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만난 한국인이라는 존재는 특별하다.
한국에서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미국에서는 항상 의식해야 하는 내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우연히 한국인을 마주치면 반갑고, 식사를 하거나 놀러갈 때도 한국인들끼리 뭉치니 자연스럽게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불고기와 제육볶음을 먹으러 갔던 한인 교회의 목사님께서 저녁을 사주신다고 하셨다.
우리 학교에서 교환학생들이 오면 항상 데리고 가신다는 버팔로윙 식당이었다.
스크린이 엄청 많은 아웃백 느낌의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조금 짠 버팔로윙을 집어먹으며 일리노이 생활에 대한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다.
예배에 참석할 일은 없겠지만, 이 낯선 땅에 도움을 청할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마음이 안정되었다.
함께 교환학생을 온 언니오빠들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미국에서 일주일 넘게 생활하며 친밀감이 급상승했다.
한국인의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이 몇 없을 때는 상대방이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애정이 생겨난다.
연세대 교환학생들끼리 처음으로 다같이 모여서 놀았던 건 지엽오빠 생일파티였다.
유일하게 기숙사에 살지 않고 자취를 하는 은조언니 집에서 서프라이즈를 하기로 했다.
캠퍼스타운의 유명한 피자 가게에서 피자와 샐러드를 포장하고 팬트리에서 술을 사갔다.
근처 마트에서 산 생일 케이크는 크림 대신 설탕으로 아이싱이 되어 있어서 충격적일 정도로 달았다.
피자와 술, 과자, 그리고 자취방이 만들어내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다디단 케이크는 우리가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있다는 걸 상기시켰다.
빵이 아니라 설탕 덩어리가 아닌지 의심되는 케이크, 그 방에서 가장 미국적인 케이크가 한국인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를 끈끈하게 묶어주었나 보다.
새벽 1시까지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주 노동절 연휴에 함께 시카고를 여행하기로 약속하며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