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이라곤 서로뿐인 이곳에서
버스에서 내린 곳은 람블라스 거리. 라보케리아 시장이 있는 거리다.
각종 상점이 즐비한 이 거리는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 거리 같았다. 살만한 건 없는지 기웃거리고 사람 구경을 하며 걷고 있는데, 꽃집을 발견했다. 신랑은 망설임 없이 꽃집으로 가 장미꽃을 샀다.
연애하는 4년 동안 꽃을 자주 사주던 신랑이었지만 낯선 나라 바르셀로나에서 받는 장미꽃은 더욱 특별했다.
"나랑 결혼해 줄래? 나랑 결혼해 줘서 고마워."
갑자기 받게 된 프로포즈 그리고 고맙다는 말.
한국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거리에서 나는 프로포즈를 받았다.
결혼식 축가를 직접 부르며 나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그는 자신이 꼭 와보고 싶었던 이 나라에서 프로포즈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내 대답은 언제나 그랬지만 "YES."
꽃을 받아 들고 신나게 걷던 내 모습을 그는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그저 드라마 한 편의 주인공 같았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 낯선 공기, 익숙한 것이라고는 서로뿐인 이곳에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미꽃에 이어 프로포즈를 위해 신랑이 알아놓았던 바르셀로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Oria.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으로 맛도 생김새도 서비스도 완벽했다. 우리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Cheers.
디너 코스는 식사 시간이 3시간 30분~4시간 정도 소요된다.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담당 서버가 배정된다. 우리에게 배정된 서버는 두 분이었는데 매우 친절하게 음식에 대한 스토리를 설명해 줬다. 식전 요리부터 맛있어서 후에 나올 모든 코스가 기대되었다.
디저트까지 9가지 코스를 맛보았다. 내 기억 속에 평생 남을 이 날의 맛, 향기, 이야기, 음악. 그저 스칠 수 있었던 인연이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되어 이곳에 함께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3시간 넘게 긴 코스를 즐기고 총괄 셰프님이 나와서 인사하고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디저트는 쇼파에서 편하게 즐기라며 자리를 옮겨주었다. 사랑하는 사람 덕분에 이런 호사도 누리고 결혼 참 좋구나.
예비 신혼부부를 위한 TIP.
Oria는 예약제입니다. 디너 코스는 저녁 8시, 8시 30분, 9시, 9시 30분 타임이 있어요. 저희는 9시 타임으로 예약했어요. 밤 12시 30분이 되어서야 저녁 식사가 끝났습니다. 추가 요금을 내면 와인 페어링도 할 수 있어요. 프로포즈, 기념일 등에 방문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35살의 난 아직 사랑을 다 안다고 얘기하지 못한다. 다만, 그를 통해서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낯간지러운 표현이 서툴렀던 내가 표현을 하게 되고, 어른스러워지고 있다. 내가 좀 더 성숙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역할이 컸다. 때로는 친구처럼, 오빠처럼, 아빠처럼 여러 역할을 담당하는 그에게 고마울 뿐이다.
제2의 인생, 기분 좋은 시작이다. 새로운 하루하루가 낯설겠지만 익숙한 사람과 함께이므로 평안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의 모든 계절이 다 하였을 때, 그와 함께 했던 모든 날이 후회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바르셀로나에서 받은 장미꽃처럼 한 떨기 아름다운 꽃으로 하루하루 피고 지며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