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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스며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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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성은 Dec 03. 2018

아마도 그건,

스물일곱 번째 스며듦.




#1.

한남동의 한 베이커리 겸 카페를 자주 간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파티시에의 크루아상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렬로 진열돼 있는 윤기 나는 크루아상의 모습에 군침이 돈다. 손으로 쭉 찢으면 속살이 부드럽다. 무조건 하나 먹으면 하나 더 먹게 되는 크루아상이다. 이 바삭하고도 부드러운 그리고 큼지막한 크루아상을 먹을 때마다 '집에 몇 개 사가서 엄마, 아빠 드려야지 ' 생각한다.


베이커리를 나오는 길, 크루아상 4개와 초코 크루아상 1개, 퀸 아망 1개를 포장한다.

출근길 크루아상을 먹으니 든든했다던 아빠가 생각난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2.

오후 6시 무렵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듯 씩씩거리는 목소리다. 바로 만나자며 약속을 잡는다. 오후 7시 만남의 장소 광화문에서 접선한다. 상사로 인해 울그락 불그락 얼굴이 벌게진 친구를 진정시키며 부암동 단골 카페로 간다. 아메리카노 2잔에 기분을 가라앉혀줄 달콤한 당근케이크를 주문한다. 커피와 케이크가 나오는 순간 친구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진짜? 대박... 웃겨 정말. 왜 너한테 그래? 넌 잘못한 것 없어! 그 얘기하지 그랬어!"


친구의 입장에 빙의되어 열심히 들어주고 맞장구친다. 감정이입을 하다 보니 내 혈압도 같이 오른다.

스트레스에는 단 게 최고라며 당근케이크를 한입 먹는다. 우리는 이렇게 갑을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토로하며 3시간을 보낸다. 내 시간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이유는 나의 친구이기에. 나는 무조건 친구 편이기에.






#3.

한 달 전 퇴사를 했다. 오래 다닐 줄 알았던 회사였는데 여러 사정으로 인해 그만두게 되었다. 리프레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지만 그동안 그곳에서 보냈던 추억이 맴돈다. 시원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친구는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동안 고생했다며 맛있는 저녁을 사주겠다고 한다. 친구의 퇴근시간에 맞춰 친구가 알아놓은 맛집으로 찾아간다. 때깔 좋은 라구 파스타와 시금치 리조또를 보니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다 보니 접시가 깨끗해진다. 온갖 감정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던 내 마음도 하얗게 비워진 느낌이다.


든든히 밥 한 끼가 지닌 의미, 나는 알 것 같다.






#4.

내가 외출할 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묻는다.


"몇 시에 와?"

"늦을 것 같아. 연락할게."


나는 무심하게 답한다.

신발을 신고 문을 여는 순간 엄마는 또 한 번 걱정 담긴 잔소리를 한다.


"뛰지 마. 천천히 가. 차 조심해. 일찍 들어와"


나는 단 두 마디, 엄마는 다섯 마디를 한다.






#5.

나는 매일 자기 전 기도를 한다. 감사 기도이기도 하고 소망을 담은 기도이기도 하다.


'오늘은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감사히도 이렇게 극복했습니다. 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저랑 저희 가족, 저의 친구들 모두 건강하게 해 주세요. 아무 일 없이 하루 잘 보내게 해 주세요.'


늘 마무리는 이렇게 소망을 담는다. 나와 내 사람들의 내일이 평범한 하루가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평범한 것이 가장 큰 행복이자 가장 어려운 것임을 알기에. 나는 오늘 밤에도 기도할 것이다.


'그저 평범하게, 내일은 오늘보다 한 번 더 웃을 일을 만들어주세요.'






#6.

나는 혼자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 방에서 또는 카페에 앉아 나에 대해 탐구하고, 지난 일을 회상하며 미래를 상상하는 것을 즐긴다. 이 때문인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잘 구분하고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하고 에너지가 생기는지 알고 있다.


나는 힘들거나 화가 날 때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린다. 시, 에세이 코너에 들러 책 제목만 쓱 훑어본다. 눈으로 코로 귀로 서점의 분위기를 느끼며 한동안 그곳에 머문다. 특이한 제목이 눈에 띄면 바로 구입한다. 모아놓은 서점 포인트를 사용하는 날에는 묘한 쾌감도 느껴진다.


구입한 책을 들고 광화문 앞을 걷는다. 집에 들어가기 전 책은 절대 열어보지 않는다. 그저 내 손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한참을 걷는다. 내 품에 있는 이 책은 이병률 작가의 '바다는 잘 있습니다'

책 한 권을 들고 경복궁 근처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 여자가 보인다면 바로 나일 수 있다.


나는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때 행복을 느끼고 에너지가 생긴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같은 것은 감사할 일이다. 글과 말로써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즐거움을 주며, 도움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이다. '창작, 상담, 강연'이라는 3가지 목표가 뚜렷해 불안하기도 하지만 불안감까지 껴안아야 오로지 내 것이 될 수 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누군가가 생각난다는 것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

누군가가 나를 위해 사준 든든한 밥 한 끼

누군가가 나에게 건네는 잔소리

누군가를 위해 밤마다 드리는 기도

내가 내 자신을 알아가는 평생의 여행



아마도 그건 '사랑'이지 않을까?

사랑은 우리의 삶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음을 기억하며.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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