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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은 Sep 23. 2024

하나의 정육면체에서 반대편에 있는 모서리

National Alliance on Mental Illness, 줄여서 NAMI라는 정신건강 동아리는 꽤 스케일이 크다.

전국 단위의 단체가 있고 주 단위의 지부들과 각 주에 소속된 캠퍼스 내 동아리들이 있다.

NAMI UIUC에 가입하면 NAMI와 NAMI Illinois에도 자동으로 가입이 된다. 


동아리에 공식적으로 가입하기 전에 홍보 목적으로 열린 소셜 행사에 갔다.

캠퍼스타운의 보바티 가게에서 모여 공짜 보바티를 하나씩 받고, 메인 쿼드의 잔디밭에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 돌아가면서 진실 2개와 거짓말 1개를 말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무엇이 거짓인지 맞추는 게임을 했다.

한국에서 아이스브레이킹을 할 때 하던 진진거와 유사했는데, 잔디밭에 앉아서 영어로 똑같은 게임을 하니까 표면적인 모습은 달라도 사람 사는 방식은 다 비슷하구나 싶었다.


이날 새로 만난 친구 하나는 정치학을 전공하는 신입생이었다.

그래서 외국인 입장에서 느낀 미국의 장단점을 궁금해했다.

말차 보바티에 든 펄을 씹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미국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이민자들로 만들어진 유래 때문인지, 장애나 성 정체성, 인종 등 여러 측면에서 형성되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그 자체로 존중한다.

정체성을 존중한다는 말의 의미는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뜻이다.


일리노이에서 본 모든 버스는 저상 버스였는데, 휠체어를 탄 사람이 오면 버스 기사가 자연스럽게 경사로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캠퍼스 건물의 모든 문에 버튼이 있어서, 이걸 누르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기 때문에 휠체어를 탄 사람이 쉽게 지나갈 수 있다.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어서 처음 발견했을 때 너무 신기했다.

이동의 편리성이 보장되어 있으니까 길거리와 버스, 그리고 다이닝홀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한국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 건 비율이 더 적어서가 아니라, 대중교통이 너무나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 정체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all gender restroom이 있고, 기숙사 중에도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수용하는 gender inclusive hall이 있다.

일리노이 대학교가 주립대라는 걸 생각하면 이런 시설과 서비스가 보편화되어 있다는 뜻이겠지.


또 하나의 큰 특징은 넘쳐나는 자본이다.

넓은 땅과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나라답게 모든 시설의 규모가 한국의 서너 배에 달한다.

4층 규모의 캠퍼스 체육관 맨 위층에는 층 둘레를 따라서 길이가 300미터인 트랙이 있었다.

심지어 걷기, 조깅, 또는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서로 방해받지 않도록 3차선으로 나뉜 트랙이었다.


반면 지나친 풍요 때문인지 자원 낭비가 심하다.

일회용품을 너무 많이 사용하고 분리수거도 잘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카페에서 매장용 컵과 종이빨대를 쓰고 장 보러 갈 때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면서, 왜 환경 오염이 심해지는지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다이닝홀에서 매일 수천 명이 쓰는 일회용 접시와 컵, 수저를 보고 왜 환경이 오염되는지 알게 되었다.

남는 음식 자체도 많았는데, 학생들이 음식물 쓰레기와 접시, 그리고 컵을 모두 하나의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다이닝홀뿐만 아니라 일반 매장에서도 똑같았다.

월마트에 갔을 때는 점원이 비닐봉지 하나에 물건을 하나씩 넣어주어서, 몇 가지 사지도 않았는데 비닐봉지 대여섯 개를 들고 돌아오며 죄책감이 들었다.


사회의 기저에 자리잡은 불평등도 무시할 수 없다.

차별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금기시하는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인종차별적인 모욕을 직접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이닝홀과 캠퍼스 카페에서 일하는 근로 학생들이 대부분 히스패닉이나 아시아인이라는 점과,수업이나 모임에서 백인 학생이 말할 때 미묘하게 호의적인 반응이 눈에 띄었다.


정치학을 전공한다던 친구는 내 장황한 말에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이라며 고맙다고 했다.


최근 영문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읽은 글이 떠올랐다.


'While people are fairly young and the musical composition of their lives is still in its opening bars, they can go about writing it together and exchange motifs, but if they meet when they are older, their musical compositions are more or less complete, and every motif, every object, every word means something different to each of them.'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자라면 같은 현상을 바라볼 때에도 서로 다른 면을 본다.

어쩌면 하나의 정육면체에서 반대편에 있는 모서리를 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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