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스며들다

그 동네, 세탁소.

열세 번째 스며듦.

by 성은




내가 20여 년 가까이 살고 있는 이 오래된 동네에 새로운 세탁소가 생겼다.

몇 해 전, 한 세탁소가 문을 닫고 꽤 오랜 시간 세탁소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유는 글쎄, 길이 좁아 배달이 어려워서? 바람이 많이 불어서? 날씨 변덕이 심한 동네라?

어디까지나 내가 추측한 이유일뿐이다.


이런 동네에 드디어 큰 세탁소가 자리를 잡았다.

세련된 간판에 널찍한 공간 그리고 하루도 쉬지 않는 세탁소라니.

이전에 있던 세탁소보다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갔다.

모두 가져다가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시간에 옷을 한가득 가져가도, 빨리 해달라고 보채도

세탁소는 단 한 번도 "이건 안돼요.", "오늘 안 합니다.", "너무 늦게 오셨네요."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어서 오세요.", "고마워요.", "얼른 해드릴게요." 같은 따뜻한 말을 건넸다.


난 그렇게 세탁소의 단골이 되었다.







고단한 내 하루를 벗어 비비고 비벼 열심히 빤 다음, 햇빛에 말려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있다.

눈물로, 땀으로 때로는 누군가 나에게 뱉은 차가운 침으로 생긴 얼룩은 내 힘만으론 지워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세탁소를 찾았다.


세탁소는 구겨진 내 마음을 곱게 다려주고

짧아진 내 말 수를 길게 늘여주고

작아진 내 웃음을 크게 만들어주고

늘어난 내 슬픔을 줄여주었다.







좁고 좁아 차 한 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나라는 동네에

바람이 쌩쌩 불어 춥다가도 햇살이 스며들고, 비가 갑자기 눈으로 바뀌기도 하는 변덕 심한 나라는 동네에


품이 넓어 수만 벌의 옷을 걸어둘 수 있는 너라는 세탁소가

세상에 치이고 치여 생긴 온갖 얼룩을 깨끗이 지워주는 너라는 세탁소가 생겼다.







참 잘생기셨네요. 주인아저씨~
고마워요. 이 동네에 들어와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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