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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Jul 21. 2017

시가 있는 풍경

[2호] 시 최헌자 최성호 박성애

단팥 죽


최헌자



울적해지는 날

팥을 삶는다.

팥밥을 짓고, 또 단팥죽도 끓인다.


뜨거운 단팥 죽, 한 숟갈 뜨면,

늘어지는 찹쌀떡 사이로

미소 띤 엄마 모습이 보인다.


따끈한 아랫목이 그립거나,

눈이 펄펄 내리는 날엔

단팥죽을 끓여 먹었던 그때.


정겹던 엄마와 나는

단팥죽 속에 머물고 있다.





아버지의 사이판


최성호


전신은 땀범벅이 되고

끓는 쇠죽 솥뚜껑 열때처럼

확 차오르는 뜨거운

밀림 숲 속을 걷고 있다.


1995년 10월의 어느 날


나는 어느새

아버지가 그렇게도 한 맺혔던

악몽의 섬 사이판 밀림 속에 있었다.


이 밀림 속 어딘가는

태평양 전쟁 때 강제징용 총알받이로 끌려온 곳!

이곳에 땅굴을 파고 얼음 짱 같은 냉기로 떨며

모진 목숨 연명하여 살아남은 한 맺힌 아버지의 땅!


일본군 최후의 땅굴 투쟁지를 둘러보고 있는 내 마음은

찌릿한 울분과 서러움이 북받쳐 오른다.


최후의 1인까지 대항하다가 전원이 몰사 했다는 곳

칠흑 같은 어둠과 음습한 공포로

어느새 등줄기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악마의 뱃속 같이 공포스럽고 미로 같은 땅굴.


으-콜록콜록

흐-으 콜록 콜록 콜록 흐-으읍 퇴에.


곧, 숨넘어갈 듯

커다랗고 둥근 공처럼

오강 끌어안고 웅크리고 앉아

가쁜 숨 몰아쉬며

송진처럼 끈끈하고

비누거품 같은 가래 뱉어내려고

몸속 밑바닥 에서부터 온힘을 끌어올리려니

얼굴은 온통 붉은 지렁이가 감싸듯

굻은 핏발에 충혈 된 눈!

기진하여 힘들고 지친 아버지 모습


국민학교 3학년 때

학교 다녀온 어느날 오후


아버지 따라서 소 꼴 베어 돌아오는 길

느적금 넘어 동네어귀 방죽 마루에 앉아서

해 기우는 망째산(망재산)을 바라보았다.

마치 어머니의 웃 저고리 소맷닢 처럼

붉은 노을로 곱게 물들어 있었다.


이 애비가 말여, 이곳 오얀두(외연도) 들와살기 한참 전에, 그렁께 니가 생겨나기두 전에 왜정때 왜놈들에게 강제 징용으루다 저~멀리 남태평양 사이판군도 라는 섬에 끌려 갔었구먼 날마다 뱡기 폭격으루다 수십명씩 죽어나가는디, 기왕지사 이래두 죽구 저래두 죽을목심 도망이나 쳐보자! 워디가 되얐든 한걸음 이라두 고향 가까이가서 죽기루 결심허구서 같은 조선사람 싯하구(3명) 갱신이 탈출혀설랑, 밤낯 죽을둥 살둥 정신읍시 도망치다가 아! 시방처럼, 마악 해 떨어질라구 헐때서야 정신 차리구 주위를 살핑께, 아! 바루앞에 바다가 뵈잔여, 그려서 바루 그 자리에다 땅굴파고 그 속에서 숨어서 지냄서 오줌을 받아서 입술 추김서 모진목심 연명하구 살다가, 후-우 이렇게 냉이 들어가꾸 해수천식이 되부렀다.

쿨럭 흐-으! 후~우 (가쁜 숨 몰아쉬는 아버지)

그려두, 해방되기 전 해에 다행 으루다가 양놈들(미군) 포로가 됐응께 살 수 있었지, 해방 되구, 포로 생환으루다 귀국한다는디, 아! 이물에서 고물두 안뷔는 겁나게큰 군함타구 도착혀서 내리구봉께, 아-거기가 저~어 군산항 이드랑께! 고국 땅을 밟응께 월매나 좋든지! 그려서, 에라 죽을 목심 살아왔응께 실컨 구경이나 좀 허자 생각 허구설랑은 무작정 항구서 다시 객선을 줘 탓드만, 아! 그 배가 이 오얀두(외연도)에 오잔컷어! 들옹께, 인심두 좋구, 또 옛날 최씨덜 귀향처루다가 말(마을) 거짐 다 최씨구 헝께루 워떻게 잘들 혀주구 허는지, 정부치구 살만 허다싶구, 으른들이 니 에미허구 짝져준다구 중신을 놓구헝께 맴이좀 돌아스드먼, 그려서 걍 응뎅이 부치구 이렇게 살게됭겨!

후-우 내가시방 이렇게 지침허다 강그러져 죽을꺼 같혀두, 금방 그렇게 안죽는다. 아! 내가 워떻게 살아왔는디, 암만! 후-우.


숨 가빠하는 아버지의 옆모습은 저녁노을 지듯이 그늘져 보였다.


사이판 통곡의 절벽에서 바라다보는

검푸른 바다는 수많은 영혼들의 절규와 통곡처럼

게거품을 내품으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냥 냅둬어


박성애


살아볼수록 좋은 곳

강남으로 안 가고 이사온 곳--

공기도 다르데

풍광도 다르고

맛도 다른 곳


전원의 한가로움과

멋스런 주택의 조화

뭐-휴먼 타운이라나

서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이라


어디 살아요?

성북동요

아- 아 그으래요

부자 동네 사시네요


한가지 더 있어요

역사문화지구래요

자랑스럽게 대답한다


뭣이여?

재개발?

아녀

여긴 성북동이어서 좋은 곳이거든!!!





이 시들은 ‘성북구 예술창작소’에서 주관한 ‘시창작교실’에 참가한 어르신들의 작품입니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2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4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4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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