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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Oct 10. 2017

가다가 돌아보면 걸어온 골목이 더 고운 마을

[3호] 골목 탐방기|글 장영철

> 일시 : 10. 25(토) 15시 30분 ~ 17시

> 장소 : 홍대부고 버스정류장 ~ 조지훈생가터

> 코스 : 홍대부고 버스정류장(소문난 국수) – 홍대부고(중)정문 – 성북로 14가길 – 성북로 16가길 – 선잠로 길 – 스페이스 오뉴월 – 운우미술관 – 동네공간


  성북동의 골목이야기 두 번째를 위해 홍익중고등학교를 마주보고 왼쪽 마을인 소위 성북동 재개발 3구역을 찾아가 보았다.

  성북동이 서울의 대표적 골목투어코스로 알려졌지만, 상대적으로 성북동 재개발 3구역은 골목길 투어로는 알려지지 않은 동네이기도 하고, 한양도성이 있는 북정마을과 간송미술관과 저택들이 들어선 선잠로길에 비하여 눈에 띄는 건축물과 역사적 유물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스카이웨이 산책로로 오르는 길 중에서는 골목의 정취와 오래된 삶의 흔적이 가장 잘 남아있는 곳이다. 또한 근대 도시의 전형적인 주택 양식인 양옥집이 상당수 온전히 보전되어 있으며, 3번지 일대에는 구릉마을의 특징인 집과 집이 이어지고, 골목과 골목이 끊어질 듯 연결되어있어 골목 투어로는 가장 적당한 지역이기도 하다.

  첫 걸음은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중고등학교 정류장에서 출발하여 개인적으로 즐겨 찾는 소문난 국수집 골목을 따라 간다. ‘소문난 국수집’은 홍대부고 골목 초입에 있는 허름한 국수집이다. 나름 고급스러운 음식점과 새롭게 문을 여는 맛집들이 밀집한 성북동에서 저렴한 가격 대비 맛있는 잔치국수와 바지락 칼국수를 맛볼 수 있는 낡고 작은 국수집이다. 변화의 물결에서 홀로 남아 안쓰러운 몸짓을 하는 것처럼 그 국수집은 길 가에 있으면서도 낡고 허름하다. 성북동 3구역 골목을 찾는 분들이라면 이곳에서 바지락 칼국수 한 그릇 잡숫고 가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홍대부속고등학교 정류장에는 성북동의 대표시인 조지훈을 기념하는 기념물인 “시인의 방”이 있다. 성북3구역 골목투어의 만남의 장소로 시작하는 것도 좋다)

  개인적으로 성북동 간판 중 제일로 치는 ‘경기쌀상회’가 골목 어귀에서 나를 반겨준다. 그 가게 간판은 강렬한 인상으로 어릴 적 초등학교시절 동네에서 뛰어놀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붉은 벽돌로 쌓은 벽체와 보기 좋게 벗겨진 파란페인트 간판의 강렬한 첫 인상은 내가 서울로 올라와 처음 살았던 동네의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옛 어린 시절의 감성을 성북동에서 다시 느끼게 만들어 주는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경기쌀상회’를 따라 서서히 올라가며 처음으로 마주한 갈래길에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오른 쪽으로 걷는다. 길을 따라 얼마간 올라보면 올해로 60주년이 되는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중고등학교 정문에 이른다. 여기까지 짧은 거리에는 한옥부터 빌라, 독특한 형태의 단독주택,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가정집까지 동네의 주거형태가 너무나 다양하게 모여 있어 각 시대를 대변하는 삶의 퇴적층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런 다양한 주택들은 골목투어의 마지막까지 이어지면서 이번 투어의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역할을 해준다.

  이어서 발길은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중고등학교 정문 앞 마지막 골목길(좌측)로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오후 4시경의 이곳에는 저물어가는 햇살이 비탈진 동네의 구석구석을 비춰준다. 조금 늦은 시간의 가을임에도 포근한 기운을 느끼며 걸을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해가 저물 무렵 이곳을 찾는다면 북정마을 성곽을 넘어가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골목투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걸어본다.

  이후부터의 골목투어는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막다른 골목과의 한판 승부다. 횡으로 나있는 골목을 어느 정도 걷다 보면 어김없이 내리막과 오르막의 선택을 해야 하고, 둘 중하나는 막다른 골목으로 이어져 다시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어 이 골목길 투어를 한 번에 두 번 돌게 하는 묘한 능력을 발휘한다. 골목을 들어갈 때와 되돌아 나올 때의 시각적 차이 그리고 감성적 차이가 존재한다면, 이 두 가지 모두를 경험하게 해주는 이 골목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경험을 하나 더 가져 갈 수 있을 것이다.

  볕이 좋은 이 동네는 참 감나무가 많다. 비교적 손이 덜 가는 과수의 특성과 풍부한 일조량이 만들어 내는 가을의 골목풍경은 골목을 걷는 내내 풍성한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어느덧 몇 번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경험하게 되면 도로명 주소에 따라 성북로길에서 선잠로길로 넘어가는 경계에 이른다. 이 경계를 따라 성북동 대저택가와 서민들의 삶이 층층이 퇴적된 재개발3구역을 구분하게 되는데 이곳부터가 성북3구역을 기억 속에 각인시켜주는 골목투어의 핵심이 되는 구간이라고 생각된다.

  선잠로길과 성북로길이 맞닿는 경계는 작은 골목과 길게 이어진 계단 그리고 그 경계를 따라 흐르는 시간을 건너뛴 공간으로 인식되고, 골목길 어귀의 작은 평상에 걸터앉아 낮선 방문객에게 작은 미소와 편안한 인사를 건네는 동네 토박이의 담담한 인심과 소박한 일상이느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묘한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따라 골목투어를 마치는 방법은 발걸음을 아래로 돌려 내려오는 방법이거나 골목을 위로 위로 올라가 스카이웨이 산책로로 가는 길이겠다. 선잠로길 경계를 따라 내려오는 코스는 구불구불 골목길로 어림잡아 네댓 방향은 되어 보여 어느 길을 택할까하는 고민도 잠시 해보게 된다. 각 골목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성북동갤러리 스페이스 캔으로 내려오는 골목, 성북동을 대표하는 시인중 하나인 조지훈시인의 집터방향으로 내려오는 골목 등 어느 길을 선택해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부부화가인 운보 김기창, 우향 박래현의 운우미술관을 둘러보고 골목길 투어를 마무리해 본다. 다만 운우미술관은 어떠한 사정인지 수년 전부터 관람을 할 수 없고, 작년까지도 운우미술관 옆에 자리 잡았던 툇마루가 인상 깊었던 전통한옥이 헐리고 잡초가 무성한 터만 남아 아쉬울 뿐이다.

  성북3구역은 단어만으로 알 수 있듯이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부디 무조건적인 재개발로 정주민의 삶터가 무차별적으로 파괴되지 않고, 지금까지의 삶이 온전히 보전되면서 마을이 재생되어, 지역주민의 삶이 온전히 지켜지는 아름다운 성북동이 계속되기를 기원해본다. 아파트가 지어지면 오늘 내가 걸은 아름다운 골목은 사라질 테고, 그 골목에 깃들여 살던 사람들의 훈훈하고 느긋한 삶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곧 우리가 우리 삶의 소중한 유산과 가치를 잃어버리는 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김승택 作 / 성북동, 디지털 프린트 100x150cm, 201



장영철은 본지 편집위원이다. 오래 전부터 성북동에 애정을 갖고 공부 모임을 열기도 했으며, 성북동의 문화와 주민들의 삶에 관심이 많다. 휴일이면 성북동의 골목 곳곳을 둘러보는 것을 재미로 느끼는 진정한 ‘성북동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3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4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4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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