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준
북클럽 인스타그램에서 <선릉 산책>을 인생 책으로 꼽은 사람이 있어서 궁금해졌다.
소설집에 등장하는 건 온통 상처받은 인물들뿐인데 작품 하나하나가 지극히 따뜻하다.
본문
일을 하지 않으면 일에 뺏겼던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불안했으나 그렇게 믿으려 했다. 사람들도 위로해줬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제 쉬면서 원래 했어야 하는 것들을 하세요. 쉬고 먹고 여행 다니세요. 그러겠다고 했고 미소도 지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일을 잃으니 나 자신도 잃게 되었다. 어쩌면 일을 하면서 나라는 존재가 만들어진 건 아니었을까? 그것이 없으니 나도 사라지는 것 아닐까? 위태로웠다. 울적했다.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공감이 됐다. 예전에는 은퇴한 사람들이 느끼는 공허를 어렴풋하게만 이해했었는데, 올해에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었다.
어떤 일 때문에 무너지는 게 아니었다. 일이 일어나지 않게 버티는 힘으로 무너지는 거였다. 안에서 밖으로 점점 갈라지다가 스스로 무너지는 초라한 집 한 채. 그래서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어리석은 삶.
선릉역에 선릉이 있다니. 선릉이 있으니까 선릉역도 있는 것이겠지만 나는 이 사실이 낯설었다.
몇 주 전에 엄마랑 선릉역에 간 적이 있는데, 이때 선릉이 있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던 기억이 떠올라서 웃음이 났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을 악마로 만드는 존재가 바로 악마야.
그건 병이야. 뚜렛이라는 병이라고.
나는 올리버 색스의 책을 읽고 투렛 증후군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소설에서 종종 보인다.
넌 날 좋아하면 안 돼. 난 널 좋아하지 않을 거거든.
상관없어.
아냐 서로 안 좋아하면 반드시 한쪽은 슬퍼져.
안 좋아하는 것은 더 슬퍼.
#힘드니까. 비참하니까. 그것을 사랑이라 그냥 믿어버리는 거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엄청 편하단다. 모든 지저분한 것들을 그림자 밑으로 쑤셔박을 수 있거든.
좋아지는 것을 원하면서, 좋아지는 나 자신은 원하지 않는 마음.
아니, 내 실수로 뭔가 망가졌다면 그게 더 나을 것 같아. 탓할 게 없다는 것, 책임질 이가 없다는 것이 너무 괴로워.
작가의 말
비극이 갈 곳이 없으면 비극의 무대는 어디에 마련되는 걸까.
그런데 정말 칠십 편쯤은 썼으면 좋겠다. 그때까지는 왜 쓰지, 뭐 쓰지, 어떻게 쓰지, 고민하지 않고 열심히 쓸 생각.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사람이 되는 거야? 인생은 그런 게 아니야.' 맞다. 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 나도 안 믿고 싫어하는데, 나는 내가 그런 소설가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