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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성은 Oct 09. 2015

정든 날

스무 번째 걸음. 내가 싼 것은 짐이 아니었으리라.




이삿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조급한 마음으로 이삿짐을 쌌다.


짐을 싸다 보니 별의별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홀연히 지나가버린 미련 없이 흘러갔던 시간들이 쏟아져 나왔다.

생각지도 못했던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추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서랍에서 옷장에서 화장대에서 침대 밑에서 그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을 상자에 차곡차곡 포개어 넣었다.

접고 접어도 끝이 없었고 넣고 넣어도 넘쳤다.


내가 다 넣지 못할 만큼의 추억이었고

내게 너무도 과분한 고마운 정이었다.


낯설었던 이곳에서

내가 살아온 그날들에 정이 들어버렸다.

내가 보내온 시간들에 정이 들어버렸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 정이 들어버렸다.


낯설다는 단어가 낯설 만큼

정이 들어버렸다.



떠난다.

그것들을 고이 싸서 떠난다.


내가 받았던 그 마음을

내가 주었던 그 마음을

들만큼 들어버린 정을

너무도 따뜻했던 정을

고이 싸서 떠난다.


내가 싼 것은 짐이 아니었으리라.

정든 날, 정든 곳, 정든 사람

그 情이었으리라.






청춘 says.


16년 동안 살았던 이 동네를 내일 모레 떠난다.


나의 학창시절을 청춘의 일부를 보낸 동네.

나를 크게 했던 동네. 어른으로 만들어준 동네.


그 시간, 그 추억, 그 사람들.

너무도 감사했던 그 정을 모두 싸서 떠난다.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지만

그 정, 온전히 내 마음에 품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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