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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Oct 10. 2017

도심에서 고향을 꿈꾸는 사람

[3호] 인터뷰|성북동 3구역 주민 장덕수 씨· 대담 및 정리 편집부 

  소위 성북동 3구역은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중고등학교를 마주보고 왼편 쪽 산동네 마을이다. 아래에서 바라보면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정겨운 곳이다. 이 지역의 상당부분은 근대화 시기의 전통적인 주택 건축 양식인 양옥집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일부 지역은 산동네에 개발된 전형적인 비탈 마을이다. 이들 비탈 마을은 주로 3번지 일대인데, 서울에 인구 집중이 이루어지던 1960-70년대에 형성된 집들이 모여있다. 비탈 마을의 특징인 오르막길에 골목과 골목이 이어지고, 집과 집이 처마와 마당을 마주하고 있어, 아름답고 전망 좋은 곳이 3번지 일대다.

  특히 산동네인 3번지 마을은 한양도성을 마주보며 자리 잡고 있어, 저녁 무렵 성곽에 불이 비춰지는 때는 전망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물론 산비탈 마을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불편도 만만치 않다. 겨울이면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걸어야 하고, 집과 담장이 오래되어 무너질 것 같은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도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주장하는 주민 장덕수씨를 만났다.


- 언제 성북동으로 이사를 오셨나요?

  한 6년 쯤 되었지요. 2008년 무렵인가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집을 보러 다니다가 전망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 주저 없이 선택한 집입니다. 내심 재개발 지역이니 투자 가치도 있겠다 싶기도 했는데요, 살아보니 재개발보다도 마을을 보존하면서 주민이 살기 편한 곳으로 재생하는 것이 오히려 집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는 판단도 하게 되었습니다.


- 성북동으로 이사하시기 전에는 어디에서 사셨는지요? 그리고 왜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나요?

  전에는 아파트에 살았어요. 아파트라는 곳은 이웃을 향해 열려있는 집은 아니잖아요.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 자체가 자신만 혹은 자기 가족만 생각하는 구조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강해요. 더구나 아이들이 자라다보니 아파트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아이들이 조금만 뛰어도 아래층에서 항의를 하기 일쑤라서, 늘 아이들에게 발뒤꿈치를 들고 걸으라고 주의를 줄 수밖에 없었어요. 자기 집에서 마음껏 걸어 다니지도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이에요? 더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만 아토피에 걸리고 말았어요. 공동주택이 환경 질환에 취약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잖아요. 또 제가 장손이라서 제사도 많은데, 손님이 올 때마다 이웃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결심했지요. 지금 사는 곳은 이웃들과 열려있는 주택 구조이거든요. 단독 주택 밀집지역이 다 그렇듯이 말입니다. 내 집 마당에서 이웃집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정겨운지 몰라요. 아이들이 아무리 뛰어놀아도 항의를 받을 일이 없고, 마음 편하게 사는 공간을 비로소 갖게 된 것이지요. 이사를 하고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어요. 반려동물도 마음껏 기를 수 있어 정서적으로도 안정이 되었고, 실제로 아이들 아토피도 완치가 되었지요. 저에게는 성북동 지금 사는 집이 행복을 가져다준 곳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산동네라 불편한 점은 없으신가요?

  왜 없겠어요.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것도 불편하고, 편의시설이 먼 것도 불편하지요. 또 우리 마을에 거주하시는 분들이 주로 연로하신 어르신들이라서 이동 자체가 힘든 것도 사실이에요. 낡은 집에, 좁은 골목이 불편이라면 불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불편들을 감수하고도 얻는 편리함이 더 큰 것 같아요.

  우리 집은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단독 주택이거든요. 아파트에서 가졌던 이웃과의 문제가 이곳에는 전혀 없어요. 이웃 어르신들이 우리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여기고 사랑해주는 그런 포근함을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죠. 더구나 큰 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소음이 전혀 없어요.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지요. 겨울에는 좀 춥지만 여름에는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한 곳이기도 해요. 아래 동네와 우리 동네는 약 2도 정도 차이가 나거든요. 산 위라 바람도 잘 불어 여름에는 별장에 온 것 같아요. 우리가 시골 고향에 가면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요? 저는 아마도 소음이 없이 자연의 소리만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우리 마을이 바로 그런 곳이지요. 그러니 고향 같은 마을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아파트보다는 삶의 질이 훨씬 좋은 곳이라는 말이지요?

  네, 그렇지요. 아파트는 삶의 공간이라기보다는 날마다 묵고 일터로 나가기 위한, 마치 숙박시설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지요. 그러나 단독 주택은 그야말로 사람이 살고 숨 쉬고 행복해지는 공간이지요. 이제 아파트는 삶의 공간으로서 효용성이 끝난 곳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삶의 질을 생각하면 단독주택이 최선이지요. 그래서 아파트의 시대가 끝났다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요즘 성북 3구역 재개발 문제로 시끄럽잖아요. 아무리 아파트의 시대가 끝났다고 해도 여전히 재개발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구요. 재개발 지역에 살면서 피부로 느끼는 점은 어떤 것이 있나요?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이웃이 함께 오순도순 잘 사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원래 살던 이웃들이 많이 떠났어요. 떠나지 않고 사는 분들도 집을 팔고 자기 집에서 세를 사는 경우도 많구요.

  우리 동네는 주로 어르신들이 많이 살거든요. 어르신들이 집을 팔아 노후를 보내야 하는 문제들이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첨예하게 드러나게 된 것이지요. 이제는 외지인이 소유하고 있는 집이 더 많을 정도예요. 친척보다도 더 가까웠던 할머니가 이사를 가버리고, 늘 얼굴을 대하던 할아버지가 집을 팔아버리는 이 비정한 현실이 다 재개발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요.


- 그럼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성북동은 이름값이 높은 동네 중의 하나지요. 그 이름값을 되찾는 것이 어쩌면 대안 아닐까요? 온갖 문화재가 밀집해있는 동네이니, 그 문화재를 주민들이 삶과 연계시킨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요. 어르신들이 살아온 성북동의 이야기를 성북동을 찾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일을 맡기고, 비용을 지급해 드리는 방법 같은 것 말이에요. 또 어르신들이 사시기 힘든 동네 구조를 개선해 드리는 것도 필요하고요. 골목과 밀집한 집들을 살리면서 아름답게 리모델링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도로를 아스팔트로 포장하고, 주민들을 위한 공영 주차장을 확보라고, 담을 손질하는 등 시설 투자도 지원되어야 할 거예요. 기반 시설은 관에서 지원하고, 마을 사람들은 공동체를 꾸려 마을을 가꾸는 의식을 키워간다면, 재개발보다는 훨씬 집의 가치를 높이고 외지인들도 찾아오는 마을, 주민들이 어울러 사는 마을이 되겠지요. 재개발이 아니라 주거 재생 사업이 대안이라고 할 수 있어요 .


-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많으시네요. 그 밖에 또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우리 동네 올라가는 길의 계단이 참 불편해요. 그저 관에서 일반적인 계단을 만들어 놓은 거지요. 노인들이 많이 사시는 곳의 계단은 일반 계단보다 높이를 더 낮게 만들어야 하거든요. 탁상 행정이 아니라 직접 현장을 찾아보고, 주민의 눈에 맞춘 배려가 있어야 할 거예요. 주민과 협의를 통해 메인 도로를 확보하고, 리모델링 조건도 완화해주어야 해요. 물론 마을을 가꾸겠다는 주민들의 생각이 모인 주민 협의체가 생겨나고, 관이 그것을 지원해주는 방법이 가장 좋겠지요.

  우리 마을은 북한산 둘레길로도 연결되고, 스카이웨이의 산책길을 통해 종로구의 팔각정으로도 이어져요. 문화재와 산책길이 조화를 이루고, 골목과 산이 이어진 마을을 살려낸다면 마을이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르신들은 그렇게 살아난 마을과 관련된 여러 일들을 통해 노후의 생계 수단을 확보할 수도 있고요.

  노령화와 도시 공동화가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마을 같은 산비탈 동네야말로 생활과 문화, 경제 활동이 동시에 해결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곳이라고 할 수 있어요.


-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성북동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을까요? 성북동의 미래를 꿈꿔보신다면.

  저는 출퇴근용으로 쓰던 차를 얼마 전에 없애버렸어요. 이제는 직장까지 집에서 걸어 출퇴근을 합니다. 와룡공원길을 넘어 걸어가는 길의 경치가 아주 그만입니다. 사시사철 바라보는 성북동의 풍경이 아마 말 그대로 이상향 같이 느껴져요.

  성북동천의 복개를 걷어내고, 안 되면 실개천이라도 흐르게 복원을 하고, 그 개천 위 언덕의 집들이 노을에 빛나는 아름다운 곳이 성북동이 되기를 꿈꿔봅니다. 문화와 역사와 주민의 삶이 어우러져있는 곳, 골목과 집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으면서도 정겨운 곳, 그곳이 성북동이 아닐까요? 도심 속의 시골 같은 곳, 언제나 고향 같은 마을이 성북동이기를 꿈꿔봅니다.


선생님의 바람대로 성북동이 재개발의 광풍을 이겨내고, 주민들이 함께 행복하게 사는 문화 마을이 되기를 저도 기대합니다. 오랜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북동 3구역 주민 장덕수 씨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3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4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4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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