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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창문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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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은 Oct 18. 2024

어떤 끄덕거림

한국에서의 추석은 보통 중간시험을 준비하기 전이었는데, 미국에서는 거의 매주 시험이 있다 보니 추석에도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확률과정 시험을 준비하면서 3일 동안은 계속 새벽 5시나 6시에 자다가 시험 전날에는 더 일찍 잔다고 2시에 잤다.

70분 시험을 35분 만에 다 풀어서 공부한 보람이 있었다.

내가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가려고 하자 교수님께서 "You are officially my favorite student."라고 말씀하셔서 기분이 두 배로 좋아졌다.

그것도 잠시, 시험이 끝난 날 자정까지 제출해야 하는 1000단어짜리 미술 에세이 과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한 글자도 쓰지 않은 상태라서 저녁식사를 반납하고 그 시간에 급하게 쓰기 시작해 3시간 만에 완성했다. 

과제까지 제출하고 나니 그나마 한숨을 돌릴 시간이 왔다.

다음주 수요일에도 시험이 있었지만 시험 하나가 끝난 날이고 심지어 추석 연휴니까 쉬기로 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잘 모르는 우리의 명절이었지만 가족들이랑 친구들과 추석 잘 보내라고 인사를 주고받았다.

교환학생 채팅방에 추석 인사가 올라왔다.

"즐추"

"Happy Korean Thanksgiving"

"korean thanksgiving??? it's CHUSEOK"

"I'm going to wish you a happy American Chuseok this November"

추석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유머를 주고받으며 한참 웃었다.

지금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명절을 보내고 있을까?

역시 가장 많이 생각나는 건 명절 음식이었다. 

요즘 들어 떡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가래떡부터 시작해서 꿀떡, 송편, 백설기, 인절미, 시루떡, 오메기떡, 찹쌀떡 등 온갖 종류의 떡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거기에다가 잡채나 약과, 갈비찜 같은 명절 음식이 추가되었다.

추석과 설날마다 엄마랑 같이 부쳐먹었던 전이 생각나서 엄마한테 전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는데, 엄마가 사진을 안 찍어뒀다고 하셨다.

미안해하시는 엄마한테 괜찮다고, 설날에 먹으면 되니까 괜찮다고 말했지만 조금은 아쉬웠다.

한국을 그리워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9월의 마지막 날에 햇볕이 내리쬐는 나무 사이를 거다 보니, 문득 이곳이 그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온 게 맞는 선택이었을까 하는 고민들.

살면서 자주 하는 고민이지만 늘 결론은 다시 돌아간대도 똑같이 할 거라는 것.

그렇다면 꽤나 잘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벽 3시에 스터디룸에서 한국어 전자책을 읽을 때면, 나를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던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떠올랐다. 

"솔아야, 너무 열심히 쓰지 마."
원영은 말했다.
그 말이 나는 못내 서운했다.
내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열심히 하려는 사람에게 왜 자꾸 그런 말을 하느냐고, 나는 불만을 섞어 볼멘소리를 했다.
"너무 열심히 하면 무서워져."
공부든, 글쓰기든,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고 원영은 말했다.

- <초파리 돌보기>, 임솔아


공부하다가 펜이 부러져 버린 날 저녁에 이 글을 보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썼던 펜이라 꽤나 오래되어서 그랬나 보다.

이제 펜을 바꿀 때가 되었구나.

펜이 부러진 건 처음이라 펜 사진을 부모님께 보냈다.

"공부하다가 펜이 부러짐 ㅋㅋㅋ"

"ㅎㄷㄷ 언제 자니;;; 유학생활 제대로 경험하는구나;"

"허걱 ㅠ 손가락은 괜찮아? ㅠ 언제 자는 겨?"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는 말, 쉬엄쉬엄 하라는 말.

나도 종종 서운함을 느끼던 말이었는데, 어쩌면 나를 보는 이들의 마음도 원영의 것과 같았는지도 모르겠다.


상상력이 조금이라도 동원되는 순간, 누군가의 고통은 허구가 될 수 있다.
슬픔은 가짜가 될 수 있다.
그런 생각들이 나를 붙잡아 아무것도 쓸 수 없음.
소설을 쓰는 데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해서 아무것도 쓸 수 없음.
어떤 끄덕거림. 
토닥거림.
타자에 대한 공감과 이해는 상상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타자는 내가 상상한 타자이기도 하다.

- <두개골의 안과 밖>, 서이제


그래도 계속 상상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에서야 소중한 이들을 상상한다는 것을 곱씹으며.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 사이에 상상력이 끼어들 공간이 생겨나는 걸까?

그렇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그들과 한없이 가까워지고 싶을 때가 있었다.

돌아가도 이 사실을 잊지 말기를.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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