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다이닝홀에 있는 베이글에 빠졌던 적이 있다.
시나몬 베이글에 플레인 크림치즈를 발라 먹기도 하고, 플레인 베이글에 어니언 크림치즈를 발라먹기도 하고, 블루베리 베이글 사이에 햄과 치즈를 끼워서 샌드위치로 만들어먹기도 했다.
아침에는 베이글과 함께 시리얼과 과일을 먹고, 점심과 저녁에는 샐러드를 곁들여 먹었다.
미국에 오기 전부터 샐러드를 즐겨 먹을 만큼 균형 잡힌 식단에 관심이 많았는데, 베이글이 밀가루에 이스트와 소금만 첨가해서 만드는 빵이라는 사실을 안 이후 더욱 한결같이 베이글을 먹게 되었다.
미국에서 새롭게 매력을 발견한 또다른 음식은 아사이볼이었다.
하와이에서 유래한 아사이볼은 아사이열매로 만든 스무디볼에 과일이나 그래놀라, 견과류 등의 토핑을 올려먹는 음식이다.
캠퍼스타운에 있는 카페베네에서 아사이볼을 판다는 말을 듣고 먹으러 갔다.
블루베리와 비슷한 보라색 스무디 위에 그래놀라와 딸기, 블루베리, 바나나가 올라가 있었다.
새콤달콤하면서 지나치게 달지 않은 건강한 맛에 순식간에 빠져버렸다.
한국에서는 그릭요거트를 정말 자주 먹었는데, 토핑을 올려 먹는다는 점이 비슷해서 그릭요거트 대체품을 먹는 기분이었다.
다이닝홀에는 플레인 요거트와 블루베리 요거트가 있었지만, 꾸덕꾸덕한 그릭요거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달달하고 바삭한 그래놀라는 항상 있어서 과일과 함께 플레인 요거트에 올려 먹었는데, 아사이볼의 새콤함은 그와 또다른 매력을 주었다.
유니온에도 아사이볼을 파는 곳이 있었다.
저스트비 아사이라는 곳이었는데, 카페베네와 다르게 아사이 스무디를 직접 담고 토핑도 골라서 마지막에 무게로 가격을 매기는 방식이었다.
한국에서 마라탕을 먹을 때 똑같은 방법으로 계산했던 게 떠올랐다.
토핑이 정말 다양해서 무엇을 넣을지 고민하다가, 그래놀라, 바나나, 망고, 코코넛, 골든베리, 헤이즐넛, 아몬드, 그리고 꿀을 담았다.
감동적일 만큼 맛있었지만 꽤 비싸서 자주 가지는 못했다.
대신 시험을 본 날에는 기념으로 유니온에서 아사이볼을 사먹는 작은 사치를 부렸다.
한국에 있었다면 몰랐을 한식의 소중함을 알게 되기도 했다.
남자친구가 비상시에 먹으라고 컵볶이를 주문해주었는데, 한국에서 가져온 컵누들과 함께 마음의 안정을 위한 양식으로 아껴놓았다.
먹고 싶은 음식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음식이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몸이 아픈데 속이 안 좋아서 음료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속이 더 안 좋아졌을 때, 다이닝홀에 따뜻한 음식이 있는지 찾아보고 싶었지만 죽이 있을 리가 없었다.
며칠 동안 아프니까 한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밥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누룽지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다이닝홀에 있던 밥이 맨밥이 아니었는지 물을 붓자 기름이 둥둥 뜨는 바람에 포기하고 스프나 몇 숟갈 먹었다.
나중에 편의점에서 햇반과 김을 샀는데, 마음의 안정을 위해 상시 구비해놔야겠다고 다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인마트에서 김부각을 샀을 때 너무 행복해서 조각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아껴 먹었다.
한국인 교환학생 친구들과 가끔 해먹은 한식은 한 줄기 빛이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생일상을 요리해 주었는데, 하루는 소고기 미역국과 떡볶이를 만들었다.
비비고 미역국에 소고기를 넣어서 끓이고, 인터넷에서 떡볶이 레시피를 찾아서 떡과 양념장을 직접 만든 후 치즈까지 올렸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의식주' 중에 다른 건 몰라도 '식'의 중요성은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다.
그래도 NAMI 모임에서 알게 된 말을 마음속에 새겼다.
Life isn't about waiting for the storm to pass, it's about learning how to dance in the rain.
대학에 오기 전에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면서 살았다.
성인이 되고 대학에 온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습관이라는 것이 참 무서워서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미국에 와서 정말 좋아진 것들 중 하나는 여러 가지를 미루지 않고 지금 바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운동이든, 동아리 활동이든, 여행이든.
먹고 싶은 음식을 구하기 어려워도, 덕분에 내가 직접 해먹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미역국과 떡볶이, 닭볶음탕과 김치전.
다이닝홀 샌드위치 바에서 토마토, 양상추, 치즈, 햄 등의 속재료를 통밀빵 사이에 끼워넣고 그릴에 넣어 구우며 생각했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재료 하나하나가 나를 이루는 거니까, 다이닝홀에서 음식을 한 접시 골라담는 일, 요리를 해먹는 일은 나를 돌보는 일이라고.
그 일을 직접 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니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