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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꿀차

바람이 분다, 가라

한강

by 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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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큰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친밀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라고 이 사람은 말했어. 작은 그림을 그린다는 건, 스스로를 경험 밖에 두고 거기서 그 경험을 환등기나 축소경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했지. 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면, 자기가 그 안에 들어가 있어서 어떤 것도 한눈에 볼 수 없게 된다고 했어.
천체물리학의 세계에 들어가면 시간과 공간이 같은 것을 말하는 지점을 만나게 된다. 멀리서 반짝이는 별은 오랜 과거의 별이며, 이미 존재하지 않는 별일 수도 있다. 더 멀리 볼수록 더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우주의 지평선은 그렇게 우리가 멀리 볼 수 있는 한계, 더 오랜 과거로 거슬러 오를 수 있는 한계다. 그것이 없다면 우주가 태어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주방의 작은 창 안쪽에서, 희끗한 짧은 머리를 파마한 늦은 중년 여자가 긴 국자로 육수를 휘휘 젓고는 입술을 반쯤 적시고 간을 본다. 정수기 옆에 놓인 18인치 텔레비전에서 고교생 퀴즈프로가 방영되고 있다. 딸로 보이는, 갈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높에 묶은 스무 살 즈음의 여자애가 카운터 앞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바깥은 이제 완연한 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어둡다. 헤드라이트를 밝힌 차들이 빽빽히 밀린 채 조금씩 앞으로 굴러간다.

이런 시간.
어린 동물처럼 연약해진 삶이 떨며 손바닥 위에 놓이는 시간.

이렇게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일반상대성의 원리대로, 물질의 질량에 비례해 주변의 공간이 휘어진다면 - 그게 행성처럼 거대한 것들에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니라면 - 타인의 몸 주위로 구부러진 공간의 만곡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며, 자신의 구부러진 공간 속으로 타인을 불러들였다 내보내곤 하며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리라고.

한강 작가님은 나랑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다.

분명 한국어인데.

성스러움이란 뭘까, 가끔 생각해.

이 세계에 없는 것..... 우묵하게 파이고 구멍 뚫린 윤곽으로만 가까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어떤 것 아닐까. 장님처럼 우린 그 가장자릴 더듬으면서 걸어가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인파에 떠밀려 지하철을 탈 때, 혼잡한 환승 구간을 어깨로 헤치며 나아갈 때, 매표구 앞에서 길고 무질서한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릴 때 난 성스러움을 느껴. 인간을 믿을 수 없어질 때, 흉폭한 모서리가 가슴을 찢고 튀어나올 때 성스러움을 느껴. 차가운 장판 바닥에, 씻지도 않고 코트도 안 벗고 웅크리고 누워서 내 안의 마모된 부분을 들여다볼 때, 영원히 망가졌거나 부서져버린 그것들을 들여다볼 때 성스러움을 느껴. 어떤 종교 서적에서도 아니고, 신앙 회합의 자리에서도 아니고, 예배당도 고적한 기도처도 아니고..... 너덜너덜 찢어진 이 삶 가운데서.

성스러움을 느끼는 순간.

예전에 MBTI 검사 질문지에서 영적인 힘을 느끼냐는 질문을 보면 이게 무슨 말일까 하고 생각했다.

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무신론자인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성스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문득 아름다움을 포착할 때, 충만감이 차오를 때 성스러움을 느끼곤 하는데, 너덜너덜 찢어진 삶에서 성스러움을 느낀다는 말이 새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공감이 되었다.

영원히 망가지고 부서진 것들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것.

차를 세워야 했습니다. 시동을 끄고, 사이드브레이크를 올리고 나는 차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운전을 하고 나니까 이 구절이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나는 보통 사이드브레이크를 올린 다음에 시동을 끄는데 말이다.

무한히 번진 먹 같은 어둠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삼촌은 말했지.
생명이란 가냘픈 틈으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지만,
언젠가 우리한테서 생명이 꺼지면 틈이 닫히고,
흔적 없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게 될 거라고.

그러니까, 생명이 우리한테 있었던 게 예외적인 일, 드문 기적이었던 거지.
그 기적에 나는 때로 칼집을 낸 거지. 그때마다 피가 고였지. 흘러내렸지.
하지만 알 것 같아.
내가 어리석어서가 아니었다는 걸.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는 걸.
..... 지금 내가, 그 얼음 덮인 산을 피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끝까지 읽고 나면 제목이 왜 <바람이 분다, 가라>인지 알게 된다.

얼마나 눈물겨운 제목인지도.

높이뛰기 연습을 하던 시절 바람을 이기지 못한 장대가 인주의 허벅지를 관통했다.

이후 바람이 부는 날이면 인주는 조용해진다.

그럼에도 나아가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피하지 않고 기어이 살아내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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