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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Jun 23. 2017

영순씨네 집 매화나무

[2호] 시와 그림으로 보는 성북동 풍경 │시 최성수 · 그림 김철우

성북동의 봄은 영순씨네 매화나무에서 온다


담벼락을 따라 고양이 등짝만한 화단에

기신기신 몸 기대고 서서

집 주인 영순씨처럼 곱게 늙은 매화나무

비둘기조차 꽁꽁 어는 겨울이 지나면

비로소 꽃망울 터트려 성북동의 봄 알리는 매화나무

매화꽃 벙글면 영순씨

손바닥만 한 가게 의자에 앉아 재봉틀 돌리고

돋보기 안경 너머 바느질 한다

재봉틀 소리에 맞춰 매화꽃

봄바람에 날린다

당뇨로 오래 몸 아팠던 할아버지

지팡이 짚고 나와 해바라기 하던 곳

저 썩을 놈들이

멀쩡히 잘 사는 집 허물겠다고 지랄이라고

재개발 조합을 향해 삿대질을 하던 할아버지는

매화꽃 피는 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할아버지는 없지만

영순씨는 올 봄도 어김없이 재봉틀을 돌린다

재개발 반대 유인물을 돌릴 때면 부끄러워

꽃잎처럼 살짝 볼이 물들던 영순씨

햇살도 지친 오후

돌리는 재봉틀 소리는 담벼락에 걸린

‘내 집 냅둬’ 현수막을 휘감고 마침내

성북동에 봄이 왔음을 알린다

선잠단지 쯤에서 성북동 비둘기가 물어와 내뱉은 오디씨가

매화나무 옆에 거처를 잡고 아이 팔뚝만큼 자랄 동안

며느리 맞고 손주 받은 영순씨네

무심한 세월들이 이 집에서 흘러갔다


성북동의 봄은 영순씨네 집 매화꽃이 피어야 온다


가게 유리창에 써놓은

‘성북 홈 패션’

낡고 바랜 글자 위에 매화꽃 향기가 날려야


성북동에, 비로소, 봄이 온다





최성수는 성북동에서 약 46년간 살았으며, 시인이다. <천 년 전 같은 하루>, <꽃, 꽃잎> 등의 시집을 냈다. 성북동이 문화가 살아있는 마을이기를 꿈꾸고 있다.


김철우는 성북동에 살고 있는 화가다. 현재 ‘성북동천’ 대표를 맡고 있으며,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이야기하며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을 즐긴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2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4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4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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