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식당 앞에서 줄을 서는 건 서울이나 시카고나 마찬가지였다.
밀레니엄 파크 건너편에 팬케이크 가게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첫날 가지 못하고 둘째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언니들이랑 시도해 보았다.
얼마나 맛있는 팬케이크이길래 그렇게 줄을 서는 걸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한 입 먹어보았는데, 팬케이크에 공기방울이 하나도 없어서 퐁신퐁신하고 부드러웠다.
달콤한 소스로 범벅이 되어 있지만 않았다면 맛있었을 것 같았다.
다소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른 오빠들과 합류해 다같이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아쿠아리움도 미국답게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상어도 보고 돌고래와 벨루가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가오리를 만질 수 있는 체험이 있었는데, 상상하는 그대로 미끈미끈하고 축축하고 차가웠다.
귀여운 벨루가가 계속 생각나는 바람에 기념품점에 진열되어 있던 벨루가 인형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데려올까 말까.
너무 데려오고 싶었지만 교환학생을 마치고 나서 집까지 데려갈 방법을 찾자니 심란해졌다.
미국에서 귀여운 인형을 볼 때마다 짐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게 아쉬웠다.
그렇지만 어쩌겠어.
너를 한국에 보내는 일보다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무래도 더 중요하니까 말이야.
언니오빠들이 아쿠아리움 근처 맛집을 찾아서 딤섬을 먹으러 갔다.
판다익스프레스와 다르게 미국식 중식이 아니라 한국에서 먹던 중국 요리와 비슷한 음식들이었다.
전날 기름진 피자를 먹었더니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어서 연잎밥을 시키자고 강력하게 제안했다.
사실 그게 인생에서 처음 먹어본 연잎밥이었는데, 담백하고 쫀득해서 맛있었다.
미국에서 흔치 않은 담백한 음식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흩어졌다가 저녁에 모이기로 했다.
전날 늦게 도착한 팀은 미술관으로 향했고, 나는 은조 언니와 밀레니엄 파크까지 쭉 걸어갔다.
가는 길에 버킹엄 분수도 볼 수 있었다.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이 분수가 세계에서 가장 큰 분수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밀레니엄 파크에는 시카고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인 강낭콩이 있다.
강낭콩을 볼 생각에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보수공사 중이라 철조망이 둘러져 있어서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존재를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밀레니엄 파크의 또다른 명물로는 두 개의 기둥에서 물줄기가 나오는 분수가 있다.
직육면체 기둥의 한쪽 면은 스크린으로 되어 있는데, 커다란 얼굴이 띄워져 있고 코에서 물줄기가 나왔다.
얼굴이 계속 바뀌었는데 누구 얼굴인지는 알 수 없었고 왜 그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
물이 엄청 많이 나오는 분수 속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나도 어릴 때 분수에 들어가기 좋아했던 게 떠올랐다.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놀기 참 좋겠구나.
나와 전혀 다른 곳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갑자기 친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공원에서는 재즈 페스티벌도 하고 있었는데, 쿨재즈와는 조금 다르게 시끌벅적한 느낌이었다.
밤에 가기로 한 재즈바에서는 어떤 곡을 듣게 될지 궁금해졌다.
저녁에는 네이비 피어에서 모여 크루즈를 타기로 했기 때문에, 언니랑 그곳까지 천천히 걸어가보기로 했다.
유명하다고 들었던 스탠스 도넛에 들렀는데 정말 다디단 미국의 맛 그 자체였다.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뮤지엄을 보며 신기해하기도 하고, 또다른 명물인 가렛 팝콘에서 팝콘도 샀다.
아니나다를까 달짝지근한 캐러멜맛과 짭짤한 치즈맛 팝콘은 둘 다 자극적이었다.
네이비 피어의 쇼핑몰에는 인형을 만드는 기계가 있었다.
인형 거죽을 선택하면 솜을 채워주는데, 옵션에 따라 옷도 입혀 주고 심장 박동도 넣을 수 있는 커스텀 인형이었다.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고민했지만 이번에도 짐이 늘어날까 봐 데려오지는 않았다.
시카고 리버크루즈는 네이비 피어에서 시작해서 시카고 강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코스였다.
아키텍처 투어라는 이름답게 도슨트가 강변의 건물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건축의 도시라고 불리는 시카고의 건물들은 제각기 개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시카고 강을 따라 조화를 이루었다.
노을이 질 무렵 크루즈에 탑승해서 해가 점점 저물어갔고, 돌아올 때쯤에는 완전히 깜깜해졌다.
탑승객들이 야경을 찍을 수 있도록 배가 호수 쪽으로 나와서 도시를 바라볼 수 있었다.
노란 불빛들로 반짝이는 건물들로 채워진 풍경은 아무리 봐도 어디서 봐도 눈부셨다.
마지막 일정은 재즈의 도시 시카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즈바였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서 어떤 분위기일지 전혀 예상이 안 되었는데, 우리가 간 곳은 <라라랜드>에서 튀어나온 듯한 재즈바였다.
근처에서 핫도그를 포장해 와서 간단한 저녁으로 먹으며 공연을 관람했다.
사전에 프로그램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연주자들이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날 재즈바에 온 연주자들이 무작위로 올라와서 연주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도 즉흥적으로 다같이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이런 게 재즈구나.
호텔에 돌아와 기절하듯이 잠들기 직전, 하루 종일 경험했던 것들이 어렴풋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자극적인 음식, 어디든지 규모가 큰 건물과 시설, 그리고 자유를 상징하는 듯한 재즈.
온통 새로운 것투성이라 혼란스러웠지만 기분 좋은 혼란이었다.
여행이란 질서를 떠나 혼란을 찾아 나서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