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으러 기숙사를 나서면서 공기를 들이마시자마자 가을 향기가 느껴졌다.
드디어 가을이 왔나 보다.
비록 다음주에 42도까지 올라간다고는 하지만, 미국에서도 처서매직이 통하는 게 신기했다.
다이닝홀에서 베이글에 딸기 크림치즈를 바르며 통유리창 밖으로 바라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했다.
파란 하늘, 싸늘한 공기와 따뜻한 햇살은 완벽한 조합이다.
공기의 쌀쌀함에 대비되는 햇빛의 따스함이 가을의 낭만을 한 스푼 더해주었다.
8월이 거의 다 지나갈 무렵 시간표가 확정되었다.
2주 간의 수강변경 기간 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너무 바쁘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업 하나를 빼고 싶었다.
미국의 18학점은 한국과 달라서 이대로라면 너무 정신없이 한 학기가 지나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어떤 수업을 취소할지 고민하다가, 신경과학실험 수업을 빼기로 했다.
매번 생쥐로 직접 실험해야 한다는 점이 나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쥐 실험뿐만 아니라 양 뇌를 해부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신경해부학 수업에서 사람 뇌를 다루기 때문에 겹치는 내용이 많았다.
신경과학실험 수업을 취소한 김에 1학점짜리 요가 수업을 추가했다.
15학점이라면 수업 하나하나를 좀 더 제대로 들으면서 여유롭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동안 일상생활의 루틴도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아침을 잘 먹지 않았는데, 이곳에서는 베이글을 먹고 싶은 마음으로 일찍 일어나 다이닝홀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며 공부하다가 9시쯤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체육관에 갔다.
체육관에 가기만 하면 그곳에서 벌크업에 열중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보이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열심히 운동을 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에는 기숙사로 돌아와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제 슬슬 미국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것일까?
얼마 전 미술 스튜디오 수업에서 끝까지 남아 그림을 그리면서 한국인 조교님과 몇 마디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조교님은 미국에서 미술 교육학 석사를 하셨고 지금은 박사 과정생이었는데, 7년 정도 살았지만 아직도 정서가 맞지 않아서 한국인이 좋다고 하셨다.
한국인 교환학생 언니오빠들과 삼겹살 파티를 하면서 느꼈던 행복을 생각해보면, 이곳에서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늘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은조 언니 자취방에 모여 밥을 하고 삼겹살과 된장찌개, 비빔면, 상추에 김치까지 차려서 먹으니까 다이닝홀에서 먹은 베이글과는 차원이 달랐다.
친구들이 캠퍼스타운 근처에 있는 한인마트에서 꼬북칩과 오감자도 사와서 나눠먹었다.
미국의 오!감자 포장지에는 O!TUBE라고 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어느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나 볼 수 있는 과자인데 어쩜 이렇게 반가운지!
나도 꼭 한인마트에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마 미국에 오지 않았다면 밥과 된장찌개가 이렇게 맛있는지 몰랐겠지?
오감자가 이렇게 귀한 과자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여름의 막바지를 보내며 미국에 익숙해졌다기보다는 익숙해서 너무 사소했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