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껍질에 대한 이야기.
본문
혀와 눈이 달린 얼굴과는 달리 손은 정확한 말을 하지 않는다. 말하려 하지만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가리려 하지만 역시 다 가리지 못한다. 얼굴보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얼굴보다 교묘한 탈이다. 말할 필요가 없으므로 얼버무릴 필요도 없다. 침묵하면 그만이다. 정지해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가리려 한다면 무엇 때문에 작품을 제작하는 것인가? 침묵하면 그만 아닌가. 손을 멈추고 있으면 그만 아닌가. 보여주면서도 집요하게 숨기고자 한다는 것은 어떤 모순인가.
"그러니까, 너 없이 돌아갈 그 세상이라는 게 너한테 무슨 의미라는 거지?"
사라진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살아갈 수도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의자에 앉아, P가 방금 꺼내 썼던 얼굴을 벗는 것을, 지극히 단순한 얼굴로 돌아가는 것을, 그 벗어놓았던 얼굴을 잠시 후 다시 걸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꿈꾸지 않기 때문에 난 실망하지 않아. 특별히 가까운 사람도 없지만, 특별히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도 없어.
이 양파 껍질들이 전부인지도 모르겠어. 끝까지 벗겨낸다 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어.
삶의 껍데기 위헤서, 심연의 껍데기 위에서 우리들은 곡예하듯 탈을 쓰고 살아간다. 때로 증오하고 분노하며 사랑하고 울부짖는다. 이 모든 것이 곡예이며, 우리는 다만 병들어가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