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재즈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쿨재즈를 좋아하셔서 챗 베이커 노래를 틀어주셨다.
<I fall in love too easily>라는 노래를 듣고 챗 베이커의 우수에 젖은 감성을 사랑하게 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조용한 카페 창가에 앉아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며 들어야 하는 노래이다.
그런데 일리노이와 "비가 추적추적"은 양립할 수 없고 미국에서 "밤에 조용한 카페"에 있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이걸 실현하려면 100일을 기다려야 했다.
챗 베이커는 누가 봐도 가을 감성인데 단풍이 들면 비를 대신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Time after time
I tell myself that
I am so lucky to be
loving you
So lucky to be the one
you run to see in the evening
when the day is through
I only know what I know
The passing years will show
You kept my love so young and so new
And time after time
You will hear me say
That I am so lucky to be
loving you
<Time after time>의 가사는 짧고 간결한데 아름답고 진심이 느껴진다.
챗 베이커만의 멜로디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재즈의 고장은 뉴올리언스라지만 시카고도 재즈로 유명하다.
시카고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고 그저 대도시라는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는데, 수업이 없는 노동절을 틈타 한국인 교환학생 친구들과 2박 3일로 시카고 여행을 떠났다.
출발하기 전의 목표는 시카고 미술관과 스타벅스 리저브였다.
미술관을 여유 있게 보고 싶어서 한 친구와 좀 더 일찍 출발하고, 이틀 전에 먼저 시카고에 가 있던 1명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저녁에 도착했다.
캠퍼스에서 다운타운 시카고까지 2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옥수수밭이 펼쳐졌다.
샴페인에 있다가 시카고에 오니 시골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모든 빌딩이 초고층인데, 허름한 건물이 하나도 없고 전부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가장 먼저 시카고 미술관을 방문했다.
예전에 정말 사랑했던 고흐 그림을 비롯해서 미술 교과서에서 많이 보던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어릴 때 컬러링북에서 색칠했던 피카소와 몬드리안의 작품.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의 실물도 영접했다.
이 그림을 보러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대한 작품이었는데, 색깔이 정말 선명해서 사진으로 보던 것과 느낌이 달랐다.
명암의 대비가 분명해서인지 고독감이 더 잘 와닿았다.
의외로 기대하지 않고 있던 컨템포러리 관에서 본 사탕 더미가 기억에 남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무게만큼 사탕 더미를 만들어 놓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관람객들이 사탕을 먹어서 무게가 점점 줄어들면 그 사람을 그렇게 떠나보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의 무게가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기를 바랐던 것일지.
1시쯤에 입장했는데 폐관 시간인 5시가 되어서야 미술관을 나섰다.
떠나기 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이 실린 엽서책을 하나 샀다.
화사하고 미니멀한테 챗 베이커와 유사한 멜랑콜리가 녹아 있는 작품들을 보고 다른 그림도 더 보고 싶어진 작가였다.
저녁으로는 시카고 3대 피자로 유명한 지오다노스에 갔다.
딥디쉬 피자를 주문하고 1시간 정도 기다린 후에야 엄청나게 두꺼운 피자가 나왔다.
파이처럼 바삭바삭한 두 겹의 도우 사이에 치즈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피자를 먹고 360 전망대에서 야경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한쪽은 빌딩 조명으로 화려한데 반대쪽은 새까만 미시간 호가 대비를 이루는 아름다운 도시에서의 밤이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