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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Jul 26. 2017

북촌에서 성북동으로 한양도성을 월담하다!

[3호] 권두 칼럼 / 북둔의 아침 창가에서 | 글 하도겸

안암동 호랑이와 14년을 호형호제하다 성북구를 떠난 지 10여년 만에 얼마전 종로구 사간동을 등지고 여기 성북동으로 이사 왔다. 치솟아 오르는 집세와 주말이면 그냥 유명하다니까 유행처럼 북적이는 박제된 관광객들로 ‘북촌’을 사랑했던 주민들은 하나둘씩 터전을 등진다. 티베트 라싸를 점령한 중국 한족처럼 이제 북촌은 마을 토박이나 지킴이가 아닌 재벌이나 대기업과 같이 돈많은 뜨내기들이 잠시 머무는 임시 가건물 같은 ‘공간’이 되고 있다.


우리 전통건축의 아름다음과 멋 그리고 맛까지 보여준 한옥과 골목길. 그리고 오래된 식당에 담긴 정겨운 북촌의 정서가 그동안 사람들을 불러 모았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찾아가 본 북촌은 서서히 그 매력을 잃고 있었다. 많이 형해화된 거리에는 석양에 길게 늘어진 대기업의 빵집 간판 그림자가 우울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떠나갔거나 돈에 들뜨거나 아니면 ‘사람’ 공해로 고통받고 있었다. 슬프고 안타까움에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다.


옮겨 살 집구하러 땀 뻘뻘 흘리며 아픈 무릎을 감싸고 북악산에 올라와 도심을 내려다본다. 무학대사와 함께 도성을 정하고 한성부윤을 역임했던 진산부원군 ‘하륜’(河崙 : 1347~1416. 우리 진양·진주하가의 중시조 어른)은 후손과는 달리 연대 쪽을 좋아했다. 어른만큼 풍수는 모르지만, 산세가 공부 잘 하는 학자가 나오기 적당한 곳은 이쪽이다. 그렇기에 성균관이 들어왔을 것이다. 지구가 커지고 우주가 팽창하듯 인구가 늘어난 서울 도시의 기운도 그렇게 성장하나보다. 한양도성에 고여 있던 문예 기운의 중심이 서울 도심의 확장에 따라 점차 궁이 있는 종로에서 고대가 있는 성북으로 그리고 연대가 있는 서대문으로 넘쳐 나간다. 도시가 사람과 같이 성장한다. 도시도 생명이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선비가 닦은 시서예악을 우리는 문예라고도 했다. 문예에 여러 뜻이 있겠지만 역시 학문과 예술의 뜻이 으뜸일 것이다. 성안의 서울국제고, 서울과학고, 경신중고, 혜화초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가톨릭대학교, 동성중고에 그런 맥이 흐르다 멈추다 잠기다 다시 솟는 모습이 보인다. 성 밖으로는 성북초등학교, 홍대사대부속중고, 동구여자중학교, 동구마케팅고등학교, 삼선중학교, 경동고등학교, 한성대학교, 서일국제경영고등학교, 창신초등학교로 성벽을 넘은 문예의 기운이 계속해서 응집되고 있다.


풍문에 의하면 전국 연극인의 60%가 성북동 부근에 상주하고 있을 만큼 성북동은 예술가가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얼마전 ‘심우’를 창작한 극단 ‘더늠’ 역시 성북에 연고를 두고 10년 넘게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성북동이 서울의 학문과 예술 즉 문예의 가장 큰 마당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한옥 많은 언덕배기가 좋아 북악산에서 멀리 내려가고 싶진 않다.

창덕궁과 성균관을 뒤로한 북악산 ‘말바위’아래로부터 와룡공원으로 내려와 한양도성 성벽을 탔다. 산을 타고 내려온 성벽이 끝난 지점에 돈가스 사먹으러 몇 번 와 본 기억밖에 없는 성북동이 있다. 거기서 가장 존경하는 ‘님의 침묵’의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과 조우했다. 풍수는 잘 몰라도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던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를 대표하여 3.1 독립선언을 이끌었던 선생을 마음에 새긴 바 있다. 아 여기다. 예문의 기운이 있고 독립운동가의 뜻이 있는 여기서 꼭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난다.


돈가스 골목으로 성벽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경신중고등학교의 운동장이 보인다. 담 밖에서 바라보니 운동장과 학교건물 그 뒤에 북악산이 보인다. 운동장이 없었으면 답답했을 이곳에 호수처럼 커다란 마당에서 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수렴되지 않은 기운이 길가에 줄 서 있는 연립 다세대주택들에 머문다. 일부는 성북동 주민센터로 흘러간다. 아 이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지신’께 간절하게 빌고 발길을 돌린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얼마 후 도반의 소개를 받아 분에 넘치게도 행운을 얻어 여기 성북동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그리고 수년간 네팔 현지 봉사단 활동을 했던 NGO 나마스떼코리아를 부르게 되었다. 후암동에 있던 주한네팔 대사관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몇 해 전 이사와 있었다.


북악산에 내린 비는 땅으로 젖어들어 흙에서 뿌리로 그렇게 스미어 나무를 성장시킨다. 많은 비가 내리면 나무도 결국 물을 다 못가지고 있어서 몸 밖으로 물을 내보낸다. 그런 물들이 모여서 실개천을 이루고 계곡을 지나 작은 천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성북천도 생기고 그 복개천이 한강으로 흘러 황해 바다로 나간다. 북악산의 나무들과 샘물 그리고 지하수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들 각각으로는 성북천도 한강도 되지 못한다. 바다로 가는 길도 험난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른 샘물과 비, 지하수들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모이고 또 모여서 다정하게 오순도순 흘러갔기에 성북천은 한강이 되고 서해가 된다.


성북구에 14년을 살았으니 뜨내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토박이도 아니다. 모두가 사연을 가지고 성북동을 찾고 성북동을 등진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고 한다. 내게 다가온 사람은 총알처럼 스치듯이 빨리도 지나간다. 그리고 또 다른 인연으로 떠나갔던 그 자리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렇게 만난 사람은 결국 또 반드시 헤어진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나게 되면 정말 더 잘해주고 싶다. 하지만 다시 못 만날 수 있다.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고 지금 온 마음을 다해 잘해주고 마음껏 사랑하는 건 어떨까? 길상사에 주석했던 법정스님의 ‘일기일회’가 그 뜻일 것이다. 살아 있을 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


지금 성북동에서 더불어 함께 사는 주민들 모두가 우리 성북동 사람들이다. 우리는 잠시 떨어져 살 수 있어도 우리 마음이 여기에 있다면 떠나간 사람들도 성북동 사람들이다. 그렇게 사람이 가고 환경이 변해도 성북동은 언제나 여길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성북동을 생판 모르는 부산사람과 성북동에 살았던 아니 성북동을 사랑했지만 지금은 부산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서 ‘성북동’은 같은 거리에 있을까? KTX를 타고 지하철 4호선을 타야 갈 수 있는 성북동. 하지만 성북동을 사랑하는 사람은 단숨에 마음에 나래를 펴고 찾아갈 수 있다. 그게 마음이다. 성북동을 사랑한 이들은 어디에 가도 우린 성북동 사람인 이유가 그것이 아닐까? 땅이 나를 살게 해준 것이다. 성북동의 은혜를 입었기에 난 성북동을 사랑한다.


성북동을 사랑하는 이는 어디에 살든 모두 성북동 사람들이다. 채석장이 있었던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 위 먼지 덮인 하늘을 휘돌던 비둘기도 그렇게 성북동을 사랑하고 있었을 것이다. 1960년대 성북동 168번지 34호에 2층 양옥을 지어 입주한 김광섭시인은 함경북도 경성 출신이었다. 이사 온 지 10년도 채 안돼 병마로 미아동으로 옮겨야했다. 하지만 그는 네 번째 시집인 『성북동 비둘기』에 그의 성북동 사랑을 남겼다.


북촌에서 성북동으로 한양도성을 용감무쌍하게 월담했다. 난 조선시대 한양도성민이 아니라 대한민국 서울시민이다. 성북동을 잘 모르지만, 난 지금 성북동에 살고 있고 난 성북동과 사랑에 빠졌다. 해외에 나가면 나를 보고 외국인이 한국과 한국인을 이해하고 평가한다. 성북동 밖 사람에게서 난 성북동을 대표하기도 한다. 내가 곧 성북동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성북동에 사는 당신과 가족 그런 마을공동체로서 우리 모두가 성북동이기도 하다. 당신은 지금 성북동과 사랑에 빠져 있나요? Are you falling in love with SBdong?


하도겸은 3류 글쟁이로 뉴시스를 통해 ‘나를 보는 3분’ ‘히말라야 이야기’ 등의 글을, 중앙일보나 조선일보 등에도 가끔 이야기를 싣는 그냥 그런 칼럼니스트다. 매주 백상정사 명상모임을 지도하는 법사이지만 부처님을 안 믿는 좀 많이 이상한 불교 신자다.

불교개혁에 앞장서는 ‘불교닷컴’의 논설위원으로 일반인은 봐도 전혀 모르는 ‘백일법문’ 등도 쓰고 있다. 2007년부터는 NGO 나마스떼코리아 네팔현지봉사단장으로 ‘자원봉사’의 진정한 의미를 마음에 썼다가 지우다 다시 또 새기고 있다. ‘삶이 수행이고 헛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지행합일을 꿈꾼다’고 떠드는 바보다. 다만 이런 소개로 하도겸을 이해했다면 당신은 천재고 성인이라는데 동의한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3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4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4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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