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 권두 칼럼 / 북둔의 아침 창가에서 | 글 김경민
프랑스 근대비평의 아버지라 불리는 19세기 시인이자 비평가인 샤를 생트 뵈브는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라는 말과 함께 작가 개인의 역사, 즉 전기적 사실을 통해 문학 작품을 해석하고 비평하였다. 이러한 역사주의 비평방식은 작가의 사상, 생활 환경, 시대와 역사적 상황 등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관점으로 특정 시대의 특정한 상황과 개인의 관계 속에서 작품이 탄생된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 8.15광복과 분단의 시기, 6.25전쟁, 자유당과 군사 독재 시대 등 급변했던 한국의 시대 상황과 같은 경우 당대의 사회·문화적인 배경이 문화예술가 개개인의 환경뿐만 아니라 그들의 작품세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러한 격동과 파란의 시대 상황 속에서 한국의 문화예술가들은 민족의 예술 정체성을 지키고자 노력하였으며, 시대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켜 한국의 전통과 예술의 명맥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 가운데서도 성북 지역은 겸재 정선을 비롯 오원 장승업, 근원 김용준, 만해 한용운, 청록파 시인 조지훈, 작곡가 윤이상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화 예술계의 거장들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가들이 서로 교류하며 작품 활동을 했던 곳으로, 성북 지역 곳곳에 그들이 머물렀던 시간의 흔적과 자취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거치면서 개인적 혹은 사회적인 경험을 통해 생성된 사상을 공유하고, 이를 반영한 문화적 소산들을 역사 속에 간직해 두었다.
‘흔적’이란 사전적으로 ‘어떤 현상이나 실체가 없어졌거나 지나간 뒤에 남은 자국이나 자취’라는 뜻을 가진다. 역으로 말하면 과거 예술인들이 경험했던 특정 시대와 인물들에 대한 시대적·환경적인 접근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의 실체, 즉 인간적 본질 그 자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재생하려는 노력은 당대 문화예술가들이 창작해낸 작품의 미학적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한국의 시대적 상황을 대표하는 예술가 혹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화가이자 수필가, 역사가인 김용준은 성북동에 위치한 ‘노시산방’을 중심으로 한국 추상 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또한 그는 일본 유학 당시 교우하게 된 현대 소설가 이태준을 비롯하여 시인 정지용, 조지훈 등과 친하게 지내며 광복 전후 한국 문화예술계를 주도하다 6.25 전쟁 도중 이태준 등과 함께 월북하게 되었다. 이태준은 월북하기 전 이상, 정지용, 김기림 등과 함께 문학친목단체인 ‘구인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월북하기 전까지 성북동에 살았던 소설가 박태원 역시 ‘구인회’의 일원으로 함께 활동하였다. 조지훈은 당시 성북동 주변에 살고 있던 화가 김기창과 김환기를 비롯하여 작곡가 윤이상과 교유하며 지냈는데, 특히 조지훈이 청소년 시절 직접 찾아간 한용운의 심우장은 당시 민족운동가, 스님, 문학인, 학생 등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곳으로 여전히 성북동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시인 김광섭은 성북동에 머물던 시절 병고와 싸우면서도 <성북동 비둘기> 등 주옥같은 작품을 창작해냈으며 화가 김환기와도 친분을 유지하였는데 당시 김환기는 김광섭의 시 구절을 인용하여 작품의 제목을 짓기도 하였다. 화가 변종하는 성북동 시절 화가 김기창, 권옥연을 비롯하여 박두진, 조지훈 등과 같은 문학인들과도 교류하였으며, 특히 김기창, 김환기, 손재형, 천경자 등 지금의 예술계 거장들과도 두루 친분을 유지했던 박물관인 최순우와는 각별한 사이였다. 최순우와 함께 민족문화 수호에 일생을 바친 간송 전형필 역시 청전 이상범, 춘
곡 고희동, 심산 노수현 등 당대 문화예술가 및 인사들과 두루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가 설립한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은 오늘날 한국 문화재의 보고(寶庫)로서 성북동에 자리하고 있다. 이밖에도 소설가 전광용을 비롯하여 조각가 권진규, 송영수 등 많은 예술가들이 성북 지역을 창작의 근간으로 삼아 활동해 오며 그들의 발자취를 남겨놓았다. 이처럼 문화예술가들의 친분 관계와 생활, 그들이 겪었던 시대 상황을 공유하는 것은 그들의 살았던 시대의 특정한 삶과 개개인의 역사를 따라 한 걸음씩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물이 맑고 산이 좋은 성북동을 비롯한 성북 지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주요 인물들과의 인연(因緣)이 많은 지역이다. 그들은 한국 근현대사에 나타난 격동과 변화의 시기를 직접 겪으며, 당대를 통해 느꼈던 개인적·사회적 경험을 그들의 작품 또는 삶 속에 예술세계로 승화시켜 담고자 했다. 험난하고 불안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그들의 작품을 향한 예술혼과 한국인으로서 지키고자 했던 민족 정신은 오늘날 한국 근현대 문화예술사의 근간(根幹)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당대 문화예술가들이 공유하고 경험했던 시간의 흔적을 되짚어 봄으로써 한국 근현대사 속에 그들이 남긴 시대적 의미와 가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해 봐야 할 것이다.
몇 백 년 전 겸재 정선이 삼선교에서 바라보며 그렸던 성북동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이 이 지역 곳곳에 거주하며 과거 예술가들의 정신과 시대적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과거 선인(先人)들과 여전히 특정 시대를 공유하며, 자신의 예술세계와 작품을 현시점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한 시대를 공유한다는 것은 과거·현재·미래가 주는 시간의 격차를 뛰어넘어 새로운 시간과 경험을 창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단순히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성북 지역에 살던 예술가들의 교류와 흔적들 속에 남겨진 한 ‘시대’를 공유하는 것에 그 의의를 두고자 한다. 이는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이 혼재하는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 짓는 시간 초월적 경험을 해봄으로써 다시금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고찰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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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은 성북구립미술관 큐레이터이고 학예사이다. 성북구립미술관의 기획전시 업무를 맡아 ‘그 시간을 걷다’ 등 성북근대미술관련 연구를 통해 지역 주민에게 성북동을 중심으로 활동한 다양한 예술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탐미할 수 있는 기획전시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이 글은 2011년 10월부터 12월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그 시간을 걷다’의 해설로 성북동의 문화를 다시 보기에 좋은 글이라 이번 호 잡지에 재수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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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4호는 2014년 '한옥마을 및 한양도성 인근 마을 가꾸기 공동체 희망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4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