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꿀차

여름

이디스 워튼

by 성은
XL_(7).jpeg?type=w773


<여름>은 작년에 룸메이트와 기숙사 방에서 얘기하면서 추천받은 책인데 이제야 읽었다.

6월의 무더위가 배경이라 더 일찍 읽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여름이 가기 전에 읽어서 다행이다.

읽는 내내 채리티가 너무 순진해 보이고 답답해서, 룸메이트가 주인공 때문에 읽기 힘들었던 책이라고 한 말이 이해가 되었다.

그렇지만 시대 상황을 생각해 보면 채리티가 지극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제한된 환경 속에서 채리티가 성장해 가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성장해야만 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본문

채리티는 고통스러운 순간이면 언제나 달아나고 싶었다. 자신이 아는 낯익은 얼굴들로부터, 또 사람들 사이에 자신이 잘 알려진 장소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어린아이처럼 채리티는 낯선 장소와 새로운 얼굴이 자기 삶을 바꾸고 쓰라린 기억을 말끔히 씻어 주리라는 기적의 힘을 믿었다.

그녀의 모든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충동은 차츰 그의 의지를 숙명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그가 인격적으로 더 훌륭하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 오히려 그녀 자신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 다만 그 나머지 삶이 그들의 열정이라는 중심적인 영광 주위에 감도는 희뿌연 후광에 지나지 않게 되어서였다.

마치 자기 삶이 그가 없는 동안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그가 있었던 장소, 그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도 그가 떠나자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채리티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니에게 주었다. 그러나 삶이 그에게 줄 수 있는 다른 선물과 비교한다면 도대체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해설

채리티의 첫마디가 "모든 게 지긋지긋해!"라면, 맨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아저씨도 훌륭하세요."이다. 모든 일을 불평 가운데 짜증스럽게 대하는 태도가 어느덧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로 바뀌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수용하는 채리티를 보며, <앵무새 죽이기>가 떠올랐다. 성장이라는 것은 순수함을 잃는 과정인가 보다.


<여름>의 쌍둥이 소설이 <이선 프롬>이라는데 이것도 읽어보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목로주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