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북 Dec 01. 2017

보통 아닌 보통 책방
ORDINARY BOOKSHOP

[4호] 우리 가게를 소개합니다│글 김정은 · 그림 정민영

  10월 중순 어느날, 한성대 입구역에서 동구마케팅고등학교로 가는 대로변의 뒷길 쪽, 방앗간과 이발소를 사이에 두고 ‘ORDINARY BOOKSHOP’이라는 낯선 가게가 새로 생겼다. 영어로 써놓은 간판이 어색한지 하루에도 몇 번씩 질문이 오간다. 


“여기 뭐 하는 곳이에요?” 


사전을 뒤져보면 ORDINARY는 보통의- 일상적인 이라는 뜻이고, BOOKSHOP은 서점- 책방이니, 해석하면 ‘보통 책방’이 되겠다. 그렇지만 책장에는 평소 보던 책들이 아닌 희한한 책들이 꽂혀있고, 또 서점이라기엔 규모가 작으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나 보다. 좁은 골목길에 책방이라니? 많은 분들이 이 점을 의아하게 생각하신다. 번화가도 아니고 대로변도 아닌 이곳에 책방을 여는 젊은이의 용기를 높게 사주는 분들도 계신다. 바야흐로 대형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이 아닌 골목의 동네 책방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다. 

  성북동 184-37번지, 보통 아닌 보통 책방, ORDINARY BOOKSHOP이 문을 열었다.



독립출판물, 들어보셨어요?


  책방을 찾아오시는 분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독립출판물에 관심이 있어 찾아온 분들과 오며 가며 책방이 있어 찾아주신 성북동 주민 분들이다. 독립출판물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먼저 나서서 설명을 해드리고 있다. 익숙한 단어는 아니지만, 의미가 어렵지 않아 짧은 설명으로도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독립출판이란 1인 혹은 소규모의 인원이 기획, 디자인, 인쇄, 유통 등에 이르는 과정을 진행하는 출판 체제를 일컫는다. 인터넷과 전자책의 발전으로 출판시장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지만 이와 반대의 움직임으로 독립출판 시장은 규모가 점차 커져가는 추세이다. 독립출판물은 기존의 출판물과는 다르게 책의 형태도 가지각색이고 다양한 소재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것이 독립출판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우리 책방을 찾는 분들도 처음 보는 책들이 신기한지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하다 제목을 보고 웃음이 터진다. 『두 번째 사표』, 『9여친 2집』, 『궁상도 가지가지』 등 재미있는 제목의 책들이 많으니 자연스레 한 번 더 눈길이 가고, 참신한 내용에 또 한 번 관심이 간다. ‘오디너리북샵’에는 독립출판물뿐만 아니라 책방지기가 선정한 책들도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베스트셀러와 자기 계발서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멋진 책과 출판사들이 많다. 이런 출판사와 함께 동네 책방으로서의 입지도 점차 굳혀나가려고 한다. 이 책장은 아직 가득 채워지지 않았는데 앞으로 책방지기와 책방을 찾아주는 분들이 추천하는 책으로 함께 채워갈 예정이다.



성북동 그리고 책방


  성북동이 아닌 다른 곳의 ‘오디너리북샵’은 생각할 수 없지만, 처음에는 책방의 위치 선정 때문에 애를 먹었다. 역사와 문화가 풍부한, 낯설지 않은, 번화가가 아닌 동네. 이것이 기준이었다. 서울에 이 기준에 부합하는 동네는 이제 그리 많지 남아있지 않다. 대부분 개발되어 옛 모습을 잃었고 골목골목마다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내 뜻과는 맞지 않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할까? 가까이에 있던 성북동을 뒤늦게 깨달았다. 

  성북동과 나의 인연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암동에 자리를 잡은 게 대학교 2학년이었고, 그 무렵부터 본격 서울살이를 시작하며 힘들 때마다 찾게 되는 곳이 바로 성북동이었다. 성북동에는 맛있는 레스토랑과 예쁜 카페도 많고 무엇보다 길상사가 있어 내가 사랑하는 동네 중의 하나였다. 성북동에 책방을 열기로 결심을 굳히고 나자 이 동네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골목마다 이야기가 넘쳐나는 동네, 한양성곽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동네, 높은 건물이 없어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는 동네. 내가 성북동을 좋아하는 이유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성북동을 두 눈 크게 뜨고 돌아다니다 지금 책방 자리를 보자마자 반해버렸다. 작은 골목 두 개가 만나는 지점에 책방을 열 수 있어 위치상으로도 좋았지만, 양쪽으로 큰 창이 있어 낮이면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어린 소녀가 책방을 열기까지 가깝고도 먼 길을 돌아왔다. 대학 졸업 후, 적성에 맞지 않는 회사에 다니며 참 많이도 힘들었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결단을 내리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나 일단 결심을 하고 나자, 마치 예정된 일을 진행하는 것처럼 모든 일이 술술 풀렸다. 이제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책을 좋아해서 책방을 열었어요.”




오디너리북샵과 당신


  책방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본다. 참고서는 존재하지 않는 서점에서 진지한 모습으로 책을 고르는 여고생의 모습, 엄마와 함께 동화책을 보며 반짝거리는 아이의 두 눈, 퇴근길에 책 한 권을 골라 집으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발걸음. 내가 파는 것은 책이지만 그들이 사가는 것은 책 이상의 것이었으면 좋겠다. 입시로부터의 자유, 엄마의 사랑, 퇴근 후의 여유로움 같은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매개로 ‘오디너리북샵’은 당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작은 동네 책방에서 나누게 될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꿈꿔본다.



김정은은 ‘오디너리북샵’의 책방지기이다. 성북동이 좋아 성북동 골목에 책방을 열었는데, 답답하고 지루한 회사 생활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요즘 절감하고 있다. 앞으로 이 책방에서 교육이나 강좌 등을 열어볼 꿈도 꾸고 있다. 책방이 마음을 나누는 사랑방 같은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정민영은 북디자이너이고 일러스트레이터다. ‘오디너리북샵’의 귀퉁이 작은 공간에서 북 디자인과 일러스트 작업을 하고 있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4호는 2014년 '한옥마을 및 한양도성 인근 마을 가꾸기 공동체 희망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4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립운동가 만해의 별장, 심우장을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