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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Nov 15. 2017

고3 학생이 걸은
한양도성 성곽길 성북동 구간

[4호· 특집] 한양도성 성북동 구간 답사기 2│글 최진형

성북동 거리-혜화문


  거리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젖어 있었다. 앙상한 나무들과 쌀쌀한 바람이 이제 겨울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가을 막바지의 비 내리는 성북동은 쓸쓸함과 그리움 등 온갖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언제나 계절은 순환하고 이 거리의 풍경은 비슷하지만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른 게 참으로 독특한 곳이다.

  잡다한 생각에 사로잡혀 걷다 보니, 어느새 혜화문에 도착했다. 한양도성(지금의 서울 성곽)의 8개의 문 중 작은 축에 속하는 사소문 중에서도 동쪽에 자리 잡은 혜화문은 성북구와 종로구의 경계이기도 하다. 문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민가, 다른 쪽에는 널찍한 차도가 자리 잡은 탓인지 도시와 마을을 구분하는 지표인 것처럼 느껴진다. 과거에는 이문 밖은 시골이었으니 옛날에도 혜화문은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혜화문의 처음 이름은 홍화문이었으나 창경궁의 동문인 홍화문과 이름이 같아 혼동을 피하기 위해 혜화문으로 이름을 고쳤다. 일제 강점기 때 전찻길을 내면서 혜화문을 허물었던 것을 1992년에 복원하였다. 이 때 옆에 도로가 있어서 원래 위치보다 약간 북쪽으로 옮겨지었다.”

                                                                                              - 혜화문 앞 안내 비석의 글에서 일부 발췌


  혜화문은 조선 시대에 만주의 여진족과 통하는 길목 중 하나였다고 한다. 당시 여진족은 중국이나 조선에게 오랑캐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혜화문은 한양 도성의 다른 문들에 비해 저평가 받았다고 전해진다.



혜화문-경신고등학교


  혜화문을 지나 주택가 길을 걸으면 오래된 돌들과 새 돌이 섞여 성벽을 이루고 있다. 본래 한양 도성은 태조 이성계가 서울에 도읍을 정하고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성벽인데, 완성 이후에도 몇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다. 초기에는 성벽에 흙과 돌이 섞여 있었고 작고 울퉁불퉁한 돌을 이용해 쌓았으나 세종 시대에 모두 석성으로 바꾸었으며, 보수할 때마다 점점 반듯하고 큼지막한 돌을 사용하였다. 혜화문에서 성곽을 따라 잠깐 걸으면서 보면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성벽의 위쪽 절반이 사라진다. 자세히 보니 빌라의 벽돌담이 반으로 잘린 성곽 위에 얹혀 있다. 게다가 성벽이 사라지기 전 앞쪽 위로 펜스가 쳐져 있고 그 뒤에 위험해 보이는 흰 건물이 하나 있다. 중간 중간 끊어진 성벽과 성곽 위에 있는 흰 건물을 보니 예전에 남산 근처에 답사 갔을 때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 문화재가 태반이었던 게 생각난다. 물론 거의 800년 가까이 지난 지금으로서는 성곽의 원래 모습을 그대로 손상 없이 보존하는 것은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흰 건물과 펜스, 빌라의 벽돌 벽은 ‘과연 이 돌벽이 서울성곽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성곽의 본 모습을 훼손하고 있다. 문화재를 온전히 보존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문화재라고 알아볼 수 있고 그 주변의 풍경과 조화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앞으로 가면 그나마 남아 있던 성곽의 잔재마저 사라진다. 골목에 사방으로 길이 나 있는데 예전에 성곽이 있던 자리라는 표식 하나 없어 도대체 어디부터 성곽이 다시 이어지는지 알 수 없다. 20분 내내 골목 이곳저곳을 들쑤셨지만 성곽의 돌 조각조차 찾을 수 없다.

  대략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경신고등학교 옆을 지나는 도중에 성곽이 다시 이어진다. 이번에도 성곽의 반 정도는 아예 없어지고 학교의 담으로 되어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다시 한 번, 문화재에 대한 보존 대책이 시급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경신고등학교-서울 성곽


  도로 때문에 성곽은 다시 끊어진다. 과학고 앞을 지나서 더 가다보면 다시 성곽이 이어진다. 보통 서울성곽이라고 말할 때 가리키는 구간이다. 그래서인지 앞에 서울성곽에 대해 설명하는 비석이 놓여 있다. 새로 만들었는지 깨끗하다. 다만 단순히 성곽에 대한 정보만을 나열해 놓은 모습과 성곽과 매치가 잘 안 되는 디자인이 조금 눈에 거슬린다. 어떤 곳은 그냥 돌에 이름만 써놓고 설명이 아예 없거나 더럽혀지고 갈라진 표지판이 그냥 방치되어 있을 정도니 ‘그래도 이렇게 해놓은 게 어디야’ 하는 생각도 든다. 아직 문화재 보존은 갈 길이 멀다.


  서울 성곽 산책로를 걷다가 한동안 정신이 멍해진다. 늦가을의 커다란 단풍나무와 붉게 물들은 단풍잎이 터널을 만들었다. 성곽 산책로에서 본 단풍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삭막하게만 느껴졌던 도시 안에서 이런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니! 항상 시간에 쫓기는 듯 바쁜 사람들 속에서, 어쩌다 고개 들어 주변을 둘러 봐도 갑갑하기 만한 회색 도시, 서울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절로 행복해진다. 한참을 홀린듯 바라보다 다시 걷는다.

  성곽 중턱에서 오른쪽에 난 샛길로 방향을 바꾼다. 800년 가까이 된 한양 도성을 뒤로 하고 성북동의 달동네, 북정마을로 향한다.



북정마을


  성북동은 한양 도성의 북쪽에 있는 동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는 이곳에 둔전(군대가 머무르면서 농사짓는 밭)이 있었고 이 곳 주민들이 두부와 메주를 만들어서 조정에 납품했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북적북적하였고 여기에서 ‘북정마을’ 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대략적인 마을 구조를 보면 원형 도로에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산 위에 있어서 전망도 좋다. 건너편 한양 도성에서도 북정마을이 보인다.  지금 북정마을은 서울 시내에 몇 안 되는 달동네 중 하나다. 한국이 급속도로 산업화되는 시기에 농촌에서 도시로 올라온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던 곳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 올라온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성북동에 재개발 논란이 일면서 이 북정마을도 완전히 없어질 위험에 처했다. 비록 낡은 마을이라 해도 모든 달동네들이 그러하듯이 북정마을은 어떻게 보면 역사를 품고 있는 마을이다. 서울 성곽 일부가 완전히 없어져서 찾을 수 없었던 게 생각난다. 오래된 것을 무조건 없애고 새것으로 바꾸는 게 항상 옳은 일일까? 지금의 재개발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작업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업이 주도하기 때문에 돈의 문제가 개입된다. 게다가 북정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도시 내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북정마을 외에는 어디도 갈 곳이 없다.

  북정마을을 걷는 도중에 아주머니 한 분이 마침 산신제를 지내고 남은 음식들을 나눠 먹고 있는 중인데 좀 먹고 가라고 하신다. 나물과 고깃국의 온기가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해 준다. 이런 풍경은 옛날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도시 안에서 보게 되어서 그런지 더 감동적이었다. 요즈음 보기 힘든 풍경에 북정마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번 답사를 하는 데 2시간 남짓이 걸렸다. 사실 뭔가 거창한 계획을 세운 것도 뚜렷한 목적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수도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가깝지만 멀게 느껴졌던 문화재를 직접 답사함으로서 예전에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라고만 생각했던 문화재가 지금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서울 성곽은 어느 날 우리 앞에 홀연히 나타난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세월 속에서 닳아지고 끊어지고 부서졌지만, 성곽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최진형은 성북동에서 태어나 고3인 지금까지도 살고 있는 성북동 토박이다. 현재 경동고등학교 3학년으로, 내년에 대학에 입학하여 역사를 전공할 예정이다. 성북동에 살면서도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한양도성을 이번 답사를 통해 새롭게 느낄 수 있었으며, 역사 연구와 현장 답사의 중요한 관계를 새삼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고 한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4호는 2014년 '한옥마을 및 한양도성 인근 마을 가꾸기 공동체 희망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4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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