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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Aug 01. 2017

명랑 이발소

[3호] 시와 그림으로 보는 성북동 풍경 │시 박미산 · 그림 김철우

  성북동에는요 아주 오래된 이발소가 있어요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돼지가 있고요 기도하는 소녀도 있어요 그리고 의자 팔걸이에 얹혀진 빨래판이 있고요 그 위에 내가 앉아 있어요 이발사는 내 목에 흰 천을 두르고 머리를 깎고 있어요 나는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요 나의 긴 머리카락은 어느새 시멘트 바닥을 뒤덮고 상고머리 낯선 아이가 거울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어요 우왕, 우는 아이를 번쩍 안고 빨랫비누로 머리를 감겨주던 여자 이발사, 물조리를 밀치며 도망친 아이의 짧은 머리카락이 구름을 뚫고 자랐어요


  50년 동안 문 닫은 적 없는 명랑이발소, 잘린 머리카락들이 이발소에서 영영 나오지 못하고 내 귀를 자를 것만 같은 시퍼런 가위도 도망치지 못했네요 머리카락을 제 맘대로 자르던 아가씨는 오늘도 여전히 면도칼을 가죽에 문지르고 거품도 만듭니다 구름을 만들어내고 어제와 내일도 만들어요 어제의 나를 번쩍 꺼내 활짝 웃으며 인사하는 할머니 이발사 이빨 빠진 바리캉이 빛나고 있어요 이제 겨우 자란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달려드네요, 속절없이 머리카락이 후두둑 떨어지는



박미산은 2006년 『유심』, 2008년 『세계일보』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집 『태양의 혀』(서정시학,2014)을 냈다. 성북동에 살고 있으며, 성북동을 소재로 시를 쓰는 등 지역의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다.


김철우는 화가이며 ‘성북동천’ 대표이다. 지난 10월 여행 수채화 ‘길 위에서 그리다’ 전시회를 열기도 했으며,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마을이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소중한 공간이기를 꿈꾸는 사람이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3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4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4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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