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 성북동의 숨은 보물 찾기 | 글 최성수
성북동 산 3번지 그 집
그리운 것은 모두 두고 온 그 마을에 있으니
성북동 산 3번지 비탈길을 오르면 나는
세월을 거슬러 소년이 된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 집을 갖게 된 아버지는
마당 귀퉁이에 작은 화단을 꾸몄다
농부인 아버지의 기억이 담겨있던 그 집
삼백만원에 샀던 무허가 블로크 집 방안에서는
한겨울이면 대접의 물이 꽁꽁 얼었다
세월처럼 바래고 낡아 마침내는 제 몸조차 가누지 못했던
그 집
세 살짜리 계단을 걸어올라
한참 숨이 차야 만날 수 있던 녹슨 철대문과
비가 오는 날이면 청량리역에서
기차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던 다락방
한양도성을 마주보며 양지바른 언덕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마을에서
나는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마침내는 어른이 되었다
성북동 산 3번지
철거반과 맞서 똥물을 퍼부으며 싸웠던 사람들이 눌러 살던 곳
제 몸을 부숴버린 블로크 대신
새로 벽돌집을 지은 아버지는 담장 아래 장미를 심었다
오월이면 담장을 넘어 골목까지 늘어지던 장미는
재개발의 광풍을 먹먹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아버지와 심은 향나무도
늙어 숨을 거둔 그 집
집집마다 대추나무 한 그루씩 심어 가을을 맞았던 그 동네
이제 젊은이들은 마을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가버리고
나이 든 어른들만 옛 집처럼 늙어가는 곳
3번지를 날던 비둘기가 사라지고 남은 하늘은
오늘도 여전히 청청 눈부시다
그리운 것은 다 두고 온 그 마을에 있으니
성북동 산 3번지 비탈길을 오르면 나는
시간을 거슬러 소년이 된다
* 표지 글씨는 성북구 평생 학습관 수련생인 박종순·전현숙님께서 쓰신 글을 집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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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4호는 2014년 '한옥마을 및 한양도성 인근 마을 가꾸기 공동체 희망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4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