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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Nov 07. 2017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9호] 주민 기고|글 곡경문

  올해 2월 26일은 성북동에 앙리동물병원을 개원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성북동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에 매료된 저는 정신없이 바빴던 준비기간을 거쳐 병원 문을 열었고,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신나는 1년을 보냈습니다.

  성북동에서 지낸 1년의 시간 동안 나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병원의 원장으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무엇을 배우고 성장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습니다. 성북동에 와서 정말 많은 새로운 인연들을 만났습니다. 그 중 저에게 새로운 세계의 눈을 뜨게 해준 분들은 유기동물들을 도와주시는 봉사자분들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되고 1인 가구도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반려동물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21.8%에 달하는 457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 다섯 가구 중 한 가구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나 이와 동시에 버려지는 반려동물 또한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반려동물 산업, 이른바 ‘펫코노미(Pet-conomy) 사업’이라고 불리우는 영역에 몸담고 있는 저도 이렇게나 많은 유기동물들이 생겨나는지 몰랐습니다. 봉사자분들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비공식적인 자료에 따르면 유기동물의 수는 매년 8만 마리에 이른다고 합니다. 떠오르는 반려동물 산업의 어두운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방정부에서 운영하는 공립 보호소와 민간에서 운영하는 사설 보호소들이 전국적으로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어두운 부분은 늘 가려져 있고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게 마련입니다. 보호소에 입소한 유기동물의 40% 가량은 시설 안에 퍼진 감염병 및 여러 질병들로 인해 생을 마감하며, 다행히 거기서 살아남은 동물들도 평균 12~23일이 지나면 안락사됩니다. 안락사를 시행하지 않는 보호소는 손에 꼽힐 정도입니다.

  왜 이렇게 많은 유기동물들이 생겨나고 있을까요? 반려동물들을 키우는 세대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버려지는 아이들도 많아지는 걸까요? 원인을 살펴보면 반려동물을 키우던 집안이나 개인의 사정, 잘못된 교육이나 방치로 사납게 돌변한 아이들, 질병 등등 매우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들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단연 사람의 무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품종견, 품종묘를 선호합니다. 병원에서 분양을 문의하시는 분들에게 어떤 아이를 원하시는지 물어보면 늘 비슷한 대답들을 듣습니다.


“예쁜 아이요.”

“최대한 작고 귀여운 사이즈는 어떤 종이에요?”

“털이 안 빠졌으면 좋겠어요.”

“짖지 않았으면 해요, 그리고 똑똑해야 해요.”


  저희는 그런 대답들을 들으면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차라리 강아지 로봇을 사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지요. 내 뜻대로 길러지는 자식 없듯이 반려동물 또한 원하는 대로 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키우다 아파서 병들면 버리고, 너무 짖어도 버리고, 배변훈련이 되지 않아 버리고, 애기 시절 심한 저지레(일을 저질러 말썽이나 문제가 되게 하는 짓)를 참지 못해 버리고, 털이 많이 빠져서 버립니다. 유기동물들의 사연을 접할 때마다 참 허무하고 슬퍼집니다.

  유기동물들의 평균 수명은 15~20년, 짧지 않은 이 시간을 철저히 책임져주어야 하는데 그 정도 각오도 하지 않고 입양하셨나요, 아니면 입양하실 계획인가요?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먹는 법, 걷는 법, 말하는 법 등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가 모든 걸 가르쳐야 하듯이, 반려동물도 배변하는 법,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법,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법, 먹는 법, 새로운 동물친구들을 만나는 법 등을 보호자가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삐뚤어지는 아이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입양하는 분들은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시간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갖게 되는 거겠지요.


  이렇게 생겨난 많은 유기동물들은 철저히 방치된 채 보호소에서 자신을 버린 보호자가 언젠가 데리러 올 거라 믿고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씩 기다리게 됩니다. 그나마 그 사이에 누군가 눈에 띄어 재입양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방치된 채, 아파서 쓰러지면 그때서야 치료 차 보호소를 나올 수 있게 됩니다. 이것마저도 기똥차게 운이 좋은 편이죠. 쓸쓸히 아픔 속에서 혼자 버티다 죽는 아이들이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보호소 안에서도 차별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믹스견들은 품종견들에 비해 입양 기회나 치료의 기회가 더더욱 오지 않습니다. 현실이 이러한데 아직도 애견분양샵에 가서 예쁜 아이, 혈통 좋은 아이를 찾으실 건가요? 그러다 또 마음에 안 들면, 병들면, 키우다 힘들어지면 버리시겠죠?


  제가 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 만난 값진 인연들 중에 저희조차도 박수를 쳐드리는 분들이 바로 이런 아이들을 돌봐주시고 치료해 주시고 새로운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들을 통해 저희도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되었고, 봉사 과정에 참여하여 작게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을 통해 많은 유기동물들을 만나게 되었고, 저희가 여태까지 가지고 있던 편견들을 깰 수 있었습니다 .

  유기동물들도 그 어떤 반려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스럽고 누구에게나 무한한 애정을 주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치료차 병원에 와서 처음 본 우리에게 무한정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리고, 처음 하루이틀은 낯을 가리다가도 매 끼니를 챙겨주는 병원 식구들이 출근하면 방방 뛰면서 인사를 하며 안아달라 만져달라 애교를 부립니다. 이렇듯 무한한 애정 공세를 받다보면, 이 아이들이 왜 버려졌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한편으론 짠하기도 합니다.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우리인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우리가 치유받을 정도로 사랑이 많은 아이들입니다. 반려동물로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 사람의 욕심으로 키워지다 버려진 아이들, 무책임한 사람들로 인해 병들어 버려진 아이들을 이제는 우리가 책임져야 할 때입니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 오히려 사비와 시간을 들여 - 보호소에서 청소, 미용, 치료 및 이동 등 꾸준히 봉사를 이어가시는 분들 덕분에 유기동물들에 대한 인식도 점차 바뀌고 있고, 열악했던 보호소 환경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분들이 있기에 새로운 가족을 만나 지금은 웃으면 지내는 아이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분들도 기운이 빠진다고 토로할 때가 있습니다. 힘들게 10마리를 입양 보내면 또 새로운 5마리의 유기동물들이 새로 보호소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줄어들지 않는 유기동물의 개체수와 부족한 일손으로 항상 힘든 상황이지만, 끔찍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언제나 온 힘을 다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도 이 현실을 바꾸는데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반려동물을 키워볼까 생각하는 중이라면, 사람의 욕심과 무분별한 분양업자로 인해 태어난 아이들을 찾기보다는 먼저 유기동물 단체에서 아이들을 만나보심이 어떨까요?

  이 세상에는 먹히기 위해, 버려지기 위해 태어난 생명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관심과 애정이 한 아이의 지옥 같은 시간을 끝내고 삶을 바꿔줄 수 있습니다.



곡경문은 일년 전 성북동에 두 번째로 생긴 앙리동물병원의 수의사이다. 동물보호단체 봉사자들과의 인연으로 산업화된 반려동물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하고 버려지는 동물들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게 되었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9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7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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