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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Jun 22. 2017

성북동

[2호] 권두 칼럼 / 북둔의 아침 창가에서 | 글 서준호


  언젠가부터 속도가 우리 삶을 지배하는 듯 모든 것이 바삐 움직이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뛰어 놀던 골목은 온 데 간 데 없고, 고향집 자리에는 고층 빌딩이 들어서, 저기 어딘에 우리 집이 있었다는 기억만이 남아있다. 삼십 대 중반인 내가 기억하는 내 주변와 한국의 모습은 너무나 빨리 바뀌어 갔다. 지저분한 도로와 노점들이 가득했던 왁자하던 시장은 점점 현대식으로 변해가고, 우리는 대형마트에 가는 것을 당연한 듯 여긴다. 8비트 컴퓨터는 스마트폰으로 변했고, 비둘기호 열차는 사라지고 고속열차로 바뀌었다. 사춘기 때 읽었던 ‘아시아는 커다란 공사장’이라는 잡지 기사는 아직도 유효하다.


  내가 그런 변화를 느끼기 훨씬 전인 60년대 말, 김광섭 시인은 성북동의 변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노래했다. 고향이 부산인 나에게 서울은 63빌딩과 한강, 성북동, 압구정동 오렌지 족, 무너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등이 한데 뒤섞인 이미지였고 비둘기가 사는 성북동은 막연한 동경과 향수가 어우러지는 곳이었다. 서울에서 유학하며 겪은 서울의 변화는 고향보다 더 빨랐고, 눈에 보일 듯 시시각각 달랐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성북동에는 변화가 늦게 찾아왔다. 그렇기에 아직도 성북동은 오래된 마을이다.


  예술가는 예술을 공부하고 예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존재다. 성북동은 예술계의 변두리지만 마을과 함께 다양한 삶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성북동 모퉁이에 작은 전시장을 열었다. 성북동은 성북로를 사이에 두고 북악산 남사면에는 부자들이 사는 큰 집이 모여 있고,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북정마을엔 나이든 어르신들이 사는 조그만 집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그 아래 돌을 깨고 만들어진 마을에는 중산층과 다양한 이들이 살고 있다.

  오래 전부터 많은 예술가들이 성북동에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내가 성북동으로 와 전시장을 연 것처럼 최근 2~3년 사이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성북동으로 모여들고 있다. 내게는 다양한 삶이 모여 있는 곳 자체가 흥미로운 지점이었고 더불어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는 이곳을 조금은 예술적으로 지키자는/싸우자는 마음도 있었다. 50년의 세월을 돌아 또 다시 돌깨는 소리를 듣기 보다는 50년을 이어온 마을을 창의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성북동을 ‘놀자판’으로 만들고 싶었다. 모든 주민들이 좋아하진 않겠지만 많은 주민들이 선잠로에서 벌어지는 공연과 행사들을 좋아한다. '동네를 놀자판으로 만들고 있다'고 고함지르던, 지금은 방을 뺀 ‘재개발 조합 사무소’ 아저씨들만 제외한다면, 성북동 사람들은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는 문화를 사랑한다.


  어디나 사람이 사는 곳에는 욕망이 존재한다. 그 욕망들이 삶을 이루고 마을을 이루고 도시를 이루고 나라를 만든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기업의 욕망이 만드는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와 달리 소소하게 살아가는 이들 각자의 욕망이 만든 골목과 꽃길과 동네 풍경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거기에 더해 뜨내기인 나의 욕망 또한 성북동에 얹혀 커가고 있다. 도시는 인간들의 욕망과 삶의 흔적이 켜켜히 쌓여 만들어 진다. 그렇게 인간의 욕망은 모든 것들을 변하게 만들지만 자본이 아닌 개개인의 욕망이 얽혀 천천히 변화하는 마을과 도시는 온기를 품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성북동에 자리 잡은 나의 삶은 더욱 빨라지고 여기저기 부르는 곳이 많아져 삶을 들여다 볼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여기 성북동에서 내 나름의 삶의 속도를 느끼며 내 삶을 음미하길 희망한다.

  최근 많은 이들이 성북동을 찾고 있고 변화 또한 가속도를 더해간다. 어쩌면 변화는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래된 마을을 이어가며 문화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 성북동을 이루는 구성원들 모두 변화의 템포를 늦출 방법을 창의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서준호는 성북동에 자리 잡고 있는 <스페이스 오뉴월> 대표이고, 미술 평론가다. 그의 시선은 소외되고 외로운 곳에 머문다. 그래서 미얀마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미술에 관심이 많고, 그들의 미술을 기획하고 전시하는 일을 자주 한다. 또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지역이 곧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갤러리가 있는 성북동 사람들과 함께 일을 꾸미고 신명나는 문화를 만들어가기를 좋아한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2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4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4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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