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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Aug 07. 2017

혜곡 최순우와 최순우 옛집 이야기

[3호]성북동의 문화재|(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건축의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은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멀리서 바라보는 운치의 멋이요, 
하나는 그 속에 몸을 담고 느끼는 즐거움이 그것이다.”
- 최순우, 「낱낱으로 본 한국미」 중 -





  ‘집은 주인을 닮는다’는 말이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집은 유교 사상을 담고, 가풍(家風)을 보이는 그릇이었다. 사람들은 존경하는 인물이나 명사들의 자취를 찾아 그들이 살던 곳에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만남을 갖는다. 최순우 선생의 집은 우리나라 첫 시민문화유산으로 시민들의 힘으로 지켜낸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268호)이라는 의미가 깃든 집이다. 1930년대 초 지어진 한옥은 최순우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 작고할 때까지 살던 근대한옥이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로 유명한 최순우 선생은 1916년 개성에서 태어나 개성시립박물관 관장이던 고유섭 선생을 만나 한국 미술사 연구에 뜻을 두며 평생 박물관인으로 살았다. 개성에서 서울로 와 간송 전형필 선생과 인연을 맺은 뒤 한국전쟁 때 북한군의 소장품 이송작전을 지연시켜 간송 소장품을 지켜냈고, 간송 선생과 교류하며 우리 문화를 보는 안목을 키웠다. 간송은 자신의 아들 돌림자인 ‘우(雨)’를 붙여 ‘순우’(본명은 희순熙淳)라는 이름과 ‘혜곡(兮谷)’이라는 호를 지어줄 정도로 각별하였다.


“6.25땐 북단장 아래로 옮기셨죠. 북쪽에서 온 당원으로 ‘기’란 사람과 서예가 일관이란 사람이 와서 간송 소장품을 안전한 데로 옮긴다는 것이죠. 그래 손재형씨와 제가 지연작전을 세웠습니다. 우선 선별 기준에서 좋은 것은 나쁘다, 나쁜 것은 좋다고 하고 물건을 하나 가져다가 풀었다간 아니라고 싸고 또 목록이 잘못되었다고 다시 하였지요. 포장이 진행되면서 상자를 사 오라 하는 등 목수가 없다는 등으로 지연을 펴고 소전은 생다리에 붕대를 매고 출고를 늦추고 9.28 때까지 완전히 포장되어서 상자에 싸여진 것은 하나도 없었죠. 그때 보화각(현 간송미술관) 지하실에 화이트호스 위스키가 궤짝으로 있었는데 그것을 ‘기’한테 날마다 자꾸 권했죠. 술이 취하면 우리가 사보타지 하기 쉬웠지요. 그리고 그 속에 일본 판화로 된 좋은 춘화가 있었는데, ‘기’는 그것을 보고 좋다고 흥얼대면서 우리가 눈속이는 것을 모르고 매일같이 골아 떨어졌습니다. 소전 선생과 나는 참 위기일발로 살아남았어요. 북쪽 책임자 일관이란 사람이 9.28이 다가오자 우리 두 사람에게 책임을 묻겠다 할 때는 아찔했습니다. 그 날 그들이 모두 서울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 출처: 「간송의 생애와 예술-서거 11주기를 맞으며」, 『간송 전형필』, 보성중고등학교, 1966, 371쪽


  최순우 선생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유럽 각지와 미국, 일본에서 열린 ‘한국미술2천년전’, ‘한국미술5천년전’을 주관하여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렸고, 박물관의 조사・연구・전시・문화재 보존 등 분야에서 박물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힘썼다. 한편으로 전통 공예를 잇는 장인들을 지원하고, 현대미술작가와 교류하며 문화계의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성북동 집에는 손수 심은 나무와 석물(石物), 단정하게 놓인 목가구와 백자 등 최순우 선생의 안목이 곳곳에 깃들어 있다. 선생이 쓰던 사랑방에는 달항아리를 아끼는 마음이 통한 수화 김환기와 한국인의 심성을 담아 그림을 그린 박수근이 선물한 작품이 걸려있었다.


 

사랑방에 걸린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 현판.

 ‘문을 닫으면 이곳이 바로 깊은 산중이다’라는 뜻으로 최순우 선생이 이사온 해 직접 써서 걸었다.



  성북동 작은 골목 안쪽에 있는 최순우 선생의 집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과 노력이 모여 보전되었다. 다세대주택으로 바뀌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유족과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펼치던 시민단체가 인연이 닿아 2002년 시민 성금으로 매입, 복원・보수 후 2004년부터 일반에 개방되었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증여를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자원과 문화자산을 확보하여 시민 주도로 영구히 보전·관리하는 시민운동이다. 영국에서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이 빠르게 망가지는 것을 막으려는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는 1990년대부터 같은 방식의 운동이 나타났다.

  최순우 옛집 보전과 함께 설립된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는 2006년 전라남도 나주의 풍산 홍씨 집성촌에 있는 ‘도래마을 옛집’을 매입하고, 이어 성북구 동선동 조각가 권진규 선생이 직접 짓고 생활한 ‘권진규 아틀리에’(등록문화재 제134호)를 유족에게 기증받아 보전하게 되었다. 시민문화유산에서는 전시,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등 다양한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후원회원과 자원 활동을 통해 보전・운영하고 있다.

시민문화유산 2호, 나주 도래마을 옛집


시민문화유산 3호, 권진규 아틀리에



  역사문화인물이 살던 집이나 활동한 공간은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예술작품이 탄생한 곳이며 당대 인사들이 교류한 장소라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각 시대의 건축양식과 함께 개인의 개성까지 볼 수 있는 건축적인 가치를 갖는다.

  근대문화유산은 2001년 신설된 등록문화재 제도를 통해 국가에 등록되고 있지만 소유자나 관리자의 의지, 부동산이나 지역 개발로 인한 주변 환경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 최근에는 인식이 달라져 근대문화유산을 지방자치단체나 문화기관들에서 보전・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큰길을 비껴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 우연히 만나는 집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보물찾기를 하듯 마음이 설레고, 우리가 사는 도시가 다채롭게 다가올 것이다. 가까운 과거이자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기억과 경험이 담긴 근대문화유산은 우리가 발견하고 의미를 찾고 보전해 나가야 할 미래유산이다.



[관람정보]

최순우 옛집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15길 9, 02-3675-3401~2

개관: 4~11월, 화~토요일, 10~16시

휴관: 일・월요일, 추석 당일, 12~3월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71 신한은행 2층 ∥ 02-3675-3401~2

http://nt-heritage.org

http://cafe.naver.com/ntchfund

https://www.facebook.com/ntfund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은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일환으로 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 확산, 문화유산과 관련된 문화기반 확충을 위한 지원활동을 위하여 2004년 4월 23일 설립된 재단법인이다. 법인 소재지는 서울시 성북구 성북2동 126-20 최순우 옛집 이다. 재단에서는 문화유산보전을 인식확산을 위한 대국민 모금 사업, 미지정 문화유산의 발굴 및 보존 프로그램 마련, 문화유산 보존·활용 증대를 위한 정책 연구사업 등을 하고 있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3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4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4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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