가자가 강좌 시간에 쓴 작품입니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호·창간호는 성북구청 2013 성북구 마을만들기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3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북동 사람 이태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